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윤채영 기자 =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뉴스핌 KYD(Korea Youth Dream)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해 어린 시절부터 정치에 입문하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한 의원은 지난 3일 오후 유튜브 채널 '뉴스핌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스토리에서 지난해 '새만금 예산 삭감'을 막기 위해 삭발까지 강행했던 일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한 의원은 "정부의 일방적 예산 삭감 때문에 머리를 아예 다 삭발을 해버렸다"며 "민주당이 끝까지 버텨가지고 그나마 상당 부분 복원을 시켰다"고 말했다.
한 의원은 올해 4월 치러진 22대 총선에서 전북 익산을로 당선되며 3선 중진 반열에 올랐다.
한 의원은 1967년 전라북도 익산 출생으로 이곳에서 대학교까지 졸업한 '토박이'다. 그는 북일초, 이리동중, 원광고를 나온 뒤 원광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1989~1990년 원광대 총학생회장을 지내면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활동을 하며 본격적인 '학생운동'을 계기로 정치권에 입문하게 됐다. 17대 총선에서 전북 익산 갑으로 처음 당선된 뒤 21대, 22대 총선에서 내리 익산 을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한 의원과의 폴리티션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윤채영 기자. 이하 윤) 문재인 청와대 출신으로도 잘 알려져 있고 의원님께서는 정무수석 근데 문재인 전 대통령하고 그 인연이 2012년 대선 캠프 때가 맞을까요?
▲(한병도 의원. 이하 한) 아니요. 제가 17대 때 국회의원 2004년 할 때 저는 이제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었고 당시 대통령께서는 청와대 비서실장을 했기 때문에 저는 여당 국회의원 거기는 청와대 그리고 제가 또 그때 당시에 운영위원회도 해서 청와대 국정감사도 하고 그랬습니다. 서로 알고 지낸 건 이미 그 당시부터
-(윤) 2004년이요
▲(한) 2004년부터 알고 지냈고 그 뒤에 이제 대통령께서는 처음에 막 출마할 의지가 없으셨잖아요. 그래서 나중에 주변에서 설득해서 출마 결심 굳히시고 그리고 굳히셨을 때 저는 문재인 대통령 당시 후보 도우려고 뛰어들었고 그게 이제 인연이 그때부터 이어진
-(윤) 대선 캠프 때 이제 본격적으로
▲(한) 이제 본격적으로 함께 일을 한 건 캠프에서 일했죠.
-(윤) 정무수석으로 지내셨을 때는 어떠셨어요? 좀 청와대 처음 일을 맡아보셨던 거였죠
▲(한) 그렇죠 저는 처음에 이제 정무비서관 한 5개월 6개월 정도 하다가 그다음에 바로 수석으로 승진을 했는데 제가 살면서 가장 바쁜 그리고 일을 하면서 제가 성격이 이렇게 날카로운 것 같은데요. 실제로는 뭘 잘 잊어먹고 이렇게 건망증도 심하고 굉장히 긍정적입니다. 아주 뭔 일 딱 생기면 그냥 안 좋은 건 털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고 성격이 그런 스타일인데 청와대에서 일하는 어떤 부담감 이게 굉장히 컸던 것 같아요. 이만큼도 실수를 하면 안 되고 뭐 좀 실수하면 그럴 수 있지가 아니고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게 그게 더 지배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일을 하면서 아무튼 그전에 국회의원하고 일하는 와중에 가장 바쁜 시간 보통 한 수석실은 7시 반
-(윤) 출근이요
