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이라는 죄, 중심을 무너뜨리다

2025-03-04

대한민국이 잃은 수많은 것 중 유독 아픈 것. 중심이다. 가운데(中)의 마음(心)이라는 이 말의 사전적 정의를 뜯어보면 이렇다. 1) 한가운데 2) 행동에서 매우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부분(표준국어대사전). 2025년 3월 현재 중심을 잃고 휘청이는 우리에게 남은 것은 양극단의 확신뿐. ‘찬탄’ ‘반탄’으로 나뉘어 서로를 할퀴기에 여념이 없고, 각자의 극단이 모두의 중심이어야 마땅하다는 사나움이 거리를 지배한다. ‘다름’이 ‘틀림’이 된 지는 이미 오래. 각자의 ‘다름’이 모여 조화와 균형의 중심을 잡는 건, 2025년 한국에선 미션 임파서블인가. 한국 특유의 역동적 에너지는 지금까진 문화 자양분이 됐지만, 지금의 부글거림은 뭔가 불길하다. 이 나라의 발목을 잡을 것 같아서다.

이 힘든 삶을 살아내기 위해 믿음의 효용은 물론 크다. 하지만 그 믿음이 부동의 확신으로 바뀌면 위험하다. 융통성이 없는 견고한 믿음은 남을 배척하기 마련이어서다. 화제의 영화 ‘콘클라베’의 대사, “확신은 가장 큰 죄다. 항상 의심하라”처럼. 확신의 창살에 스스로를 가둔 극단 세력이 사회 전체를 좀먹어가는 걸 보는 건 괴롭다. 그에 기생해 횡재하는 유튜버들만 좋을 따름. 숟가락 얹기에 바쁜 정치인들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법원을 때려 부수고, 경찰에 발길질하는 이들은 어찌 보면 한국 사회의 뒤틀린 상처다. 문득 떠오르는 에세이집, 고다 아야(幸田文)의 『나무』(책사람집). “뒤틀리고 굽은 부분은 (중략) 고집불통처럼 심하게 변질된 탓에 톱으로 자르면 완강히 저항하다 결국 (중략) 심하게 휘거나 갈라지는 경우도 있다.” 최저 등급에도 들지 못하는 목재를 설명한 부분이다. 한국이라는 나무가 지금 딱 이렇지 않은가.

중심이라는 건 잡는 것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일단 잡으면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발레가 대표적. 어렵지만, 해내면 이 세상 것이 아닌 황홀이 온다. 이 황홀의 대가는 그러나 크다. 이 아름다움은 중심을 잡고 바꾸고 또 잡는 어려움을 감내하기에 얻어지는 열매인 셈. 작금의 대한민국은 그러나 이와 정반대다. 좌우 극단이 서로를 방해하고 축을 가져가겠다 싸우는 형국. 중심 잡기에 필수인 코어 근육에 해당할 국가 경쟁력과 경제는 안중에 없다. 중심과 균형은 사치가 됐다.

고다는 적었다. “생물은 인간도 새도 짐승도 모두 상처를 감싸 안아야 할 필요가 있다. 나무도 당연히 그렇게 한다”고. 한국은 어떤가. 서로의 상처를 감싸 안을 것인가, 휘고 갈라져 톱날에 튕겨 나가는 운명을 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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