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 〈159〉노 대통령 “기업은 하나라도 세계 일류 상품 만들어야”

2025-04-22

임기 5년차 연두기자회견…12월 대선 앞두고 주목

1992년 새해 아침이 밝았다. 새해는 언제나 희망의 상징이었다.

1992년은 노태우 대통령의 임기 5년차였다. 청와대는 대통령 연두기자회견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은 그해 국정 전반의 설계도였다. 더욱이 12월에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그 어느 해보다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에 관심이 쏠렸다.

“어떤 내용이 담길까?”

대통령 연두기자회견 관련 자료는 손주환 정무수석(전 공보처 장관)실에서 준비했다. 손 수석은 일간지 기자를 거쳐 한국기자협회장을 역임한 언론인 출신이었다. 그는 정무수석 시절 일에 대한 집념이 대단해 일요일은 물론 연휴에도 하루도 쉬지 않고 출근했다고 한다.

준비한 자료는 노 대통령에게 사전에 보고했다. 이어 노 대통령과 손주환 정무수석, 김종휘 외교안보수석, 김학준 공보수석(전 동아일보 사장)이 함께 독회(讀會)를 했다. 기자회견 준비는 김학준 공보수석실에서 담당했다. 일간지 기자 출신인 김 수석은 노 대통령의 민주화와 통치철학을 가장 논리적으로 대변한 이른바 청와대의 이론가였다.

정해창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의 증언.

“공보수석실은 8회 이상 자체 독회를 거쳐 내용을 정리했다. 정치 일정을 제외한 나머지를 완성하고 1월 8일 오후 수석들과 독회를 했다. 기자회견문은 지난해를 회고하고 새해 나라가 처한 국내외 상황을 정리한 뒤 경제정책, 정치일정, 남북관계, 사회질서 확립과 주택·교육·환경 등 사회정책, 새해 시정 방향을 요약하고 마지막으로 임기 마지막 해 각오를 피력하는 순으로 정리했다.”(대통령 비서실장 791일)

그해 1월 10일. 노태우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 30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연두기자회견을 열었다. 노 대통령이 정원식 국무총리와 정해창 대통령 비서실장, 김학준 공보수석 등과 회견장인 춘추관으로 입장해 회견을 시작했다.

회견장에는 정 총리를 비롯한 전 국무위원과 민자당 김영삼 대표(전 대통령), 김종필(전 국무총리), 박태준(전 국무총리) 두 최고위원, 정해창 대통령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이 배석했고 100여명의 내외신 기자가 참석했다.

“지금부터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을 시작하겠습니다.”

노 대통령이 준비한 기자회견문을 25분간 서서 낭독했다. 기자회견은 TV와 라디오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했다. 회견문은 A4용지 18장 분량이었다.

노 대통령은 “모두에게 기쁨과 보람이 더하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1992년은 나라 안팎으로 대전환의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세계가 21세기를 향해 뛰고 있습니다. 올해는 반드시 우리 경제의 활력을 되살려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해야 합니다. 저는 국정의 최우선을 경제 활력 회복에 두고 물가안정과 국제수지를 개선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정부는 21세기 국제화, 정보화 시대에 맞는 창조적 인간을 기르기 위해 교육 제도개혁과 시설 현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입니다. 각급 학교 정원을 기술계 중심으로 늘리고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스스로 양성할 수 있도록 생산기술 교육제도도 마련하겠습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정부는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시책을 계속 펴나갈 것”이라며 “기업은 생산성 향상과 품질개선 노력을 기울여 한 가지 상품이라도 세계 일류가 아니면 만들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 없이는 우리 상품이 세계시장에서 설 자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이런 인식으로 기술개발과 수출, 그리고 중소기업을 우선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회견문을 읽은 뒤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했다. 기자 14명이 질문을 했다.

그동안 연두기자회견은 평균 1시간 10분 정도였으나 이날은 기자 질문이 잇따라 당초 예정시간보다 25분이 긴 1시간 35분간 계속했다.

기자들의 질문은 14대 대통령 후보자 내정 여부 등 정치 관련 질문이 가장 많았고 남북문제, 외교문제, 경제문제 등 순이었다.

그해 1월 14일. 노태우 대통령은 이날부터 중앙부처의 새해 업무계획을 보고받았다.

청와대는 업무보고를 지난해와 같이 부처 별로 받지 않고 국정 과제별로 유관부처 합동보고를 받았다. 노 대통령은 당초 내무부와 법무부, 총무처 등으로부터 민주 사회질서 확립대책을 보고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경제회복이 최우선 과제임을 감안해 경제안정과 경쟁력 제고 대책을 첫 번째 과제로 보고받았다.