▲(한) 회의가 그러면 이미 그걸 준비를 하려면 훨씬 새벽 전에 준비를 해야죠. 오전에 그냥 회의가 계속 이어집니다. 그 회의 그다음에 이제 수석 들 간의 회의 그다음에 또 대통령님하고 t 타임 그다음에 또 회의 이게 계속 이어지니까 너무 바쁘고 그 회의 끝나면 또 정부가 이제 국회 지방정부 다 해야 되기 때문에 업무 양도 엄청나고 매일 대통령 뵙고 회의를 한다는 게 대통령께서 진짜 편하게 해 주시거든요. 지금도 이렇게 뿌듯하고 사람들한테 자랑삼아 이야기를 하는 건 우리는 토론이 자유로웠습니다. 대통령님하고 생각이 달라도 정말 과감히 이야기를 하고 비서실장도 마찬가지죠. 어쨌든 깜짝깜짝 놀라죠. 대통령과 생각이 다른 것에 대해서 과감히 이야기를 하고 어떤 결정을 대통령이 하셨는데도 제가 따로 찾아뵙고 이렇게 하시면 안 된다고 안 돼요. 근데 대통령께는 그냥 이렇게 하시면 안 된다고 하면 안 돼요. 왜 이걸 하시면 안 되는 정확한 이유 그리고 대안 지금 하시면 뭐 국회 여야 협득 불가 설득이 안 된다 예산상의 문제 그리고 지금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건 국민 동의를 더 거쳐야 됩니다. 그러면 성숙을 시켜야 됩니다. 쭉 말씀을 드리면 그걸 이렇게 들어주셨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게 토론이 인사 문제든 다 토론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위기 그게 좋고 기억에 남고 자랑이기도 한데 그래도 그렇게 편하게 해주셔도 그 어떤 무게감이 엄청난 겁니다.
-(최연혁 교수. 이하 최) 정무라는 영역이 상당히 크잖아요. 어떻게 그 역할을 감당을 하셨는지 참 궁금한 게 에너지가 있으신 것 같아서 잘 하셨으리라 믿는데 어떻게 정무를 맡게 되셨어요?
▲(한) 국회의원을 했기 때문에 이제 저희 참모들도 국회의원을 한 사람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국회의원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정부가 가장 중요한 게 대국회 업무거든요. 지방정부 업무도 있지만 대국회 업무를 하기 때문에 청와대는 힘도 센 거고요. 정부가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대로 다 관여가 돼 있고요. 그리고 모든 국정 현안에 대해서 국민 수용성이나 이런 것들을 다 검토를 해야 하기 때문에 안보든 정책 상황이든 다 들여다보고 관심을 다 가져야 됩니다. 그러니까 폭은 넓고 그러는데 그래도 메인이 국회 업무이기 때문에 국회의원을 한 경험이 장점이 되지 않았나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저는 여당보다 야당을 더 많이 만났습니다. 그 국정을 운영하면서 여당은 야당 탓을 하면 안 됩니다. 왜 그러냐면 책임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야당 탓을 하는 건 거꾸로 그건 우리가 실력이 그만큼 이것밖에 안 되는 걸 인정하는 거예요. 야당은 여당이 하는 걸 대부분 반대하죠.
▲(한) 찬성하기보다는 그리고 반대를 통해서 국민 지지를 확보를 하려고 하는 기본적인 속성이 있기 때문에 그럼 설득을 하려면 여당이 뭐 하겠다 했는데 야당이 아무것도 없이 해준다고 하겠습니까? 그럼 설득해야죠. 한 번 안 되면 10번 20번 찾아가는 거 끝까지 이건 국익을 위해서 하는 거다라고 이야기하면 대화에 합의점이 찾아져요 그럼 10개 중에서 온 정성을 다하면 3개 4개 국정과제는 학계에서 풀 수 있는 거예요. 근데 내 야당 때문에 아무것도 못해라고 해버리면 한 가지도 합의점을 못 찾죠. 그건 결국은 여당이 우리 실력 없어요를 증명하는 거기 때문에 절대 야당 탓 하면 안 되고요. 어려운 여건에서도 만나고 설득해서 성과를 내는 게 그게 여당의 역할입니다.
-(최) 그 성과 중 하나가 여야 국정협의체를 이끌어내셨죠 비하인드 스토리 좀 얘기 말씀해 주시죠.
▲(한) 매일 제가 청와대 일하면서 어렵기도 했고 자부심을 느끼는 게 여야정 상설협의체 만든 거였습니다.
