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 칼럼니스트

지난 8일, 제주에 폭설이 쏟아졌다. 섬이 흰옷을 갈아입고 원시로 돌아갔다. 산도 들도 길도 집도 흰빛 일색이다.
새벽 4시, 눈빛으로 눈부신 베란다로 다가가 블라인드를 올리고 내다본다. 눈이 내려야 겨울인데 하고 기다려선가. 그만한 원쯤 못 풀어 주겠냐는 듯 폭설이다. 눈은 혼돈 광막하게 세상을 획일화하는 마술사다. 요란한 데를 하얗게 칠하고, 파인 데를 메워 한 모습 한 빛깔로 바꿔놓았다.
눈 내리는 하늘이 새카맣다. 시작이라 듯 그치지 않을 기세다. 야단났다. 지금 백내장 수술 중이잖은가. 이틀 전 왼쪽에 이어 그끄제 오른쪽 눈을 수술받고, 오늘 아침 7시까지 병원에 가야 한다. 너무 이른 시간이다 싶더니, 뜻밖의 폭설이라니. 예삿일이 아니다. 대학병원이 위치한 아라동은 제주시에서도 고지대라 아랫동네와는 기후가 다르다. 워낙 큰 눈이라 빙판길에 자동차 내왕이 힘들 텐데 어쩌면 좋은가. 수술 뒤라 진료는 필수인데, 그냥 일이 아니다. 동동거리며 거실을 배회한다.
동살이 새어드는가 하는데, 병원 출근을 서두르던 작은아들의 전화다. “개인택시 하는 친구가 아파트 앞으로 갈 겁니다. 병원에 늦지 마세요.”
궁하면 통하는가. 밖은 폭설로 어제와는 딴판이다. 월동 장비를 한 택시가 툴툴거리며, 눈길을 뚫고 병원에 도착했다. 폭설로 병원은 아직 오밤중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도 멈춘 채로다. 잠 덜 깬 새벽 병원이 공동처럼 적막하다.
오전 6시 40분, 어디에도 진료하는 낌새가 아니다. 걸어 오르며 좋은 운세라도 만난 듯 미소 짓는다. ‘의사가 출근 전이겠지.’ 텅 빈 안과 대기석 앞줄에 아내와 나란히 앉았다. 한데 웬일, 안과 2번 진료실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잖은가.
“들어 오시지요.”
다리 뻗고 눈을 감으려는 순간, 나지막이 다가온 목소리가 있다. 환청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반복되는 ‘여기로.’ 눈에 들어온 건 분명, 내 눈을 수술한 J 교수의 옆 모습이다. ‘아니, 이 날씨에 출근을.’ 진료실엔 간호사도 없이 의사 혼자였다. 짐작건대, 컴퓨터 화면을 보며 환자들의 여러 자료를 체크하고 있었을까.
아니, 이 혼돈의 날씨를 뚫고 출근해 있었으니 놀랍다. 어떻게 왔을까. J 교수는 운전에 파삭한가. 가족의 도움을 받은 걸까.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저분이야말로 진정한 의사다. 명의다.’ 세간에 평판이 좋은 이유를 알겠다. 의술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인술이다.
오전 7시로 약속이 돼 있었다. 환자와의 약속이다. 약속도 언어다. 언어는 책임이다. J 교수는 화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벽 눈길을 헤치고 출근한 거다. 폭설로 뒤덮인 길을 무릅쓰고 일찌감치 출근했다. 신뢰만큼 값진 것은 없다. J 교수는 자기 인생에 성공하고 있는 분이다.
저분을 만난 건 행운이다. 정해진 시간에 하루 네 번씩 약을 넣어야 한다. 그것도 양쪽 눈이다. 한 치도 소홀하지 말자고 자신과 약속했다. 허투루 하지 않을 테다.
‘폭설 속, 새벽 진료실의 의사’를 떠올리며 약을 챙기자. 벌써 내 눈이 신문을 뒤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