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대홍수, 서울의 미래를 바꾸다

2025-02-03

서울역사박물관 '을축년 대홍수 그후 100년, 서울의 변화' 발간

서울 도시계획의 변화·인프라와 사회에 미친 장기적 영향 분석

[서울=뉴스핌] 이진용 기자=서울역사박물관(관장 최병구)은 서울에 미증유의 홍수 피해를 기록한 을축년 대홍수를 연구한 서울기획연구 12 '을축년 대홍수 그 후 100년, 서울의 변화』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4일 밝혔다.

이 보고서는 을축년 대홍수(乙丑年 大洪水)가 발발한지 100년이 되는 2025년을 맞아 재난·재해가 도시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한지 살펴보고 '재난 이후'에 초점을 맞춘 연구서이다. 오늘날 재해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고자 했다.

연구에는 염복규 서울시립대 교수가 책임으로 예지숙(숙명여자대학교), 고태우(서울대학교), 이향아(경상국립대학교) 교수가 참여했다.

1925년 7월 9~11일과 15~19일까지 두 차례 집중호우의 양은 753mm에 달하였고, 복구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연이은 폭우로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한강의 수위는 (구)용산 기준으로 12.74m로 현재까지의 최고 기록이다.

지금의 이촌2동·뚝섬·잠실·송파·신천·풍납동 일대의 마을이 유실되었으며 용산·마포·영등포의 주택 대부분도 침수 피해를 보았다. 이 외에 안국동·관훈동 등 시내에 자리한 지역도 수해를 피하지 못했다.

특히 한강 주변의 침수가 심했는데 한강교가 무너지고, 노량 수원지와 마포 당인리 화력발전소의 피해로 서울의 상수도와 전기도 중단됐다. 한강의 지류도 변형돼 잠실도 주변의 한강 본류가 섬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바뀌었다.

이 대홍수로 1920년대 경성도시계획에 대해 재경성 일본인 유력자층, 조선인의 여론이 반영된 조선어 언론, 경성부, 총독부 등 제각각 나뉘었다. 을축년 대홍수 이후 한강치수사업을 전제로 한 도시 확장 구상을 지향하였고, 1930년대 경성시가지계획의 구체적 실행안에 영향을 미쳤다.

총독부의 구상은 경성시가지계획안을 입안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쳤고, 이런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한강치수사업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었다. 1930년대 말부터 1940년대 초까지 여러 상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중단되지 않은 한강치수사업의 지속적인 전개는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한강의 20세기 최대 재해였던 을축년 대홍수의 기억은 지속적으로 소환되었다. 매년 여름철 집중호우나 태풍 발생 시마다 '을축년 대홍수 이래……'라는 수식어가 붙곤 한다.

최병구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오는 9월 '을축년 대홍수' 관련 기획전시도 계획하고 있으며, 재난과 재해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과 재난 이후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밝혔다.

jycafe@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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