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길원 大記者

박철 시인·소설가(1960년생)
서울 출신으로 1987년 '창비'를 통해 시인으로, 1997년 '현대문학'에서 소설가로 등단.
<함께 나누기> 굴욕은 ‘남에게 억눌려 업신여김을 받는 상황에서 느끼는 수치심이나 모욕감, 또는 그런 상황 자체를 뜻한다. 지난달 31일 미국과의 상호 관세가 극적으로 타결됐지만 그 일주일 전인 24일 ‘한미 2+2 협상’을 앞두고 우리나라 기재부 장관 출국 1시간 25분을 앞두고 미국에서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그건 분명히 외교 관례에 어긋나는 아주 굴욕적인 일이지만 우린 아무 말도 못했다. 따지고 대들었다 간 더 심한 보복관세를 받을까봐...
오늘 시에서 아내와 남편 두 사람 다 굴욕을 느낀다. 화자인 ‘나’와 화자의 ‘아내’. 이 두 사람이 느끼는 굴욕은 다르다. “밥을 먹다가 아내가 물었다 / 굴욕에 대해 아느냐고” 뜬금없이 던지는 아내의 말이다. 명색이 시인인 남편은 굴욕을 느낀다. 허나 뒤 시행을 읽어보면 뜬금없이가 아니라 이미 두 사람이 다 느끼는 어떤 상황에서 이어진 표현이다. 우선 먼저 굴욕의 뜻을 아느냐고 묻는 아내의 의도를 알아차려야 한다. 단순히 그 단어의 뜻 만을 물었음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 이러저러하게 대답하였다 / 아직 냉전 중이라서 / 조금 굴욕적이었다” 이제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이 확연히 드러난다. 부부 싸움 끝에 아직 화해가 덜 된 상황. 그러니까 조금 화가 나 있는 상태. 화가 아직 남아있으니까 굴욕의 뜻을 묻는 아내의 질문에 굴욕감을 느낀다. 왜냐면 적어도 시인인데 그런 말의 뜻을 묻느냐고. 그러나 화자는 남자, 여자의 속을 헤아리기엔 좀 모자란 사람이다. 허니 아내가 곧이 곧 대로 굴욕의 뜻을 설명한다. 이때까지도 화자는 아내가 굴욕의 뜻을 묻는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니 자기만 굴욕감을 느꼈다고 생각했을 때 “밥을 먹다가 아내가 말했다 / 굴욕은 밥을 깨작깨작 먹는 것이라고”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있다면 , 아마 부부라면 대부분 했을 테지만, 어떤 사내도 이 시구를 대하는 순간 '아차' 했을 게다. 아무리 부부 싸움을 했고 아직 화가 덜 풀렸더라도 밥을 차려줬다면 당연히 맛있게 먹어줘야 한다고. 아내가 미운(?) 남편에게 밥상을 차림은 굶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화해를 청하는 메시지도 담았으니까. 그런 의도를 무시한 채 아내가 정성 들여 올린 밥상에서 밥을 깨작깨작 씹어먹으니 속에 열불이 날 수밖에. 시인인 화자는 그제사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의 굴욕도 굴욕이지만 그보다 아내의 굴욕이 더 크다고.
아내는 남편이란 사내에게 밥상 차려주고 싶지 않았을 게다. 그럼에도 의무인 양 밥상을 차려야 하는 굴욕. 그렇게 차린 밥상에서 ‘밥을 깨작깨작 먹는다?’ 단순히 정성을 떠나 자존심까지 뭉갰으니 대 굴욕이 되고 말았다. 삶의 길에서, 또 직장인으로 살려면 한번쯤 굴욕을 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거의 날마다 아니면 일주일에 두어 번 당한다. 다만 가족 생계를 생각하여 굴욕을 참으며 살아갈 뿐. 앞에서 예로 든 국가와 국가 사이의 교류에서도 굴욕이 존재한다. 힘이 강한 나라에게 약한 나라가 당할 수밖에 없는. 사회와 국가 사이에 굴욕만 있는 줄 알았는데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굴욕 있음을 이 시를 통해 배운다. 아내에게 지금껏 미안했음을...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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