노건일 당시 청와대 행정수석비서관(전 내무부 장관)은 13일 “연초부터 내각이 일하는 자세를 가다듬고 올해 업무계획을 조기에 확정해 적극 추진할 수 있도록 1월 중 보고를 모두 끝내기로 했다”면서 “새해 업무를 과제별로 종합보고를 받는 것은 행정공백을 최소화하고 정부 정책목표를 분명히 제시하며 관련부처가 같은 방향으로 공동노력을 경주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 새해 업무보고는 △경제안정과 산업경쟁력 제고 대책 △민주 사회질서 확립 대책 △통일기반 조성 대책 △국민복지 증진과 생활환경 대책 △교육 개혁과 문화창달 대책 등 5대 중점 정책 과제순으로 진행했다.

14일 오전 10시. 노태우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경제안정과 산업경쟁력 제고대책'을 보고받았다. 이 자리에는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상공부, 과학기술처, 동력자원부, 체신부, 노동부 등 7개 부처 장관이 참석했다.

최각규 경제기획원 겸 부총리가 먼저 물가안정과 국제수지 개선, 임금안정, 금융 세제의 효율적 운영 등 전반적인 경제안정 대책을 종합해 보고했다.

이어 각 부처 장관이 구체적인 부처별 경쟁력 강화대책을 보고했다.

김진현 과학기술처 장관은 이날 '과학기술 혁신 대책'에서 핵심선도기술 본격 개발, 과학기술 투자 확대, 우수 과학기술자 양성, 연구개발 의욕 고취와 협동 연구체제 강화, 과학기술 국제화 대책 등을 보고했다.

“고집적반도체, 인공지능(AI) 컴퓨터, 전기자동차 등 14개 핵심선도기술 개발에 대한 과제별 중장기 시행 계획을 5월 중 확정, 6월부터 본격 개발에 착수하고 이 가운데 고집적반도체와 AI컴퓨터, 첨단소재 등 5개 과제는 국제공동연구사업으로 추진하겠습니다.”

김 장관은 이어 “과학기술 투자 확대를 위해 올해부터 1996년까지 1조원 규모의 과학기술진흥기금을 조성하고 정부투자기관의 연구개발 투자 비중을 점진적으로 상향 조정하며 한국종합기술(주)을 오는 7월 1일 설립한다”면서 “우수과학기술인 양성과 대학의 기초과학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해 기초과학기술 기금을 1135억원으로 확대하고 1995년 개교할 광주과학기술원(GIST) 건설공사를 올해 착공하며 부산 대구 광주에 기초과학지원센터 지역분소를 설치한다”고 보고했다.

김 장관은 “연구개발 의욕 고취와 창의적인 과학교육을 위해 1월 중 과학올림피아드 위원회를 한국과학재단에 설치하고 연구개발 실용화사업단을 설치하며 우수한 업적을 낸 과학기술자에게 공로연금을 지급하겠다”면서 “연구기관 간 연구원 교류 권고 제도도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과학기술 국제화를 위해 올해 중 한국과 미국 과학기술자공동위원회를 개최하고 한미 과학기술개발재단 설립을 추진하며 해외 우수과학기술자 80명을 3개월 이상 국내 유치해 활용하겠다”고 보고했다.

송언종 체신부 장관은 '정보통신산업 활성화 대책'을 보고했다.

송 장관은 “오는 7월까지 제2 이동통신사업자를 선정하겠다”면서 “국제전화 사업자인 데이콤(현 LG유플러스)의 국제전화 대상지역을 현 미국과 일본 등 3개국에서 오는 8월 말까지 52개국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송 장관은 “통신위원회를 설치 운영하고 무선호출 사업은 사업구역별로 1~2개의 신규사업자를 허가할 예정”이라면서 “정보통신 분야에 작년보다 29.6% 증가한 2488억원을 들여 차세대 교환기와 고선명TV 등을 중점 개발하고 1993년까지 1000억원 규모의 정보통신진흥기금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송 장관은 “한국전자통신연구소(현 ETRI)를 국내 정보통신 분야 중심연구소로 육성하고 농어촌 지역에 컴퓨터 5만~6만대를 보급하며 국가기간전산망 확충을 위한 2단계 추진과 지역정보센터 건립, 국산통신기기의 수출도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고 보고했다.

경제부처 합동보고가 끝난 후 과학기술처는 1992년 1월 28일 청와대에 서면으로 1992년도 주요 업무계획을 보고했다. 과학기술 강국으로 도약을 위한 대책이었다.

이현덕 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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