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LA 다저스와 밀워키 브루어스의 4차전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이 탄생했다. 다저스 선발투수로 나선 오타니 쇼헤이는 1회초 삼진 3개를 잡아 이닝을 끝내고 1회말 톱타자로 바로 타석에 들어서 홈런을 쳤다. 오타니는 6이닝 동안 삼진 10개를 잡고,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타자로는 1·4·7회에 홈런 3개를 기록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오타니가 음악의 베토벤, 희곡의 셰익스피어, 농구의 마이클 조던, 골프의 타이거 우즈에 필적한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오타니야말로 역사상 최고의 야구 선수라는 찬사가 쏟아진다.
한국프로야구는 지명타자가 있어 투타 겸업이 거의 없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해태 타이거즈 김성한이 투수로 10승5패, 타자로 3할대를 기록했는데, 그도 이듬해부터는 타자에 전념했다. 고교야구에서는 투수가 타석에 서고, 보통 투수를 잘하면 타자 재능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말 잘하는 선수들만 살아남는 프로에서는 결국 하나에 전념하게 된다. 투수가 타석에 서는 미국 내셔널리그에서, 투수가 뛰어난 타격 성적을 거두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니까 오타니가 세운 한 게임 승리투수와 홈런 3개의 기록은 다시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 있다면 오타니만이 가능하다.
군산상고, 선린상고, 부산고 등의 고교야구를 보기 시작해서 프로야구 팬이 됐고, 박찬호와 김병현이 진출한 메이저리그에 열광하고 선동열이 활약하던 일본프로야구를 보던 시절이 있었다. 1918년 이후 ‘밤비노의 저주’로 우승을 못한 보스턴 레드삭스가 마침내 86년 만에 우승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았고, 시애틀 매리너스로 간 이치로의 활약에 감탄하고 뉴욕 메츠에서 돌아와 홋카이도에 연고를 둔 닛폰햄 파이터스의 심장이 된 신조 쓰요시에게 매력을 느끼기도 했다. 야구는 물론 축구와 농구 등 스포츠의 세계는 이야기가 넘치고 많은 영웅이 명멸한다. 오타니는 과거 영웅들이 심혈을 기울여 그려낸 거대한 스토리의 정점이며, 새로운 시대의 영웅이 탄생하는 서사시라 할 만하다.
오타니가 미국 진출을 했을 때만 해도 크게 흥미롭지는 않았다. 투타 모두에서 탁월한 오타니가 메이저리그에서도 겸업하며 성공할 것인지 관심을 가진 정도였다. 그런데 너무 잘했다. 그리고 들리는 이야기마다 진기했다. 현실의 영웅이 아니라 신화나 전설에 나와야 할 영웅의 일대기를 듣는 느낌이랄까. 고1 때 작성했다는 만다라트 계획법을 보고 정말 놀랐다. 불교의 만다라 도형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만다라트는 한 가지 핵심 목표를 중심에 두고, 이를 위해 필요한 8가지 세부 목표를 주변에 배치한 뒤 세부 목표마다 다시 8개의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우는 구조의 목표 달성 도구다.
오타니의 핵심 목표는 프로 드래프트 1순위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목표는 몸만들기, 제구, 구위, 변화구, 스피드, 멘털 그리고 운과 인간성. 좋은 운을 만들기 위해 야구부실 청소, 쓰레기 줍기, 인사하기, 긍정적 사고, 책 읽기 등을 한다. 인간성을 위해 감성, 배려, 예의, 감사, 계획성, 신뢰성 등을 키운다. 최고의 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 체력과 기술만이 아니라 운과 인간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미 고1 때부터 알고 실천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오타니는 목표를 달성한 최고의 야구 선수이며 품성과 태도에서도 거의 완벽해 보인다. 과연 현실에서 가능한 일일까 의심도 가지만, 오타니는 노력과 결과로서 증명하는 중이다.
언젠가부터 영웅이나 스타의 인간성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되었다. 실력이 최고라면, 어느 정도의 일탈과 악행은 미디어도 대중도 용서했다. 범죄자만 아니면 된다며.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지금은 나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폭력을 가하는 행위가 묵인되거나 조장되는 시대다.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자랑스럽게 떠벌린다.
돈과 성공만으로 면죄부가 주어지는 시대에, 선한 영웅은 더욱 필요하다. 배드 엔딩을 좋아하고, 안티 히어로에 열광하던 내가 현실에서 선한 영웅을 간절하게 바랄지는 미처 몰랐다. 그러나 픽션에서조차 선의와 정의가 조롱받는 시대이기에 오타니 쇼헤이 같은 영웅을 더더욱 칭찬해야 한다. 예의, 배려, 신뢰, 감사 등의 가치가 반드시 인간에게 필요한 미덕임을 영웅과 스타들이 보여주어야 한다. 오타니는 단지 재능만이 아니라 노력으로 인간성과 운을 만들고 쌓아왔다. 오타니가 증명하듯, 인간은 노력으로 선해지고 이타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존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