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의 질과 디자인, 지속가능한 소재, 노동 환경에 책임 의식을 지닌 프랑스 스니커즈 브랜드 베자(VEJA). 광고를 비롯해 마케팅 활동을 일절 하지 않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그 ‘쿨함’에 열광한다. 할리우드 배우 에디 레드메인을 비롯해 영국 왕실의 케이트 미들턴 등 많은 셀럽이 ‘내돈내산’으로 베자를 신는다. 이들의 특별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사람과 환경을 존중하는 브랜드
옛 인쇄소 건물을 개조한 베자 파리 본사는 백색의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곳이다. 이곳은 1층에서 쇼룸과 채식 카페를 운영하고 2층부터 옥상까지는 500여 명의 직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로 구성돼 있다. 라운지에서 공동설립자인 세바스티앙 코프를 만났다. 그는 2005년, 친구 지슬랭 모릴리옹과 베자를 설립할 당시를 회상하며 “목표는 사람과 환경을 존중하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소재부터 유통까지 투명한 시스템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에게안 프로젝트’ 라인을 제외한 모든 베자의 제품은 브라질에서 만들어진다. “친환경 소재, 공정무역 생산 시스템, 천연고무, 신발 공장, 정당한 근로 조건이 다 모여있는 곳”이라고 그는 이유를 설명했다. 베자는 아마존 우림보호를 위해 시장 가격의 5배로 아마존 고무를 구입하고, 면은 브라질과 페루에서 생산하는 공정무역 유기농 목화를 사용한다.
생산자와 근로자에게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원칙적으로 마케팅과 광고에 돈을 쓰지 않는다. 이러한 기업 방침이 흔들리지 않게 외부 투자도 받지 않는다. 베자는 현재 미국과 유럽 등지에 300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한다. 작년 기준 연간 매출은 약 3억 유로(4530억원) 규모다.
사람들이 베자를 사랑하는 이유는 또 있다. “대부분 디자인이나 착용감이 마음에 들어 구매하는 소비자가 많다. 우리는 환경을 위해 베자를 신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클래식한 디자인의 초기 스니커즈 모델부터 마르니·비브람·릭 오웬스 등과 협업한 제품까지 다양한 라인업이 사랑받는다.” 아티스트 디렉터 캐롤린의 설명이다.
베자는 포르투갈어로 ‘바라보다’라는 뜻이다. 겉모습을 넘어 이면을 보라는 뜻이다. 국내에서 생소한 이름이라면 이유가 있다. 베자는 첫 파리 매장을 15년 만에 낼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는 브랜드다. 미국과 유럽에 탄탄히 자리잡은 지금은 한국·일본에 진출할 계획도 있다.
베자의 선택에는 이유가 있다
파리에는 몽마르트·마라이스·제너럴스토어 세 곳의 매장이 있다. 그중 가장 최근 생긴 제너럴스토어에서 신발 전문수선 공간인 ‘코블러’를 둘러봤다. 이곳의 매니저 다니엘은 “전 세계에서 매년 수억 켤레의 운동화가 버려진다”면서 “환경을 생각하면 수선해서 오래 신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베자는 운동화 브랜드 최초로 자사뿐 아니라 타사 브랜드의 운동화 수선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금까지 3만 5000켤레가 새 삶을 얻었다.
제너럴스토어 맞은편에 위치한 ‘센터 커머셜’은 베자라는 이름을 내세우지 않지만, 브랜드의 첫 매장이자 편집숍이다. 이곳에서는 베자뿐만 아니라 난가·스노우피크·파타고니아처럼 지구를 존중하는 브랜드를 소개한다.
보르도에 위치한 ‘베자 다윈’은 좀 더 특별하다. ‘다윈’은 4명의 창립자가 합심해 만든 지역공동체로, 환경·교육·복지와 관련된 단체나 브랜드가 합심해 꾸려간다. 직접 가보니, 옛 군대 시설로 쓰이던 건물에 베자를 비롯해 유기농 레스토랑, 그로서리 숍, 서점 등이 모여있는 ‘핫 플레이스’였다.
보르도에서 두 번째로 관광객이 많은 곳이지만 동시에 긴급주거 공간이나 자급자족 텃밭,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이 후원하는 고등학교 등 교육 시설도 있다. 베자 같은 브랜드가 내는 임대료와 강연·행사 같은 이벤트를 통해 자금을 운용한다. 베자에게 다윈 매장은 실험실 기능을 한다. ‘코블러’ 역시 이곳에서 처음 시작됐다.
이처럼 베자의 모든 선택에는 환경이나 사회적인 책임의식이 따르는데, 그 의지를 가장 잘 엿볼 수 있던 곳은 파리 외곽에 있는 물류센터 ‘로긴스’다. 사회적 포용기업인 로긴스는 산업재해나 건강상의 이유로 직업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을 채용하고 자립하기까지 최대 24개월 도움을 준다. 프랑스 정부가 일부 지원하기도 하지만 베자처럼 뜻있는 기업들이 로긴스와 함께 하면서 실효성 있는 자립 뒷받침이 되어주고 있다. 지금까지 로긴스가 창출한 일자리는 500개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