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민족민주 운동과 열사에 대한 전북인의 기억

2024-10-20

전북 민족민주 운동의 시작은 동학농민혁명이고, 그 정신은 고스란히 현재도 계속된다고 한다. 동학농민혁명을 그대로 풀이하면 동학사상을 근간으로 농민이 주체가 되어 일으킨 혁명이다.

동학의 핵심 사상은 시천주(侍天主)와 사인여천(事人如天), 그리고 인내천(人乃天)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간 존중, 다시 말해 평등·인권·민주 등을 근간으로 기존의 신분제 사회를 개혁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하는 세상’을 바랐다. 1894년 동학사상을 근간으로 신분제 사회에서 수탈당하고 핍박받던 민중이 주체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며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이와 함께 그 당시 시대 상황에서 서구 제국주의는 물론 일본의 조선 침략[무력을 앞세운 침략뿐 아니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침략을 포함]에 맞서 자주독립국을 지키려 한 것이 바로 반외세 운동으로 항일 의병 전쟁이었다.

동학농민혁명이 좌절된 후 한반도는 일본을 비롯한 서구 열강의 각축장이 되었고, 1895년 ‘명성황후시해사건’과 ‘단발령’을 계기로 을미의병이 일어났다. 이후 자주독립국임을 선언하며 출발한 대한제국기에 일본의 침략에 맞서는 의병 항쟁 또는 의병 전쟁을 일으켰음에도 을사늑약(乙巳勒約)과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막아내지 못하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이 시기 의병 항쟁은 일본군이 작성한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이라는 작전명이 말해주듯이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계승한 호남이 중심이었다.

일제강점기는 외형적으로 1910년 8월 29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35년이다. 이 시기 우리의 선열은 주권과 인권을 되찾는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3·1독립만세운동은 일반 대중이 자주독립국을 외치며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한 혁명이었다. 여기에는 남녀노소는 물론 신분이나 직업의 귀천도 없었고, 국내외 어느 곳이든지 하나가 되어 독립운동을 벌인 민족적 거사였다. 비록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주권과 인권을 되찾지 못하였지만,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탄생시켰다.

결과적으로 1945년 세계 제2차대전의 종결과 함께 일본의 압제를 뚫고 해방의 기쁨과 함께 민족자주 독립 국가를 수립할 기회를 가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와 명분은 일제강점기 내내 치열하게 전개한 독립운동이었다.

해방 이후 한반도는 남북분단과 좌우 논쟁, 한국전쟁이라는 미증유의 민족상잔을 치렀다. 이후 친일반민족행위자 처벌이라는 시대의 요구를 짓밟았을 뿐 아니라 전쟁 후 극심한 남북 대치를 악용한 독재정권, 군사쿠데타로 장악한 정권을 영구화하려는 유신독재에 이어 국민을 반란군과 폭도로 내몰며 살상하고 등장한 군부독재 등 불의한 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이 있었다. 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국민의 저항권이었다.

이처럼 전북의 민족민주 운동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그 뿌리를 두고, 대한제국기 의병 항쟁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으로 이어졌고, 해방 이후 민주화운동의 근간이 되었다. 이중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우리의 귀중한 역사이지만, ‘사람이 곧 하늘이며, 사람이 사람답게 하는 세상’을 간절히 바란 동학농민혁명 정신은 1894년 당시는 물론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전북인의 민족민주 운동과 열사를 기억하고 기념하며 계승하려는 학술대회와 추모문화제가 지난 9월 26일과 27일 있었다. 전국에서 처음 갖는 뜻깊은 행사이고, 전북특별자치도의 관심과 지원에도 불구하고 전북인의 관심과 참여는 아쉬웠다. 다음에는 더 많은 도민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도록 더한 노력을 기대한다.

박대길 <문학박사/전북민주주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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