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벌써 40년 되었군요, 1985년이니까.
이선희라는 깜찍한 신인 여가수가 <그래요, 잘못은 내게 있어요>라는 노래를 내놨었지요.
그 뒤로 그 노래는 저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다툼이 없을 수 없지요.
그때마다 저는 혼잣말로 “그래요, 잘못은 제게 있어요.”를 되뇌곤 했으니까요.
우리는 지금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배달겨레에게 일찍이 이런 “강구연월”*은 없었다지요.
“공업입국” 이후에 무역, 농업, 문화, 예술 등 각 분야의 눈부신 성장은 경제발전으로 이어져 이제는 많은 나라들이 부러움의 눈길로 우리를 우러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큰 사회 갈등을 겪고 있기도 하지요. 그 갈등 가운데 보, 혁 진영 갈등은 부풀대로 부풀어 곧 터지려 합니다. 나라가 쪼개질 지경이지요.
이걸 그냥 이대로 둬도 괜찮을까요?
스스로 곪아 터졌다가 저절로 아물까요?
사회학자들은 우리의 이 현상을 고도성장 뒤에 겪는 ‘성장통’이라 합니다. 사회 각 분야가 전반적으로 같이 발전하지 못한 부작용이란 것이겠지요. 또 다른 이들은 정치인들을 갈등의 원흉으로 지목하기도 합니다. 분열과 갈등을 자양분으로 삼는 자들이 그것을 부추긴다는 것이지요. 맞는 말이긴 하지만 꼭 그러기만 할까요? 우리 국민 개인의 탓은 없을까요?
우리는 지금 고학력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60년대 이후 출생들은 웬만하면 다들 고등학교는 나왔고, 70년대생들 가운데는 많은 이들이 그 이상의 학벌을 지녔고 사리분별력 또한 그에 버금갈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그렇게 조리 있고 똑똑한 이들이 일단 선거철만 되면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진영논리에 빠져들고 말지요. 그리곤 상대를 헐뜯느라 핏대를 세웁니다. 자기편은 모두 옳고 상대편은 모두 그르다는 이분법적 논리만 존재합니다. 상대를 공격할 땐 체면이고 품위고 없지요. 어떻게 하면 화살에 증오를 더 많이 묻혀 쏠 수 있을까만 생각합니다. 표현이 원색적이고 저급할수록 마치 자기가 정당한 양 말이지요. 한패가 아니면 곧 적으로 간주해 버립니다.
더 기가 막히는 건 이러지 말자고 누구 하나 나서서 말리는 이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기야 어느 균형감각을 가진 이가 있어 나서고 싶어도 자칫 뭇매를 맞을 수도 있고 생매장당하기 십상이겠지요. 정책이나 사람 됨됨이를 보고 지지하고 한편이 되는 게 아니라 오로지 진영에만 맹종하는 이런 이들이 전체 유권자의 절반이 훨씬 넘는다지요. 그런데 이들 모두가 정치인들의 편 가르기 선동에 넘어가서 그런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이 글을 쓰는 이는 그 문제를 두고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 병리적 현상은 원인을 집어내기가 그리 간단치도 않고 치유 방법은 더더욱 어려운 문제겠으나, 그렇다고 그냥 둘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아끼며 쓰다듬고 살기에도 짧은 게 인생인데 미워하며 욕하다 가기에는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요?
이 글을 쓰는 이는 그 갈등과 분열의 여러 원인 가운데 한 가지를 꺼내보려 합니다.
이 난제의 밑바닥엔 우월주의가 깔려 있는 건 아닐까요? 내가 너보다 많이 알고, 더 잘 보고, 바른 판단을 내린다는 생각 말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옳고 너는 그르다.”라거나 조금 물러선다고 하더라도 “내가 너보다는 낫다”라는 생각 말이지요. 내가 잘못 보았을 수도 있고 잘 못 판단할 수도 있는데 생각이 거기에는 못 미치는 건 아닐까요? 많이 배우고 이것저것 주워들은 게 많다 보니 지식이 지성으로 익지 못하고 독선으로 쉬어 버린 건 아닐까요?
태공망 강여상*은 “피를 머금어 남에게 뿜으면 그 입이 먼저 더러워진다.” 하였고, 공자는 “하루에 세 번 자신을 돌아보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른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기도 합니다. 이 땅에는 김수한이란 큰 어른이 다녀가셨지요? 그분 뒤로는 큰 어른이 나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는 리처드 도킨스*의 학설과 주장의 동조자인지라 성직자의 말이라고 해서 다 맞는다고 생각진 않지만, 그 어른이 남기신 “내 탓이오.”라는 가르침은 한 시대를 뒤덮고도 남을 으뜸 잠언으로 꼽습니다. “내 탓이오.”는 우리 모두 살아남을 길이지만 “네 탓이오.“는 또한 우리 모두 사라지는 길이니까요.
불행히도 지금 우리에겐 이 혼란을 정리해 주고 이끌어 줄 지도자가 없지만 큰 스승들의 가르침은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으니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라도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그래요, 잘못은 내게 있어요!
뜨거운 눈물로 가슴 적시며

혼자서 너무나 고민했어요
그렇게 사랑한 나를 잊어도 되는 건가요
가슴 메어지는 그런 슬픔을
나 혼자서 받고 있어요
이보다 더한 일들도 많았었는데
우리가 헤어진다니 믿어지지 않아요
그래요 잘못은 내게 있어요
언제나 내게만 탓을 하니까
(이선희 – <그래요, 잘못은 내게 있어요> 가사)
8~90년대 가요계를 휩쓴 이선희는 1964년 12월 14일 충청남도 보령군에서 태어나 서울 용산구에서 자랐다. 인천전문대에 다니던 1984년, 제5회 MBC 강변가요제에 과 선배 임성균과 "4막 5장"이란 팀을 꾸려 참가하여
폭발적인 가창력과 바지만 고집하는 옷차림이 매력으로 다가가 남성 팬보다 여성 팬을 더 많이 가진 가수로도 유명했다. '언니부대'의 원조다. 동그란 안경과 커트 머리가 당시 여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이른바 '이선희 증후군'을 일으키기도 했다. 글쓴이의 후배 가운데 한 사람은 이선희를 연모한 끝에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처럼 이선희와 닮은 여성을 만나 혼인한 일도 있다.
1991년에는 서울시 의원에 당선되어 ‘선량’을 경험하기도 했고,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로 스스로 작사, 작곡을 해내는 생산자가 되어 한층 무르익은 음악성을 뽐내고 있다. 2,000년대부터는 ‘국민가수’라는 칭호와 함께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
*강구연월 - 태평성대의 평화로운 풍경.
*강여상 – 강태공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강상 또는 강여상의 본관은 천수 강 씨(天水姜氏)며, 염제 신농씨의 후손이라 전한다. 주나라 문왕ㆍ무왕을 도와 주나라를 건국한 일등공신이고 공을 인정받아 산동 지역을 분봉 받고 제나라(齊國)를 건국시조가 되었다.
*리처드 도킨스 - 영국의 진화생물학자와 동물행동학자로,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 등의 책을 남겼다. 대표적인 무신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