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개구리 해부 금지

2025-03-30

오십줄로 접어든 필자의 학창 시절만 해도 개구리 해부실습은 학교생활의 ‘통과의례’였다. 중학교 시절 과학 실험실에서 교사가 미리 해부한 개구리의 작은 심장은 지금도 선연하다. 미국에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과학교육을 강조하면서 개구리 해부실습이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개구리를 대거 사들이는 바람에 수요가 공급을 초과했고, 값싼 멕시코산 등을 수입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미국에선 학생들에게 해부실습을 거부하는 대신 플라스틱 모형 등 대안을 택할 권리를 부여한다.

국내에선 2018년 신설된 동물보호법에 미성년자의 동물 해부실습을 금지하는 규정이 마련된 데 이어 2020년 3월21일부터 시행됐다. 동물이 끔찍한 고통을 당하는 데다 이를 지켜본 미성년 학생의 정신적 충격도 고려한 조치이다. 교육부는 앞서 2001년 제7차 교육과정부터 교과서에서 개구리 해부실험을 제외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7일 ‘동물 학대 예방 교육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 조례’를 공포하고 이달부터 서울 초·중·고교에서 동물 해부실습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시교육청에 따르면 동물보호법의 금지 규정에도 학교에서 죽은 소의 눈이나 죽은 돼지의 심장을 해부하는 실습이 최근에도 진행됐다. 다만 시교육청은 교육과정 전문가와 의료계 등으로 꾸려진 ‘동물 해부실습 심의위원회’가 필요성을 인정하면 허용하는 예외 조항도 마련했다.

입시에 밀려 중·고교 과학수업에선 실험·실습에 소홀한 게 현실이다. 해부실습 금지로 자칫 과학교육 내실화가 외면받을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이탈리아 파비아대 물리학과 교수인 알레산드로 볼타는 1800년 지속해서 전기를 생산하는 ‘볼타파일(볼타전지)’을 발명했다. 그가 배터리의 원형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도 죽은 개구리의 뒷다리가 금속접시 위에서 경련을 일으키는 이른바 ‘동물전기 이론’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암 진단 의료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인 루닛을 이끄는 서범석 대표는 어린 시절 암에 걸린 개구리를 해부했던 경험을 토대로 영상진단 분야 세계 최고 자리에 올랐다. 증강현실(AR)을 이용해 개구리 해부를 간접 경험할 수 있는 시대다. 개구리 희생 없이 생명과학 기초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황계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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