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다양성에서 시작되는 혁신, 난민에게 기회를

2025-10-17

올해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미국인 화학자 오마르 야기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온 난민 가정 출신이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똑똑하고, 재능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며 “지식의 확산은 종종 지역을 넘나드는 사람들에게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요르단에서 자란 어린 시절, 가축과 한 방에서 12명이 살았던 이야기가 노벨상 수상 이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저는 도움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인인 발렌티나 프리모는 중동 지역에 파견된 기자였다. 요르단, 팔레스타인, 레바논 등에서 취재하던 그는 시리아 국경과 가까운 요르단 마프라크에서 한 22세 난민 여성을 인터뷰했다. 그는 발렌티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여기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자꾸 도와주려 했어요. 감사했지만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저는 시리아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봉사도 해왔습니다. 제가 그저 난민이기만 한 것은 아니에요. 저도 세상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발렌티나는 이 인터뷰를, 오랫동안 난민 커뮤니티의 관찰자로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바꾼 순간으로 꼽는다. “그 말이 제 사고방식을 바꾸는 출발점이었습니다. 난민들은 도움만 받는 수동적 수혜자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죠.” 이후 그는 이집트에 정착해 난민 커뮤니티와 함께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다. 적절한 환경만 주어지면 난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고용과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을 실험하기 위한 출발이었다.

발렌티나는 유럽과 중동을 오가며 난민과 이주민들이 새로운 곳에서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장을 만들었다. 그는 혼자서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드는 것으로 단체 설립을 시작했다. 아무런 후원도 없던 시절, 그가 이끄는 단체 ‘국경 없는 스타트업(Startups Without Borders)’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운영됐다. “페이스북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에 ‘변화의 일부가 되세요’라고 썼어요. 그러자 ‘이 운동에 동참하고 싶다’는 난민들의 e메일이 쏟아졌죠.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이건 되겠다’고 느꼈죠.”

처음엔 오히려 난민들의 도움을 받아 운영되던 ‘국경 없는 스타트업’은 현재 15개국이 넘는 곳에서 수천명을 대상으로 성공 모델을 확립했다. 핵심 해법은 두 가지다. 첫째, 이주민의 창업 역량을 키우는 프로그램을 설계·운영한다. 특히 참가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마케팅과 네트워크 구축에 집중해 큰 예산 없이도 사업을 알리고 확장하는 실질적 방법을 교육한다. 둘째, 유럽 등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글로벌 서밋’ 프로그램으로 창업자와 투자자를 연결한다. 연간 5500명 이상이 참여하는 서밋에서 다양한 워크숍과 패널 토론이 열리며, 투자 기준에 맞춰 스타트업과 투자자를 1:1로 연결하는 인베스터스 룸(Investors’ Room)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국경 없는 스타트업’은 지난 7년간 15개국이 넘는 곳에서 약 8000명의 창업가를 교육하고 130개의 스타트업 기업을 육성했다. 이들이 직·간접적으로 만들어낸 일자리만 무려 4만개가 넘는다. 이 과정에서 ‘슈퍼스타’ 기업들도 여럿 탄생했다. “시리아에서 이집트에 온 21세 학생이 있었어요. 치과대학을 나온 그는 이집트에서 학력을 인정받을 방법을 찾다가 어려움을 겪었고, 같은 처지의 이들을 돕기 위해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를 만들고자 했지요. 처음에는 우리의 도움을 받아 ‘하트와(Khatwa·한 걸음)’라는 비영리단체로 출발했습니다. 이집트에 온 난민 학생들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단체였죠.” 작은 비영리단체로 시작한 하트와는 이제 월 150만명이 방문하는 아랍권 최대 학업 정보 플랫폼이 됐다. “시리아 출신 난민이지만 그는 이집트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스타트업 대표가 됐습니다. 난민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거주국과 시민들에게 얼마나 크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국경 없는 스타트업’은 중동과 유럽 전 지역에서 수많은 사람과 함께 활약 중이지만, 한국의 입장에선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이야기다.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10여 년째 1%대에 머물고 있으며, ‘난민 기업가’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다. 난민의 수가 적어 일상에서 난민을 만나본 사람이 극히 드물다. 온라인과 언론을 통해 피상적 이미지가 소비되며 근거 없는 두려움이나 편견이 강화되는 경우도 많다.

난민에 대한 거부감은 난민의 진입을 국경에서부터 차단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난민 신청을 막기 위해 공항에서부터 심사를 거부해(‘불회부 처분’) 매년 수많은 사람이 공항에 억류돼 ‘공항 난민’이 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입국해 난민 신청에 성공하더라도 대부분 아무런 지원 없이 사회에 방치된다. 그 결과 독일에 350만명, 이탈리아에 32만명이 넘는 난민이 정착하는 동안 대한민국은 난민법 제정 후 지금까지 총 1544명의 난민만을 받아들였을 뿐이다(2024년 연말 기준). ‘난민을 막기 위한 난민법’을 운영하는 국가에서 난민의 스타트업 성공 신화는 요원하게 들린다.

프리모 대표는 낯설다는 이유로 난민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구글 설립자 세르게이 브린은 옛 소련의 박해를 피해 탈출한 난민이었습니다. 미국 내 1위 메신저 앱인 와츠앱(WhatsApp)은 우크라이나 출신 난민이 설립했죠. 스티브 잡스의 아버지도 시리아인이었습니다. 실리콘밸리 유니콘 기업의 51%는 이주민이거나 이주민의 자녀가 세웠습니다.” 그는 이주민들이 경제와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세상에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고 강조한다. “이주민은 새로운 시장을 열고, 우리 사회가 미처 보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가들입니다.”

그는 한국 독자들에게 난민과 이주민을 향한 시선의 전환을 촉구했다. “그들은 단순히 일자리를 찾아 떠나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회구성원입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혁신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이들이 모일 때에만 가능합니다.”

<이한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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