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칼럼] 어머니의 아들, 아들의 아버지

2024-10-10

고향 가는 길 (시, 김유례)// 아주 힘차게 걸어서 가고 싶다/ … / 세월의 한 자락 뒤집으면/ 부시게 하얀 앞치마에/ 젖은 손을 닦으시던 젊디젊은 내 어머니/ 으스러지도록 그 가슴에 안기고 싶다/ …

어머니는 시인이다.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에 시화전을 열었다. 어머니의 시로 만든 노래가 있는데 개회식에서 누군가 불렀으면 하셨다. 성악을 전공한 며느리가 둘이나 있지만 그녀들이 노래하기엔 반주를 포함한 현장 컨디션이 문제가 된다. 나름 프로들인데 준비되지 않은 무대는 부탁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부담이다. 결국 못해도 상관없고, 틀려도 용서되는 아마추어인 내가 노래했다. 노래를 잘한 건 아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기뻐하셨다. 자신의 시노래를 아들이 직접 불러준 것에 어머니도 오신 손님들도 모두 의미를 부여했다.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여기서 말하는 찬양은 노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의 이름을 불러드리는 것도 찬양이다. 우리가 그의 이름을 불러드리면 그가 기뻐하신다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자식을 낳고 기르면서 말도 배우지 못한 아이가 쳐다만 봐도, 밖에서 들어온 나를 보고 반가워하는 표정만 보아도 기뻤다. 처음 엄마, 아빠라고 했을 때 크기 기뻐했던 경험을 세상의 부모들이라면 갖고 있다. 자신의 피조물들이 당신을 기억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단순한 호칭의 문제가 아니라 교감하며 서로의 존재를 경험해 가는 과정이다. 자식을 낳고 기르면서.

그가 나를 불러주기 기다린 지 20년이 넘었다. 마주 보며 교감하고 싶지만 발달장애인에겐 너무도 힘든 일인가 보다. 유명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파바로티가 불러주는 노래보다 그가 어눌하게 불러주는 소리가 듣고 싶다.

어머니는 아들의 노래를, 아들은 아버지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강귀만 울산장애인부모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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