어느 날 야당에서 막 별로 소통을 못한다 그렇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니 내가 맨날 국회 와서 사는데 소통을 못한다고 그러면 어떡하냐 제가 막 그런 얘기를 했어요.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그랬더니 우리 내부 토론을 하는데 대통령께서 그러면 정기적으로 아예 만나자 그러면 소통 안 한다는 말을 안 할 거 아니냐 그리고 상설협의체를 한번 나는 할 의지가 있으니 설득을 해보라고 그런데 야당이 바로 한다고 하겠습니까? 그때는 이제 국민의힘뿐만이 아니고 바른미래당 다른 정당들이 규모가 있는 정당의 재기 한 5개 정도로 이렇게 됐는데 이 5개 정당을 다 설득을 해야 되고 상설협의체뿐만이 아니고 우리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에 대한 여야 공동으로 추진할 그것들을 정리를 했습니다. 한 20가지 정도. 그런데 이 20가지 의제를 정의당이 하려면 국힘이 반대하고 민주당이 하려면 국힘이 반대하고 국힘이 하려면 또 어디 반대하고 또 어느 당은 중립지대고 그러니 이걸 한 20개 국정과제를 도저히 안 될 것들은 덜어내고 그래도 최소 합의할 수 있는 것들을 국정과제를 여야 공동으로 같이 처리하자. 그리고 이 처리를 위해서 3개월에 한 번씩 만나자 상설협의체를 근데 그 합의문 쓰는 그것도 아마 제 기억으로는 청와대에서 5개 정당이 집권 여당이 추진하는 국정과제에 대해서 공동 처리하겠다는 합의문 쓴 사례가 없을 겁니다. 근데 그게 당일날까지 바뀌어요. 전날 바뀌고 한 몇 개월을 거쳐서 합의를 다 했는데 그 전날 모 당에서는 우리 못하게 했어요. 뭐 당에서 몇 번째 국정과제에 대해서 우리는 안 할래 그리고 당일날까지 그 조정을 해서 최종 합의문을 썼는데 그만큼 정성을 다 들이 고 또 그 노력을 하면 국민들이 다 보시거든요. 그런 긍정적인 방향으로 어렵게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에 있어서 그 상설협의체 만드는 게 청와대 있는 것 중에 큰 어떤 성과이기도 했고 보람이기도 했고 그렇습니다.
-(윤) 이제 국회의원 시절로 조금 이렇게 건너뛰자면 17대 국회에 당선이 되셨었죠. 그리고 한 3대 국회를 건너뛰셨어요 (어떤 생활을 하셨나요?)
▲(한) 흔히 이제 정치 야인 생활이라고 하죠. 찬 바람 분다고 하고 뭐 이제 힘든 과정이죠. 그리고 제가 국회에 당선되고 이제 좀 감회가 새로워서 제가 초기에 행정안전위원회였는데 제가 12년 만에 돌아온 한병도입니다. 이제 여야 의원 돌아가면서 인사를 하잖아요. 제가 12년 만에
-(윤) 21대 국회 때요.
▲(한) 한병도입니다. 그랬더니 제 옆에 김민석 의원이 있었던 거예요. 김민석은 18년인가 18년인가 그랬던 18년인가 20년 만에 돌아온 김민석입니다. 해서 제가 아차 싶었는데 그렇게 오랜만에 국회에 돌아온 거죠.
