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수년간 미국·유럽·아시아 등 여러 나라의 연구기관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며 연구를 넘어서는 추가적 노력이 필요함을 체감했다. 실험 설계와 데이터 분석 등 본연의 과제뿐 아니라 연구 보안, 지식재산권, 국가별 규제, 국제 정세까지 함께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인공지능(AI)·바이오·반도체·기후기술 등 주요 분야는 국제 협력 없이 성과를 내기 어려운 구조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동시에 과학기술이 산업 경쟁력과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부상하면서 과학기술 협력은 학문 교류를 넘어 국가 간 신뢰 구축과 전략적 연대의 중요한 축이 되고 있다. 그러나 공동 연구의 기회를 확대할 때 언어 장벽과 연구 문화 차이 등으로 난관에 부딪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파견 인력의 일정 조율, 공동 연구비 집행 방식, 연구 장비 반출입 등 실무적 측면에서 많은 시간과 조율이 필요하거나 계획이 수정되는 일도 적지 않다.
그간 정부 차원에서 과학기술 국제 협력을 활성화하려는 다양한 노력을 진행했던 것은 사실이다. 다만 현장에서는 국제 협력 사업이 일반 연구보다 조율해야 할 점이 많고 까다롭다 보니 보다 유연한 지원 체계와 특례가 마련된다면 자율성과 속도감 있는 협력이 더 원활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기술 국제 협력의 특성을 반영한 별도의 법적 체계가 필요하다. 성공적인 과학기술 국제 협력을 위해서는 현장 연구자의 경험과 판단이 정책에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중요하다. 실제 협력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는 조건과 수요들은 현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과학기술 국제 협력이 급격히 증가하며 행정 지원 체계 개선의 필요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국제 협력 사업에 참여하는 연구자를 위해 관련 부처, 전문기관, 연구기관이 각각 국제 협력 지원 기능을 강화할 뿐 아니라 이들 간 유기적 협업도 적극적으로 추진됐으면 한다. 또한 주요국에 설치된 과학기술 협력 거점을 활용해 연구자 밀착 지원이나 관련 의견 교류가 활발히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날로 치열해지는 기술 패권 경쟁과 기술 블록화 속에서 연구 현장은 더 이상 외부와 단절된 중립적 공간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연구 안보 등과 밀접하게 연결된 영역이 됐다. 연구자들이 경쟁력 있는 연구에 안정적으로 몰입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국제 정세와 국내외 투자 동향 등을 고려해 리스크를 줄이고 전략적 방향을 제시하는 과학기술 외교에 적극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국가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하는 부처로서 연구개발(R&D) 전 주기를 아우르는 이해와 국내외 현장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 트렌드에 대한 빠른 인식과 정책 연계 역량을 바탕으로 관계부처와 협력해 과학기술 외교를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했으면 한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첨단 과학기술은 국경을 넘어선 협력과 연결 속에서 성장한다. 최근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들 중 상당수가 서로 다른 국적과 소속을 가진 연구자 간 협력으로 큰 성과를 이룬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인류의 과학적 지평을 세계와 함께 넓혀나가고자 한다면 국제 협력 정책과 제도는 이러한 도전을 뒷받침하는 핵심적인 기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