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 국내 재고 싹쓸이에… ‘그래픽카드 대란’ 심화

2025-02-24

美, 대중 반도체 수출 제재 영향

중국인들 韓서 엔비디아 제품 구매

용산 전자상가 상인 “가격 치솟아

600만원 짜리 1000만원에 사기도”

국내 그래픽카드 품귀 현상 ‘기름’

“국내 소비자 구매 기회 줄어들어

韓 인공지능 연구·개발 차질 우려”

서울 용산구 전자상가에서 10년 넘게 컴퓨터 부품을 판매해온 김모(54)씨는 요즘 하루에도 수차례 엔비디아의 최신형 그래픽카드(GPU) ‘RTX 5080’을 찾는 중국인들을 마주한다. 그는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중국의 젊은 대학생들이 매장마다 돌아다니면서 ‘그래픽카드를 있는 대로 달라’고 한다”며 “미국이 중국에 그래픽카드 수출을 제재하니 가까운 한국에서 알바를 고용해 싹쓸이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세계적인 GPU의 품귀 현상 속에 유독 한국에서 GPU 구하기가 더 어렵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제재 조치로 중국의 보따리상이 한국의 재고를 싹쓸이해가는 탓에 국내 재고가 순식간에 바닥난다는 것이다. GPU 품귀가 심화하면서 국내 인공지능(AI) 연구·개발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최신형 GPU ‘지포스 RTX 50’ 시리즈 중 최상위 모델인 ‘RTX 5090’은 국내에서 구경조차 힘들 정도로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아래 단계인 RTX 5080도 일주일에 2~3개 정도만 공급되는 실정이다. 이 시리즈는 3D 게임과 컴퓨터지원설계(CAD)는 물론 AI 프로그램까지 구동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인들이 국내 재고를 사들이면서 품귀 현상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미국의 중국 반도체 수출 제재로 중국 내 공급이 막히자 한국 시장에서 물량 확보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다.

용산 전자상가의 한 업체 대표는 “최근 한 손님이 600만원짜리 RTX 5090을 1000만원에 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가격비교 서비스 다나와 집계에 따르면 권장소비자가격(MSRP) 999달러였던 RTX 5080은 1140∼1500달러까지, MSRP 1999달러였던 RTX 5090은 2400∼3400달러까지 치솟았다.

중간 업체들도 출고가보다 비싼 가격에 구매에 나서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에서 각 글로벌 그래픽 제조사에 칩셋을 넘길 때부터 수량이 적었다”며 “3월까지는 정확한 수량이 들어올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중국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는 한국에서 구입한 RTX 5090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판매글에는 “한국에서 가져와 중국 본토에 도착했다”거나 “한국에서 제작된 완전히 새로운 정품”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일부 판매자는 한국어로 된 보증서가 부착된 제품 사진과 함께 “중국 수입 제한 품목이라 직접 휴대해 반입하겠다”고 적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중국 정부가 AI 개발을 위해 개인을 통해서라도 엔비디아 GPU를 사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싱가포르 등 제3국을 통한 우회 구입이 이뤄지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는데, 이는 충분히 근거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AI 연구·개발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용산의 한 업체는 “개인보다는 AI 회사나 대학교 연구실이 주요 거래처인데 최근 정부 지원이 줄었다”고 전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중국이 각국에 풀리는 물량을 사들이면서 일반 소비자의 구매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며 “이로 인해 한국의 연구개발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웅 고려대 인공지능학과 교수는 “세계 수준에 맞춰 연구하려면 최소 H100급 GPU가 필요한데 학교에서는 불가능하다”며 “기업들이 수천개씩 사들이는 상황에서 학교는 몇 개 가지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학교 레벨에서 혁신적으로 나온 연구는 거의 없고 다 회사에서 나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예림·최경림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