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재일제주인 1세들의 삶

2024-12-09

<고경순 문학박사/논설위원>

“경허난, 네상(일본어의 언니라는 뜻), 고향은 어디? 난, 한림. 우리 오라바님은 한림에서 큰 주정공장 허연. 경허난, 네상 고향은 어디? 난, 한림. 우리 오라바님은 한림에서 큰 주정공장 허연.”

“금방 밥먹은 것도 잊어부는디 어떵허난 우리 어머님 생각이 남신디 모르커라. 우리 어머님 불쌍허여. 일만 일만 허당 돌아가션. 그난 그날도 일허영 집에 완 누운 것이 그냥 죽어부런. 우리 어머님 불쌍허영 어떵허코.”

앞 첫 번째는 제주 한림이 고향인 100세, 홍○○ 어르신의 말씀이다. 치매기가 있어 같은 말을 계속 반복했지만, 8세 때에 도일하기 전의 기억은 단편적이나마 매우 또렷하다. 대화 중 ‘한림 부두 앞에 ‘비양섬’도 있었다.’는 말을 듣고 마침 필자가 갖고 있던 비양도 사진을 보여드리니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바로 알아본다.

두 번째는 제주 신촌이 고향인 101세 장○○ 어르신의 이야기다. 어르신은 스스로 보행이 불가능해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다. 자신의 험난했던 삶은 기억하지 못하고 아주 오래된 어릴 적 고향의 추억과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또렷하다. 그저 어머니 이야기를 이어나가면서, 하염없이 서글픈 눈물을 흘린다. 두 어르신의 기억 안에 고달팠던 자신의 삶은 없다. 좋았던 제주에서의 어릴 적 기억과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그저 서러울 뿐.

지난달 일본 동오사카시 소재 재일1세 노인돌봄시설인 ‘사랑방’에서 마주한 어르신들의 사연이다. 이곳은 10여 년부터 재일제주인 1세의 삶의 역사와 4·3 경험에 대한 증언 채록 등을 목적으로 몇 차례 방문했는데, 이번엔 연로한 어르신들의 근황이 궁금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오랜만의 방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전에 보이지 않던 어르신들의 일상과 정귀미 원장의 모습이 새롭게 다가왔다.

‘사랑방’은 일본의 노인돌봄시설인 ‘데이서비스’라는 시설로 우리나라의 ‘주간보호센터’와 비슷하지만, 설립 배경과 운영시스템은 사뭇 다르다. ‘사랑방’은 ‘우리서당’이라는 야간학교에서 시작됐다. 오사카지역 재일1세 어르신들의 일본어 문자와 한글을 배우려는 열망이 지역의 민간단체에 닿아 1994년 ‘우리서당’이 설립되었다.

이후 ‘우리서당’의 어르신들의 자력 보행이 점점 힘들어지고 치매 등의 고령화 문제를 보고, 현재 원장인 정귀미씨를 비롯한 '우리 서당' 관계자들이 자금을 갖고 모이게 된다. 그중에는 ‘우리서당’을 이용하던 15명의 할머니가 10만엔씩 총 150만엔을 출자했고, 그 외에도 휴지에 정성스럽게 싸서 1만엔을 기부하는 등 어르신 각자의 간절한 소망이 모여 지금의 ‘사랑방’이 탄생됐다. 이렇게 시작된 ‘사랑방’은 현재 숙식·거주자 4명을 포함해 총 이용자수는 23명. 대부분 재일1세이며 그중 재일제주인 1세는 10명이다.

이제 수적으로도 여생도 얼마 남지 않은 재일제주인 1세들. 자신의 지난했던 삶은 기억에서 놓아버렸지만 끝내 고향에 대한 기억은 놓지 못한다. 재일 1세들은 연금, 건강보험, 투표권 등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현재도 이방인의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의 삶에 국가적·공적 차원에서 좀 더 실질적·적극적 관심을 가져야 함은 물론 우리 개개인도 이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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