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북한학을 언제까지 '고고학'으로 남겨 둘건가

2025-12-05

김한솔 북한대학원대학교 박사과정

연구 목적 北데이터 접근 허용하고

북한 연구에 과감한 투자 서둘러야

연구 현장에서 종종 "북한학은 고고학과 비슷하다"는 말이 자조처럼 오간다. 처음에는 농담으로 여겼던 이 말은, 연구를 거듭할수록 뼈아픈 현실로 다가온다.

사라진 문명의 흔적을 토대로 역사를 고증하는 고고학의 방법론은 그 자체로 훌륭한 학문적 도구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학이 '과거'가 아닌 '현재'를 다루면서도 이 도구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다.

동시대를 연구하면서도 직접적인 접근이 어려워, 부득이하게 발굴과 추론이라는 고고학적 방식에 기대야 하는 것이 북한학이 처한 역설적인 현실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숨 쉬며 역동하는 동시대 사회를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 접근 방식은 제한된 단서와 조각난 정보를 모아 퍼즐을 맞추는 '발굴'과 '재구성'에 부득이하게 의존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방법론과 대상 사이의 근본적인 '괴리'는 단순한 연구 환경의 불편함을 넘어, 북한 연구 전반이 안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통일부가 추진 중인 '인공지능(AI) 기반 정보화 사업'은 북한학 연구자로서 자연스레 주목할 수밖에 없는 움직임이다. 통일부는 지난 2020년부터 정보화전략계획(ISP)을 수립하고, 북한 관련 데이터에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을 접목하는 로드맵을 체계적으로 구축해 왔다.

북한 매체의 방대한 텍스트와 영상 자료를 AI로 분석하여 정책 수립에 활용하고, AI 챗봇을 통해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구상은 단순한 기술적 혁신을 넘어 자료 접근성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 잠재력이 충분하다.

실제로 북한정보포털을 통해 제공되는 일부 AI 분석 기능과 북한자료센터의 디지털화된 자료들은 학생과 일반 시민들이 북한 정보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문턱을 크게 낮추어 주었다. 이는 통일교육의 저변 확대라는 측면에서 분명 고무적인 진전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자의 시각에서 볼 때, 현재 통일부가 제공하는 인공지능 기반 서비스에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한다. 바로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역설이다.

◆AI·디지털 발전 눈부시지만 핵심 자료 접근은 벽에 가로막혀

분명 과거 선배 연구자들의 시절에 비하면, 디지털 자료의 양적 성장은 눈부시다. 그러나 연구의 질적 심화를 결정짓는 핵심 자료에 대한 접근성은 여전히 구조적인 벽에 가로막혀 답보 상태다.

현재의 공공 플랫폼들은 법적·제도적 제약으로 인해 이미 외부에 공개된 정보만을 다룰 수밖에 없으며, 비공개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접근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북한학 연구의 본질은 표면적이고 피상적인 정보의 나열이 아니다. 노동신문 행간에 숨겨진 정책의 미세한 결을 읽어내고, 비공개 문건과의 교차 검증을 통해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는 데 연구의 가치가 있다.

노동당 정책 우선순위의 이동을 추적하거나 미공개 통계를 분석하는 심층 연구는 현재 공개된 데이터 범위만으로는 수행하기 어렵다.

더욱이 정부 운영 플랫폼은 태생적으로 학술 연구에 필수적인 비판적 관점이나 정책 해석의 다양성을 자유롭게 확장하는 데 한계가 따른다. 결국, AI라는 최신 기술은 도입되었으나, 이를 활용하는 연구 방법론은 여전히 흩어진 조각을 모아 과거를 추론하듯 현재를 재구성해야 하는 '고고학적' 수준에 머무르는 근본적인 괴리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해법은 결국 정책 당국과 정치권의 초당적 의지에 달려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북한 연구 환경 개선을 단순한 학술 지원이 아닌, 한반도의 미래를 준비하는 필수적인 인프라 구축으로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북한 사회를 심층적으로 연구하는 행위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을 넘어선다.

◆북한 연구에 대한 투자는 통일미래 준비하는 일

상대를 정확하고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오해와 불필요한 우발적 충돌을 최소화하고, 궁극적으로 평화와 화합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기초적이고도 전략적인 단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 연구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당장의 분단 비용을 줄이고 통일 미래를 준비하는 '최소한의 안보 투자'이자,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가장 현명한 미래 투자'인 셈이다.

정치권에 간곡한 제언을 드린다. 민감 정보를 보호하는 보안 원칙은 당연히 유지되어야 한다. 다만 그 원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연구 목적에 한정된 '데이터 접근권'을 유연하게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일정 자격을 갖춘 검증된 연구자에게 비공개 자료에 대한 선별적 열람 권한을 단계적으로 부여하거나, 연구 윤리 준수와 결과물의 사전 검토를 조건으로 심층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학술용 패스트트랙'을 마련하는 것도 실질적인 지원 방안이 될 수 있다. 이는 정보의 무분별한 유출이 아니라, 팩트에 기반한 정교하고 실효성 있는 대북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학계의 역량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길이다.

통일부의 정보화 시도는 분명 훌륭한 출발점이다. 하지만 기술은 결국 도구일 뿐, 그 자체가 해답이 될 수는 없다. 진정한 변화는 연구자들이 더 이상 과거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동시대의 자료를 바탕으로 현재를 직시할 수 있는 환경에서 시작될 것이다.

휴전선 너머의 사회는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 쉬는 현실이다. 그 변화의 흐름을 올바로 읽어내려는 노력에 우리 사회가 조금 더 과감하고 책임 있는 힘을 실어주기를 기대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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