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국의 고객관계관리(CRM) 소프트웨어 기업 세일즈포스는 올해 엔지니어 신규 채용 중단 계획을 공개했다. 자율 작업 수행이 가능한 인공지능(AI) 에이전트 도입으로 마케팅, 고객 관리 등 핵심 업무를 대체할 수 있게 됐다고 판단해서다. 이 회사는 2023년 전 세계에서 전체의 10%에 달하는 7000명을 해고한 데 이어 올해 1000명을 더 감원할 계획이다.
인공지능(AI)이 단순 업무 보조 수준을 넘어 기획·창작 등 인간의 고유 영역까지 침투하기 시작한 가운데 정부가 ‘노동권 안전장치’ 마련에 착수했다.
23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싱크탱크인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최근 ‘AI·디지털 전환기 노동 구조의 재편과 노동권 보호를 위한 안전망 설계’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KISDI는 “AI와 디지털 기술이 비정형·인지 업무에까지 적용되면서 노동 방식과 구조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다”며 “전통적 노동권 보호 체계와 사회적 안전망의 유효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면서 정부가 처음으로 정책 대응을 시작한 것이다. 정부는 이번 용역을 통해 AI로 인한 노동시장의 변화를 분석하고 새로운 사회적 안전망과 제도 설계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KISDI는 AI 발전으로 인한 노동 현장의 변화를 폭넓게 예상했다. KISDI는 “단기 노무 제공과 같은 외부화되고 수직화된 관계가 아닌, 조직 내부에서 인간과 AI가 실시간으로 공동 작업하는 구조를 형성할 것”이라며 “예를 들어 노사관계가 고용주-노동자 간 이분법적 구조에서 AI 시스템을 매개로 한 권한 구조로 복잡성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또 “AI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높아지면서 노동자의 역할과 책임의 범주 설정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부는 이 같은 변화로 인한 노동 현장의 영향을 분석하고, AI로 인한 격변기에 현재의 제도 아래에서 고용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할지 전반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다. 또한 전환기의 새로운 노동권 보호와 사회적 안전망 설계를 위한 정책 대안도 마련할 방침이다.
정부가 AI의 일자리 침투에 선제적인 대응에 나선 것은 첨단 기술로 인한 노동권 위협 우려가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AI 에이전트 기술 경쟁으로 넘어가면서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이 나오다보니 노동 안전망 장치를 준비할 골든타임 또한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갈수록 인간을 대체하는 분야가 넓어지면서 조기에 대응하지 않으면 실질적인 일자리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며 “노동 안전망을 위한 사회 시스템 변환이나 재교육 등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AI로 인한 노동 현장의 변화는 세계 곳곳에서 현실화하는 중이다. IBM은 2023년 AI로 인력을 대체할 수 있는 직무의 채용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2028년까지 AI의 대체를 통해 전체 직원의 약 30%를 감원할 계획이다. 스웨덴의 핀테크 기업 클라나 또한 AI로 직원 업무를 대체한다며 2년째 채용을 중단했다.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안에 AI가 회사 내 중급 개발자 수준의 코딩 작업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정보기술(IT) 기업을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자 채용을 대폭 줄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 뿐 아니라 대기업들도 AI로 대체 가능한 직무는 채용을 줄이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3년 미국 등 7개국 근로자·고용주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근로자의 60%는 “AI로 인해 직업을 잃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AI로 인해 10년 내 임금이 하락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도 40%에 달했다.
업계에서는 AI로 대체가 가능한 일자리가 늘어나는 만큼 오히려 수요가 늘어나는 직업들이 생겨나면서 ‘일자리 양극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예상한다. 맥킨지는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서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와 의료·보건 분야 등에서 일자리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반대로 사무 지원과 고객 응대, 생산, 제조 등 분야에서는 일자리가 대체돼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갈수록 인간을 대체하는 분야가 넓어지면서 조기에 대응하지 않으면 실질적인 일자리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며 “노동 안전망을 위한 사회 시스템 변환이나 재교육 등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