그런데 제가 만으로 36에 당선이 됐습니다. 17대 때 그래서 제가 67년생인데 67년생 8년생들이 제일 막내였어요. 국회의원 중에는 근데 한 번 하고 이렇게 떨어지니까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런다고 정치권에 아주 깊이 뿌리를 내린 것도 아니지 지역에 있다가 갑자기 올라왔지 그러니까 초창기에 국회의원 안 되고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무엇을 해야 될지도 준비를 하고 안 된 게 아니고 갑자기 출마를 못하게 되니까 이거 준비가 안 된 거죠. 뭘 해야 될지 그래서 참 힘든 과정이 있어서 그때도 이제 이거 사람이 이걸 자꾸 생각하면 안 되겠다 해서 그때 몇 개월간 제가 산만 탄 것 같아요. 강원도 한겨울에도 산 타고 막 왜냐하면 그러면 그 생각을 많이 않잖아요. 저녁 되면 피곤하니까 운동을 하면 맞아요. 그런 시간도 보내고 이제 서서히 다시 정리를 하고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다음에 경선에 이제 그때는 17대 때 안 되고는 출마를 아예 안 했고요. 그다음에는 이제 경선에 참여했는데 또 떨어졌습니다. 떨어지는 과정이 한 번 더 있고 대통령이 잘 만나서 청와대에 들어갔다 왔더니 지역에서 이제 위상이 확 달라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당선이 됐는데 그때 참 배우고 느낀 게 아주 많아요. 그때 느낀 건 지금 정치를 하고 있지만 선수에는 저는 절대 이제 연연 안 할 겁니다. 그러니까 이거 3선하고 4선하고의 의미는 그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내가 하는 동안에 어떤 의미를 남기고 하는 동안에 최선을 다하고 그러지 선수를 쫓다 보면 가닥 잘못 으면 사람이 아주 작아질 수도 있고요. 그 배지에 연연해서 원칙 없는 행동은 하지 않을 거고요. 내가 그런 유혹이 있다면 정말 과감히 정리하는 게 맞다는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윤) 21대 국회에 들어오시면서 이제 그런 다짐을 하셨다라는 거잖아요. 근데 굉장히 또 바쁘게 보내셨어요. 21대 때 전략기획위원장도 맡으시고
▲(한) 기획위원장도 맡으
-(윤) 바쁜 하루를 딱 꼽아서 좀 일과를 설명해 주시면 어떨까 싶어요. 시청자들은 의원들이 바쁘다는데 도대체 하루를 어떻게 보내길래 그렇게 바쁘냐 좀 궁금해하실 것 같거든요.
-(한) 그러니까 제가 원내 수석 맡을 때요. 원내대표나 수석을 임기를 1년으로 한 이유는 그 이상은 못할 것 같아요. 완전 체력의 한계를 느낄 것 같아요. 그래서 1년으로 한 것이 체력적인 문제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일정이 바쁜데 보통 이제 원내 수석 특히 전략기획위원장 이런 걸 하면 전략기획위원장은 당의 주요 회의에 다 들어갑니다. 당 대표 최고위원 공개회의 비공개회의뿐만이 아니고 정책위 당에서 하는 특위 원내 필요하면 이런 데까지 다 들어가야 되니까 모든 회의에 다 들어간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그러면 아침 7시 반부터 회의를 시작한다 그러면 회의가 계속 있습니다. 계속 점심 저녁 오후 하루 종일 30분 1시간 단위로 미팅 회의가 일정표에 그냥 꽉 차 있거든요. 그러면 그 스케줄대로만 움직이면 한 오후 45시 되면 사람이 맹해집니다. 이미
-(윤) 점심식사도 막 회의 도중에 드시고 막 하시잖아요. 도시락으로
▲(한) 도시락 많이 하죠. 특히 코로나 때문에 도시락 회의 엄청 많이 했고요. 또 기자분들도 만나야지 또 의원들도 또 뭐 설득할 거 있으면 의원들 또 점심 저녁 때 또 의원들 많이 만나야지 그리고 또 도시락 회의 하지
-(윤) 맞아요.
▲(한) 그러니까 막 점심 저녁도 계속 도시락 먹는 경우가 허다했죠. 그래서 오늘도 아까 우리 행안위 회의를 하고 오는데 의원들 다 그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때 그냥 몇 달간을 점심 저녁을 도시락만 먹었더니 이제 도시락 진짜 못 먹겠다고 할 정도로 정신없이 바쁘고 이제 좀 좀 제일 힘든 게 그렇게 바쁘면 사람은 이제 토요일 일요일날 좀 쉬어줘야 되잖아요.
