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패 빼앗는 사회
안혜정·조성호·이광형 지음
위즈덤하우스
카이스트 실패연구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실패가 성공에 도움이 된다’고 동의한 사람이 73.5%나 됐다. 그런데 정작 ‘한국 사회는 실패에 관대하지 않다’고 응답한 사람이 77%에 달했다. 한국인 절대 다수는 개인적으로 실패가 쓸모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혹은 사회적 편견이 무서워서 실패를 회피하고 있다는 결론이다. 한국 사회가 개인들의 실패할 기회를 빼앗고 있다는 것이다.
『실패 빼앗는 사회』는 카이스트 실패연구소가 실패에서 제대로 배우는 법을 연구하고 실험한 결과를 담은 보고서다. 2021년 6월 설립된 실패연구소는 사람들이 실패를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한 분위기의 대화 모임에서 누구나 실패를 겪을 수 있다는 공감대를 확산하고 심리적 위축감과 수치심을 완화하는 방법을 모색해 왔다. 실패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믿음이 축적돼야 ‘실패 빼앗는 사회’에서 ‘실패 권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패연구의 여러 가지 프로젝트 중에서 포토보이스라는 게 돋보였다. 이는 특정 주제에 대한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매개로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을 이끌어 내는 연구 방법이다. 부서진 실험 도구, 시료 1밀리리터가 부족해 일주일이 미뤄진 실험, 밤새 만들었지만 작동하지 않는 기계 등 사진만 봐도 뭔가 잘못돼 가고 있다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장면들이 많이 제출됐다. 우수 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카이스트에서도 실패하는 것이 일상인 것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포토보이스에 참여한 어떤 학생은 “실패는 디폴트”라며 쿨하게 실패를 기본값으로 받아들였다. 실패하지 않기보다 크고 작은 실패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마인드셋을 키우는 학생도 더러 있었다.
코딩 화면을 실패 장면으로 제출한 한 학생은 ‘내 삶에서 가장 쉬운 실패’라는 메모를 남겼다. “코딩에서의 실패는 금방 수정할 수 있잖아요. 에러가 뜨면 그게 내가 고쳐야 할 부분을 알려주니까 오히려 고마운 실패 같기도 해요.” 어떤 학생은 “사소한 실패가 일상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제 삶에 실패가 너무 많아져도 오히려 어떤 실패든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했다.
평소 자신의 삶이 실패했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는 한 학생은 예상과는 달리 실패라고 할 만한 사건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포토보이스 사례 사진을 제출하기 어려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험 과정에서의 실수, 아무리 해봐도 결과가 안 나오는 실험 등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하루에도 여러 번 일어났지만 그런 순간들도 실패 과제로 제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실패에 관한 다양한 경험을 실험 참여자들이 공유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실패감을 치유했다는 사람도 많았다.
우리는 정말 실패에서 배울 수 있고 성공의 어머니를 찾아낼 수 있을까. 실패를 이겨내는 근육과 멘털을 잘 키우는 사람이 결국엔 성공의 확률이 높을 것이다. 이 책은 실패연구소 참여자들의 간접경험을 통해 심각하든 사소하든 간에 어떤 실패를 범하더라도 훌훌 털어내고 회복탄력성을 함양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