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서리 내리고 눈바람 탱탱 부는데 서울 댕겨온 농민회 트랙터 일행이 장성 국도를 마저 달린다. 이웃한 장성엔 어쩌다 한번쯤 가는데, 시장통 이름난 국밥집에서 보통 포장을 해온다. 나도 먹고 잔밥은 개가 달걀 크기 선지를 덥석 깨물어. 시장통 상인들이나 아니면 하우스재배 농민들이 주로 찾는 국밥집엔 주차장의 용달트럭마다 농산물 박스가 석탑처럼 솟아 있다. 올해 나는 쥐꼬리만 한 성탄 헌금을 농민회에 보냈어. 그분들 까맣게 탄 얼굴과 소나무 껍질만큼 거친 손등을 염려하며 기도했다. 생존권에 시위하는 농민들을 몽둥이로 다스려야 한다고 말한 어느 정치인을 생각하면서도 기도했는데, 내용은 비밀이다.
국밥 중에도 선짓국. 벌건 피로 만든 선지. 드라큘라 백작이 아니다만 우리는 피를 나눠 먹는다. ‘사실상’ 피가 솟구치게 만드는 세상이렷다. 억지로 깐다는 말, 억까. 아이들이 쓰는 말. 억까 좀 하지 말라고. 속이 상하면서 분노에 피가 솟구친다. 억까 당하면서 사는 낮은 자리 사람들. 살살 녹는다는 고기를 자기 울타리 몇만 뜯는 부자들 말고, 시장통에 둘러앉아 국물이 절반인 선짓국을 훌훌 나눠 먹는 사람들이 있다. 간밤에 내린 서리와 눈발로 트랙터 지붕은 하얗고, 국밥집에 둘러앉은 어르신들 머리칼에도 세월이 하얗게 내려앉아 있다. 컵라면으로 때우지 말라고, 아침도 안 자셨단디 국밥이라도 자셔야재라~ 소매를 잡아끄는 사돈네 팔촌이 있어 고마운 풍경이다. 고약한 인정머리와 사나운 억까의 세상에서, 우리는 피를 나누듯 선짓국 점심을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