-(윤) 맞아요.
▲(한) 근데 토요일 일요일은 이제 선거철에는 이렇게 못 갔지만 당직을 맡고 있어도 의원들은 지역구 의원들은 토요일 일요일 되면 이제 지역구를 가야 되는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그 타이트한 30분 1시간 단위의 일정을 다 보내고 지역에 가면 또 지역에서는 이제 똑같이 1시간 단위로 일정이 이제 지역 주민들 봬야지 민원도 받아야지 행사 가서 인삿말 해야지 그러면 또 지역도 일정을 하니까 토요일 일요일날 지역 일정을 이렇게 하고 올라오니까 제가 느낀 건 좀 필요하면 의원들이 좀 주말에든 언제든 쉴 수 있는 이런 걸 스스로 확보하지 않으면 참 어렵겠다 그런 생각이 들고 그래서 저도 요즘 막 30분 1시간 어떻게든 운동을 하려고 뭐라도 그 업무가 아닌 다른 걸 해야지 사람이 이렇게 좀 균형도 생기고 정상이 되지 계속 업무에만 계속하다 보면 너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그래서 저는 이제 회관을 걷는다든지 뭐 또 시간 잠깐 나면 운동하러 지하 1층에 식장 가서 운동을 한다든지 그런 걸로 좀 스트레스를 풀려고 노력을 하는 편입니다
-(최) 정치 말씀이시고 정책적으로는 저는 이제 기억이 나는 게 지금은 이제 머리가 많이 기르셨습니다마는 머리를 한 번 깎으신 적이 있었죠. 그렇죠 네 제 머리 새만금 새 그때 좀 소개해 주시죠.
▲(한) 머리 깎으니까 어울린다고 자주 깎으라고 그래서 제가 아주
-(윤) 네 잘 어울렸어요 제가 말씀드릴 때마다 의원님이
▲(한) 충격적인데 전라북도가 새만금이 전라북도를 향후 먹여 살릴 굉장히 중요한 지역이라고 평가를 하는데 예전 정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SOC 기반도 확충을 하고 계속 예산이 투입이 됐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부처에서 다 예산이 통과돼서 기재부 갔는데 현 정부 예를 들어서 환경부 국토교통부 부처에서 예산이 반영이 돼서 올라갔는데 갑자기 기재부에서 예산 78%를 삭감을 해버린 초유의 일이거든요. 예산을 78%를 한꺼번에 삭감을 해버리면 새만금을 하지 말라는 거죠. 이제 이건 너네 그만하라는 그리고 전북 도민들은 그전에 다른 특별한 비전이 안 보여도 새만금이라는 그 비전 희망을 생각하면서 버텨왔는데 이걸 못하게 한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도민들은 분노가 엄청 났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저뿐만이 아니고 제가 그때 도당위원장이었는데 전라북도 국회의원 전원이 삭발을 했습니다. 그만큼 충격이 큰 거였어요. 그것도 초유의 일입니다. 나중에 이제 저희들이 끝까지 버텼어요.
▲(한) 예산 이거 새만금 복원 안 하면 정부 예산을 통과하지 않겠다 민주당이 끝까지 버텨가지고 그나마나 상당 부분 복원을 시켰거든요. 그렇게 협의를 했는데 그렇게 일방적 예산 삭감 때문에 머리를 아예 다 삭발을 해버렸습니다. 근데 그때 삭발을 할 때 원래 그냥 이렇게 다 미는 게 아니라고 하던데 보통 2~3mm 이렇게 해가지고 민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이만큼 남아 있대요 근데 저는 이렇게 머리를 깎고 있는데 삭발을 하는데 깎아주시는 분은 가위로 깎으시는 것 같아요. 눈 감고 있어서 모르잖아요. 그래서 속으로 이분은 왜 삭발을 하는데 가위를 깎으시지 이상하다 하고 있는데 뭐 누가 뭐라고 뭐라고 하더니 이렇게 쭉 깎았어요. 근데 딱 거울을 보니까 정말 저는 그냥 이렇게 뭘 안 대고 그냥 예 다 밀어버리는 겁니다. 다 머리 하얀 정말 오리지널 삭발을 해서 아주 사람들이 뭐
-(최) 처음 이제 초선 의원이 됐을 때와 지금 이제 재선과 3선 하셨는데 그 당시에 지역 현황 혹은 우리 지역 주민들 유권자들의 관심 그리고 지역에 대한 지역 발전에 대한 요구 사항과 지금으로 비교해 본다면 지역 차원에서의 어떤 그런 지역민들의 지역 주민들의 유권자들의 관심이나 요구 사항들은 그 시간에 차이가 있습니까?
