“선사시대 ‘고래사냥’ 더는 훼손 없길”…53년 전 암각화 탁본 첫 공개

2025-03-25

“처음 대곡리 암각화를 발견했던 1971년 12월엔 물이 올라와서 바위 위쪽만 보였어요. 수위가 내려가길 기다렸다가 이듬해 3월에 만반의 준비를 해서 갔죠. 그랬더니 여기 아래, 호랑이·사슴 이런 것들도 다 보입디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그림’으로 유명한 경남 울산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1995년 국보 지정)를 처음 세상에 알린 문명대(75) 동국대 명예교수의 회고다. 당시 30대 초반의 동국대박물관 전임연구원이던 그는 울산 지역에서 불교유적 조사를 하다 1970년 천전리 각석과 암각화를 발견했다. 이어 “호랑이 그림이 더 많은 절벽이 있다”는 주민 제보를 받고 대곡천을 조사하다 대곡리 암각화까지 발견했다.

높이 4.5m, 너비 8m의 ‘ㄱ’자 모양으로 꺾인 절벽 암반에 각종 동물과 사냥하는 장면 등 200여점이 그려져 있었다. 연구 결과 신석기와 청동기(5000~7000년 전)에 걸쳐 수렵과 어로를 하는 선사인들이 새긴 것으로 추정됐다. 국내 암각화 유적 가운데 단연 최고(最古)다. 조사단은 열흘에 걸쳐 암벽에 한지를 대고 먹물을 두드려 전체 그림을 탁본으로 남겼다.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의 발견 당시 모습이 생생히 담긴 최초 탁본이 25일 서울 동국대박물관 특별전 ‘보묵천향(寶墨天香)―보배로운 먹, 하늘의 향기’에서 공개됐다. 가로 5m, 세로 2.2m로 2층 전시실 한쪽 벽면을 다 채우는 규모다. 그간 학술연구 용도로 활용되긴 했어도 일반에 공개되는 건 반세기 만에 처음이다.

이날 개막식에 참석한 문 교수도 감회에 젖은 듯 탁본을 들여다봤다. 그는 “당시 배를 타고 접근해 처음 탁본을 떴는데, 아래로 1m가 더 있더라. 그래서 74년도에 2차 탁본을 떴다. 당시만 해도 문화재 지정이 안돼 있어 여러 대학·미술사가들이 앞다퉈 탁본을 떴는데, 그 과정에서 조금씩 훼손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달리 말해 동국대박물관 조사단의 초창기 탁본이 ‘원형’ 그대로의 반구대 암각화를 증명하는 셈이다.

게다가 반구대 암각화는 인근의 울산 사연댐이 물을 가둘 때마다 수면 아래 잠기면서 지금도 침식이 진행 중이다. 사연댐은 암각화 발견 6년 전인 1965년 대곡천 하류에 건설됐다. 댐 수위가 53m를 넘으면 암각화 침수가 시작돼 56.7m일 때 그림이 완전히 잠긴다. 지난 10년 동안에도 연평균 42일 동안 물속에 잠겼다고 한다. 최근 조사팀에 따르면 육안으로 식별되는 그림이 수십점에 불과할 정도로 훼손이 크게 진행됐다.

이 문제는 ‘반구천 암각화’(대곡리와 천전리 암각화 통합)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크게 부각됐고, 식수원 관리와 문화유산 보존 간의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지난해 환경부는 사연댐 수문 추가 설치 계획을 밝히면서 이 경우 사연댐 가동 때 수위를 52.2m로 낮출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구천 암각화의 세계유산 최종 등재 여부는 오는 7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제47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이번 특별전도 반구천 암각화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기원하면서 기획됐다. 이 밖에도 박물관이 1963년 설립 이래 다채롭게 수집한 탁본 가운데 대표적인 13점을 전시한다. ‘삼막산 동종 탁본’은 1625년(인조 3년) 조성돼 안양 삼막사에 전해지던 범종을 뜬 것이다. 화려한 도상과 문양으로 유명했던 종은 1990년 삼막사 대웅전 화재 때 소실돼 지금은 탁본과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1021년 조성된 개성 현화사비의 탁본 등 분단으로 인해 이제는 실물을 보기 힘든 북한 유물도 먹의 흔적으로 만난다.

임영애 동국대 박물관장은 “문화유산 보존의 개념이 뚜렷하지 않을 당시 훼손 위기의 유물·유적의 탁본을 뜨고 가치를 밝힌 이들의 노력을 조명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5월 9일까지(주말 및 공휴일 휴관), 입장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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