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작가’ 뒤에 지워진 아내

2025-08-07

오웰 대신 생계 책임진 아일린

가사 노동부터 원고 교정까지

9년의 결혼 생활 내내 ‘희생’

‘동물농장’ 아이디어 제공 등

작가로서 성공에도 기여했지만

이름 없이 ‘아내’로만 언급돼

불륜·스토킹 등 일삼은 오웰

가부장제 남성의 치부 드러내

조지 오웰(1903~1950)에 대한 20세기 지성사가들의 지배적인 평가는 다음과 같다.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들고자 했던 지식인이자 파시스트 군대와 싸우기 위해 스페인으로 달려간 투사였으며 <동물농장>과 <1984> 같은 걸작을 통해 소련 스탈린 정권의 폭압적 전체주의를 고발한 시대의 양심. 1966년 오웰의 전기를 펴낸 작가 조지 우드콕은 “나는 살아온 인간과 글로 표현되는 인간의 모습이 이처럼 일치하는 작가를 결코 만난 적이 없다”고 썼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호주 작가 애나 펀더의 <조지 오웰 뒤에서>는 수정처럼 깨끗해 보이는 오웰의 이미지를 산산조각 내는 책이다.

저자는 “내가 어쩌다 (남편보다) 약자가 된 건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오웰의 책을 읽던 중 오웰의 첫번째 아내 아일린 오쇼네시가 절친한 친구 노라에게 보낸 여섯 통의 편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조지 오웰 뒤에서

애나 펀더 지음 | 서제인 옮김

생각의힘 | 632쪽 | 2만4000원

2005년 발견된 이 편지들은 오웰과 아일린의 결혼 기간인 1936~1945년에 작성된 것으로, 아내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오웰의 내밀한 모습을 담고 있다.

저자는 이 편지들을 단서로 삼아, 오웰의 성공에 가장 크게 기여했으나 오웰 자신과 전기 작가들의 의도적 누락과 왜곡으로 존재가 희미해진 아일린의 삶을 복구했다.

아일린은 1935년 친구의 파티에서 만난 조지 오웰과 1936년 6월9일에 결혼했다. 당시 아일린은 옥스퍼드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런던대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던 중이었으나 결혼과 함께 공부를 포기한다.

9년간의 결혼 생활에서 아일린은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 병약한 오웰을 보는 ‘엄마’, 정서적 결핍을 채워주는 ‘아내’, 타자기로 원고를 정서하고 교정·교열까지 해주는 ‘비서’,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집을 청소하고 요리를 해주는 ‘가사도우미’ 역할을 동시에 해야 했다.

오웰이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얻을 수 없었을, 그리고 외부에서 돈으로 사려고 했다면 엄청난 비용이 들었을 서비스를 아내라는 이유로 대가 없이 제공한 것이다.

오웰은 아내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겼다. 한번은 아일린이 역류한 변기를 청소하던 중이었다. 오웰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아일린은 하던 일을 잠시 멈췄다. “소용돌이치는 그 오물은 너무도 역겨웠고, 악취에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아일린은 조지가 뭐라고 하는지 들으려고 창문 쪽으로 네 걸음을 떼었다. (중략) ‘차 마실 시간이잖아요. 안 그래요?’ 그때 조지는 그렇게 말했다. 아일린의 피가 얼음처럼 차갑게 식었다. 조지가 자신을 위해 차를 끓여주려고 그 말을 했을 거라는 생각은 단 한순간도 들지 않았다.”

오웰이 처음으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은 1945년에 출간된 <동물농장>이다. 애초 스탈린 체제를 비판하는 에세이를 쓰려고 했던 오웰에게 동물이 등장하는 우화를 써보라고 권한 것이 바로 아일린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부부는 나치 공군의 폭격을 받던 런던에서 함께 침대에 누워 이야기를 만들었다. “<동물농장>은 아일린의 정신적 깊이와 공감 능력이 오웰의 정치적 통찰과 만나 탄생한 걸작이었다.”

그럼에도 오웰의 글에서 아일린의 존재는 거의 지워져 있다. 아일린은 오웰의 뒤를 따라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가서 반파시스트 공화군 진영에 물자를 공급하는 일을 하고 스탈린의 스파이로부터 오웰을 구해주기도 했지만,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아일린은 이름 대신 “아내”라고만 37차례 언급된다.

특히 충격적인 건 여성을 대하는 오웰의 태도다. 저자는 기존의 오웰 전기에서 생략됐거나 축소된 사건들의 실마리들을 집요하게 찾아내 오웰의 치부를 낱낱이 까발린다.

10대 시절 버마에서 오웰과 만났던 여성은 오웰에게 쓴 편지에서 “그가 강제로 성관계를 하려 한 것에 대한 충격과 혐오감을” 표시했다.

오웰은 결혼 기간 내내 바람을 피웠다. 오웰의 부정은 순간적인 일탈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반복적이고 지속적이었으며, 불륜을 넘어 범죄라고 할 만한 행위도 포함돼 있었다.

오웰은 병원을 찾아온 아내의 친구 리디아에게 강제로 키스하고, 그 뒤에는 몰래 만나자는 편지를 지속적으로 쓴다. 스토킹으로 보이는 행위도 했다. “리디아에게. 내가 그렇게 부탁했는데 오늘 아침 집을 비우다니, 참 못되게 구는군요. 하지만 어쩌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르죠. 내가 세 번이나 전화했는데, 나한테 화났어요?”

아내가 출근한 사이 소설가 이네즈 홀든을 만난 오웰은 ‘차나 한잔하자’면서 집으로 간다. “그런 다음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비운다. 다시 나타난 오웰은 국방 시민군 군복으로 갈아입고 있다. 다음 순간, 그는 이네즈를 ‘덮쳤다’.” 저자는 “오웰에게는 거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연애 사건과 누군가를 ‘덮치는’ 행위, 혹은 강간 미수들이 존재한다”고 썼다. 오웰은 아일린이 자궁종양으로 수술을 받을 때조차 옆에 있지 않았다.

저자가 오웰의 문학 전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지금처럼 전체주의와 감시와 독재 정치가 힘을 얻는 시대에, 그의 글들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텍스트”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웰의 문학적 성취가 그의 치부를 가릴 수는 없다. “제가 바랐던, 그리고 여전히 바라는 바가 있다면, 이 책이 하나의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가부장제는 도덕적으로 낡고 허약한 정당성이 없는 권력 체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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