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절대인구 감소라는 구조적인 난제 속에 ‘공동영농모델’이 농업 생산성을 향상할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장에서는 공동영농을 이끌 ‘주체’를 숙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역의 농업환경에 대한 통찰과 지역민의 신뢰를 얻는 주체를 발굴·육성해야 공동영농이 안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12월 내놓은 ‘농업·농촌 혁신 전략’에서 법인 중심으로 공동영농모델을 확산하겠다고 밝혔다. 추진방안으로 공동경영체 지원사업 확대가 언급됐다. 농업법인 등에 교육, 컨설팅, 농기계류, 시설·장비 등을 보조하는 ‘밭작물공동경영체육성지원사업’이 대표적이다. 이 사업은 공동경영체당 최대 10억원을 지원한다.
공동영농 성공 모델로 꼽히는 경북 영덕 팔각산친환경절임배추영농조합법인(이하 팔각산영농법인)의 백성규 대표(62·사진)는 “사업이 확대되면 단순히 농기계 구입 등 지원을 노린 경영체가 생길 것”이라며 ‘될 사람’을 선별·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대표는 지난해 6월 지원사업에 선정돼 공동영농에 나섰다. 영덕군 달산면의 30여농가가 20.5㏊ 농지에서 가을배추를 재배하며 첫발을 뗐다.
이 농사로 12월25일에는 참여농가들에게 3.3㎡(1평)당 3000원씩 배당했다. 최대 1800만원을 받은 농가도 있다. 백 대표는 “올해는 하반기까지 50㏊로 규모를 확대해 상반기에는 콩과 봄배추, 하반기에는 가을배추 등 이모작을 본격적으로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농가 참여를 이끈 비결은 신뢰와 전문성이다. 백 대표는 달산면에서 40년 이상 농사를 한 지역·농업 전문가다. 그는 “(달산면 농가는) 고령화로 농작업을 위탁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도작만으로는 661㎡(200평) 기준 40만원도 벌지 못하는 형편”이라며 “5월 이른 고온과 소나기로 배추가 썩는 등 이상기후에 따른 위험도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농지도 지역·농업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확보했다. 백 대표는 “이모작이 되는 필지가 있고, 안되는 필지가 있는데 달산면에 있는 농지는 대부분 (속성 등을) 꿰고 있다”고 했다.
농지 정보를 전산화한 것도 성과다. 백운영 팔각산영농법인 팀장은 “달산면 농지 가운데 경작할 수 있는 땅이 얼마나 되고, 실경작률은 얼마인지 전산자료로 정보화했다”며 “이런 데이터를 기반으로 어떤 작물을 언제 심고 인력을 얼마나 투입해야 할지 판단한다”고 전했다.
공동영농 연착륙을 이끈 팔각산영농법인은 전문성 있는 주체 발굴을 강조한다. 백 팀장은 “사업이 성공하려면 지역과 농업을 잘 아는 대표자가 있어야 한다”며 “공동경영체 육성 지원사업이 확대되며 갑작스럽게 영농조합법인을 만드는 사례도 있는데, 화합을 이루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성 있는 주체의 참여를 위해선 행정 지원도 필요하다. 이성욱 팔각산영농법인 부장은 “공동경영체 지원을 받으려면 사업 계획서를 내야 하는데, 목적·비전, 연간·세부 시행 계획 등 작성이 까다롭다”며 “이를 도울 인력이 없으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외부 컨설팅을 맡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군 차원에서 사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상설 지원조직을 운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덕=김소진 기자 sjkim@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