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일본 쌀값이 폭등한 배경에는 소매가격과 농가 매입가격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가격 구조, 민간 유통업자의 시장 지배력 확대가 함께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유사한 상황을 겪을 수 있다며, 타작물 전환 정책에서 논 기반 작물 재배를 적극 장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NH농협금융지주 NH금융연구소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일본산 쌀 가격 급등에 따른 한국산 쌀의 일본 수출 기회와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최근 내놨다.
일본은 지난 30년간 세차례 쌀 수급 위기를 겪었다. 1993년에는 생산량이 25.9% 감소하자 가격이 3.5% 올랐고, 2003년에는 생산량이 12.4% 줄며 가격이 29.8% 상승했다.
지난해 촉발된 쌀값 폭등 사태는 생산량과 재고 감소폭에 비해 가격 상승폭이 유독 컸다. 생산량은 2022년산 670만t에서 2023년산 661만t으로 1.3% 소폭 줄었다가 2024년산은 679만t으로 다시 2.7% 증가했다. 하지만 쌀가격(현미 60㎏ 기준)은 2023년 1만3844엔(13만2019원)에서 2024년 1만5315엔(14만6050원)으로, 다시 올 3월에는 2만4500엔(23만3642원)까지 급등했다.
기현상에 가까운 쌀값 흐름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제기되는 가운데 보고서는 유통단계의 물량 잠김 현상과 함께 일본의 가격 결정 방식이 소매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일본은 1970년대까지 일본농협(JA)이 쌀 유통을 사실상 독점했지만, 2004년 이후 민간 중심 체제로 다원화되면서 가격 변동성이 커졌다. 2024년 기준 농업경영체별 쌀 판매 비중은 JA가 67.1%, 도소매업자가 18.2%를 차지했다. 김기환 NH금융연구소 부연구위원은 “JA가 낙찰받은 비축미를 제한적으로 공급한 영향도 있지만 민간 도매업자들이 물량을 확보하고도 시장에 거의 유통하지 않은 것이 쌀값 급등에 더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일본 정부는 올 2월 비축미 21만t을 시장에 방출했다. 전체 물량의 94%(약 20만t)를 낙찰받은 JA는 5월 기준 6만3000t(32%)을 출하했지만, 실제 시장에 유통된 물량은 4179t에 그쳤다. 민간 유통업자의 시장 지배력이 확대되면서, 비축미 방출 효과가 미미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일본은 매년 7∼9월 수확을 마친 뒤 JA가 농가로부터 매입한 벼값의 선급금 격인 ‘개산금’을 발표하고 이를 즉시 지급한다. 이후 6개월에서 1년 반 이내에 도매 판매가격에서 개산금과 유통경비를 제외한 금액을 최종 정산한다. JA 외 민간 유통업자들도 가격을 별도로 책정하지만, 대부분 JA의 개산금을 기준 삼아 매입가격을 결정한다. 이소연 NH금융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올라간 소매가격이 다음해 개산금 인상에 영향을 주고, 올라간 개산금이 다시 소비자가격을 밀어올리는 가격 상승 구조가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한국 역시 쌀 수급 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경고가 나온다. 폭염 등 이상기후가 일상화하는 가운데 쌀 유통단계에서 원료곡 수급 차질이 빚어질 경우 일본과 유사한 가격 급등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타작물 전환 정책에서도 논을 기반으로 한 전략작물 육성을 강조한다. 서세욱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일본은 사료용 쌀 등 논에서 논작물로 전작한 사례가 많아 쌀 작황부진 상황에서 바로 주식용 쌀 재배로 돌아갈 수 있다”며 “논을 유지한 전작은 1년간 시차가 있을지라도 유사시 밭작물보다 빠르게 공급을 회복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도 논에서 생산할 수 있는 전략작물을 장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소진 기자 sjkim@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