▲(한) 저는 똑같다고 봐요. 예를 들어서 현대자동차가 그전에 익산으로 오려고 했는데 다른 지역으로 갔거든요. 근데 그때 익산이 제가 국회의원 되기 전에 적극적으로 유치하려고 노력을 하지 않았어요. 그것에 대한 비판 아쉬움 그 당시에 제가 출마할 때 많은 분들이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금 아주 흘러서 지금도 큰 어떤 기업이 오지 않으니까 일자리가 어떤 만들 수가 없고 이런 현상이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고 이제 갈수록 오히려 국가는 더 성장을 했잖아요. 성장을 하고 경제 규모도 커지고 좀 더 국민 소득도 올라갔는데 지역에서는 전혀 그런 걸 느낄 수가 없습니다. 똑같거나 오히려 더 어려움을 해소를 하는 거죠. 그러니까 수도권 집중 현상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들거든요. 그래서 현장에 가보면 그런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하시고 지방에 대한 어떤 걱정 우려 이것은 오히려 그때보다 더 커지지 않았나 저는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윤) 의원하시면서 가장 뿌듯했던 일, 이 기억으로 국회의원 지금까지 하는 것 같다 이런 사례 하나 있을까요?
▲(한) 17대 때요. 그때 이제 이렇게 아파트가 공공 아파트가 부도가 나면 겨울에 다 쫓겨나야 했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가구 수가 많기 때문에 절박했어요. 그래서 그 특별법을 만드는 데 아주 열심히 참여를 했거든요. 그래서 이제 그 특별법을 우리가 통과를 시켰습니다. 근데 그 가구 수에 해당하는 종이학을 접어가지고요. 어마어마하게 클 거 아닙니까? 그걸 저희 방에 보내주셨어요. 이 법을 통과시켜주지 않았으면 저희들은 저희 가족은 한겨울에 갈 데가 없어서 길거리에 내쫓기게 생겼는데 이 법을 국회에서 만들어줘서 살았다고 하면서 그 한 명 한 명의 한 가구 가구의 의미를 종이학을 작은 종이학을 접어서 그 큰 항아리에 담아서 이렇게 보내주셨는데 그때 야 이게 법이라는 게 이렇게 사람을 살리고 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뭐 이러는 거구나
-(윤) 이제 어느 정도 마무리할 때가 됐는데요. 의원님 어떤 국회의원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한) 일이나 성과 이런 것보다도 그냥 한 인간으로서 어디서나 겸손하려고 노력했고 참 겸손한 사람이었다는 걸로 남고 싶어요. 우리 지역민들에게도 거창한 이것보다도 그래도 그 녀석 참 겸손했어. 일하는 동안에는 이제 겸손히 담고 있는 어떤 삶의 크기가 저는 여러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겸손이라는 단어로 좀 평가를 받으면 정치인으로서 여러 가지 잘 했을 때만 얻을 수 있는 거기 때문에 좀 그것으로 기억에 남는 정치인
-(윤) 의원님 오늘 장시간 동안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요. 다음에 또 다른 걸로 모셔도 돼.
▲(한) 그럼요
-(윤) 또 다른 기회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교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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