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과 동해 가스전...보수 정권 역사에 큰 오점
시추도 하기 전 직접 발표, “박정희 때보다 더한 사기극”
예산 날린 민주당에 아직도 국정 방해라고 말할 수 있나?
의료 대란 미봉 3조 허공에...돈 낭비도 좌파 정권 못지않아
![](https://cdnimage.dailian.co.kr/news/202502/news_1739138503_1459799_m_1.png)
윤석열 탄핵 심판 결과가 어떻게 되든, 그가 보수우파에 남긴 가장 큰 잘못은 전통적인 보수의 가치와 이미지를 날려 버린 것이다.
일반적으로 보수는 합리적-과학적이고 신중하며, 진보는 이념적-감성적이고 선동에 능하다. 윤석열은 이 보수적인 덕목, 소양을 덜 갖추었거나 반대 성격을 가졌다. 계엄은 물론이고 의대 증원과 대왕고래 추진에서 그런 면모를 보였다. 과학보다는 직관, 충동으로 움직인다.
계엄은 탄핵 심판 과정에서 말들이 바뀌고 사후 논리가 전개돼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흐름을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3일의 핵심적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게 중요하다.
그것은 계엄이 헌법이 정하고 있는 선포 요건, ‘전시 또는 사변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라는 데 동의하기 쉽지 않은, 지극히 ‘일상적 상황’에서 일으켜졌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헌법상 비상계엄이 건드릴 수 없는 입법권을 무력화시킬 목적으로 군 투입이 이뤄졌다.
이 두 가지는 윤석열이 헌재에서 아무리 강변하더라도 재판관들이 설득당하기 어려운 불변의 사실들이다. 그는 이 점을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덜컥 계엄 발표를 해 버렸다. 무모한 충동이다.
의대 증원과 대왕고래(동해 심해 석유-가스 채굴) 프로젝트도 그와 똑같은 성향이 나타난다. 사전 검토 부실, 과학 무시, 충동적이고 무책임한 발표 등이다. 합리와 신중과 다른, 보수 정권 역사에 기록될 큰 오점이요 불명예다.
의대생을 매년 2000명씩 더 뽑아야 의료개혁이 된다며 생난리를 편 밀어붙이기는 생각할수록 어처구니없고 분통 터지는 그의 최대, 최악의 실책이다. 그는 계엄 이전에 사실상 이것으로 끝나고 있었다.
4.10 총선을 그렇게 말아 먹은 두 달 후 여론 반전을 노린 듯 그는 국정 브리핑 1호로 난데없는 동해 가스전 발견 ‘낭보’를 터뜨렸다. 즉각, 박정희가 떠오른 산유국 발표였다. 불길하고 불안했다.
박정희는 1976년 1월 연두 기자회견에서 나라를 환희의 도가니 속으로 빠뜨리는 뉴스를 전했다.
“포항에서 석유가 발견됐다.”
그의 눈부신 산업화 업적에도 불구하고 억압적 장기 집권에 피로감이 쌓이고 있던 국민들의 민주화 갈증을 달래려는 무리수였다.
빗나간 의도는 결국 사기극으로 끝났다. 시추공에서 터져 나온 검은 액체는 고작 1드럼에 그쳤다. 시추 기계에서 흘러나온 경유로 추정이 됐다. 이 코미디를 윤석열이 재방송하게 될 줄 몰랐다.
그는 독창적인 면도 있긴 하나 복사, 모방을 많이 한다. 인사와 정책이 특히 그렇다. 노무현,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등에서 영감을 얻고 따라 하는 모습을 보였다. 계엄은 박정희-전두환 흉내를 내려다 깜냥이 안 되고 시대도 달라져 참담한 실패로 끝난 경우다.
박정희가 말년에 하지 않아도 됐을 산유국 욕심 발표는 그가 따라 할 이유가 없는 일이었다. 시추 등 개발 비용과 경제성을 따지면 지금 하는 대로 수입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 탐사 결과가 나왔다.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 기술 평가 전문 기업에 물리 탐사 심층 분석을 맡긴 결과다. 유수 연구 기관과 전문가들의 검증도 거쳤다.”
‘포항’이 같고 ‘가스’가 추가됐으며 매장량이 140억 배럴로 엄청나게 높아진 차이가 있다. 박정희보다 훨씬 더 흥분하고 부풀린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는 가짜였을망정 시추한 실제 ‘원유’를 봤고, 윤석열은 시추도 하기 전 단계인 물리 탐사 분석 자료(그것도 신뢰도가 약한 1인 회사를 세계 최고 수준 업체라며)를 산업부에서 낚아채 직접 발표를 해버렸다. 시추해서 안 나올 확률이 80% 이상인 데도 말이다.
물론 성공률이 20% 이하라고 해서 시추를 안 해야 하고 발표도 안 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 발표를 누가 어떤 형식으로 하느냐가 문제다. 물리 탐사 분석 결과 정도는 장관이 해도 과할 것이다.
산업부가 “대왕고래 가스전은 경제성이 없다고 결론이 났다”라고 발표한 시점도 참 공교롭다. 윤석열이 탄핵 사유로 든 야당의 깡패질에 이 작업 예산 삭감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동해 가스전 시추, 이른바 대왕고래 사업 예산도 사실상 전액 삭감했다. 거대 야당의 의회 독재와 폭거로 국정이 마비되고 사회 질서가 교란돼 행정과 사법의 정상적인 수행이 불가능하다.”
그 대왕고래가 박정희 때보다 더한 사기극이 되어 버렸으니 비상계엄 선포 사유를 어찌해야 하나? 민주당에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실제로 국민 여론은 ‘대통령과 여당이 주장하는 야당의 국정 방해론에 공감하지 않는다’가 50%대 중반이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중도층(주로 중도좌파)의 이런 마음을 읽어야만 한다.
민주당의 서영교는 이런 국민 정서를 타고 한 방 먹은 윤석열과 여당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윤석열 정권의 무능 때문에 국민이 고통스럽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즉각 국민께 대왕고래 사기극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국힘 비대위원장 권영세와 대통령실은 사과 대신 계속 다른 시추공들을 파봐야 한다고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산자부 장관 안덕근도 “원래 거기 있었던 가스가 인근 구역으로 흘러 들어갔을 수 있다”라는 비과학적 추측을 보탰다.
시추공 한 개 파는 데 대략 1000억원이 들어간다. 가능성이 희박하면 이 혈세를 아끼는 쪽이 보수가 취해야 할 자세다. 대통령 한 사람의 아집과 독선으로 의료 대란 땜질을 하는 데 3조 3000억원이 소요됐다. 안 써도 됐고, 아무 효과도 남지 않은 허공에 뿌려진 돈이다. 이젠 퍼주기 포퓰리즘이라고 진보좌파 정책들을 비난할 수도 없게 됐다.
의대 증원 2000명과 대왕고래 140억 배럴 밀어붙이기 망신은 보수의 품격을 땅에 떨어뜨린 윤석열 최대의 사회-경제 분야 실정(失政)이다.
![](https://cdnimage.dailian.co.kr/news/202502/news_1739138459_1459799_m_2.png)
글/ 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