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월성서 ‘사로국’ 흔적 첫 확인

2024-10-02

초기국가시대 진한 12국 중 하나

3세기 전~중엽 취락 양상 확인

짝 맞춘 토기에 ‘개 제물’ 정황

경주 월성(月城) 안에서 신라의 모체가 된 사로국(斯盧國) 시대 거주 흔적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2일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에 따르면 경주 월성 A지구 서남쪽 일대를 발굴 조사한 결과 사로국 시기에 해당하는 3세기 전~중엽의 취락 양상을 확인했다.

사로국은 초기국가시대 진한(辰韓)의 12국 중 하나다.

이번 사로국 시기 거주 흔적이 확인된 곳은 월성 서남쪽 가장자리, 월정교 부근으로 조사 결과 이 일대는 하천에 접해 있는 연약한 지반에 모래층이 쌓여 있었으나 3세기 전∼중엽에 취락을 조성하기 위해 흙을 다지는 작업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연구소는 벼의 겉껍질, 식물 종자, 조개껍데기 등이 섞인 유기 물질을 공정별로 다르게 사용해 약 1.5m 높이로 흙을 견고하게 하는 작업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월성의 성벽은 4세기 중·후엽에 쌓은 것으로 보는데, 그보다 100여년 앞선 시점에 막대한 인력과 물자가 동원되는 작업이 이미 진행된 셈”이라고 말했다.

취락 입구는 과거 의례를 거행한 것으로 보이는 흔적도 나왔다. 나무 기둥을 세워 만든 것으로 보이는 유구는 직경이 6m 정도 되는 원형 구조로, 의례를 마친 뒤 불을 질러 태운 것으로 추정된다. 그 안에서는 종류별로 2∼3점씩 짝을 맞춘 토기 15점이 출토됐고, 황색 안료가 발린 마직물로 감싼 것으로 보이는 흔적도 확인됐다.

연구소는 또 개로 추정되는 동물 뼈가 발견됨에 따라 “비슷한 시기에 개를 의례 제물로 바친 정황은 발견된 사례가 없다”며 “어떤 목적에서 개를 희생시켜 의례를 지냈는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주 월성은 신라 궁궐이 있었던 도성으로 전반적인 형태가 달을 닮았다는 이유로 ‘월성’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반월성’(半月城)이라 칭하기도 했다. 왕이 계신 성이라 해 ‘재성’(在城)이라고도 했다.

연구소는 오는 7일 오후 월성 A지구 발굴 현장에서 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오는 8일에는 경주 힐튼호텔에서 이번 조사 성과를 논의하는 학술 토론회를 개최한다. 현장 설명회에서는 월성이 왕성으로 전환되기 전 사로국 시기 취락 모습을 살펴본다. 학술 토론회에서는 ‘사로국 시기 월성 취락이 제기하는 쟁점’ 발제 후 월성 이전 취락의 조사 내용 검토, 월성 축조 이전의 세력에 대한 역사적 함의에 대한 토론이 이어진다.현장설명회와 학술 토론회는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안영준기자 ayj1400@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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