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힘 받는 상비약 확대 논의
최근 의정 갈등이 수습 국면에 접어들면서 편의점 안전상비의약품(상비약)을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담당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그간 의정 갈등이 마무리되는 대로 논의하겠다고 예고한 데 따른 것이다. 다만 약사 단체와 편의점업계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어 새 정부의 결정이 주목된다.
1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한국편의점산업협회는 다음 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들을 만나 편의점 판매 약을 확대해야 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전달할 계획이다. 협회 관계자는 “편의점에서의 상비약 수요가 꾸준하고, 24시간 운영이라는 편의점 업태 특성을 활용해 국민 편의를 증진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꾸준히 편의점 판매 상비약 품목 확대를 주장해온 편의점 업계는 의정 갈등이 봉합 수순에 이른 만큼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이다.
2012년 개정된 약사법에 따라 편의점에서 팔 수 있는 약은 최대 20개 품목이다. 그런데 제도 도입 이후 13개로 묶여있다. 이 가운데 2개는 최근 생산이 중단되며 현재 감기약·해열진통제·소화제·소염제 등 11개 품목만 판매 중이다. 중단된 약을 대체할 품목을 지정하고, 품목을 확대하려면 관련 지정심의위원회가 열려야 하는데 심의위는 2018년 이후 열린 적이 없다. 당시 회의에서는 “제산제와 지사제, 화상 연고 등을 추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고 추후 논의하기로 했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상비약 취급 요건을 완화하라고 권고했지만 의정갈등과 비상계엄으로 논의가 멈췄다.
편의점 업계는 약 접근성을 위해 안전성이 높은 의약품 위주로 판매 품목을 확대하고, ‘24시간 운영’을 판매 조건으로 둔 것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업계 관계자는 “무약촌(약국 없는 지역)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공공심야약국은 정부가 적잖은 예산을 들여야 한다”라며 “편의점을 활용하면 재정 투입없이 유사한 정책 효과를 거둘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소비자 여론도 긍정적이다. 소비자공익네트워크가 2023년 1000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 71.5%는 편의점에서 약을 구매해본 적이 있으며, 62.1%는 품목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심야에 약을 구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른 사연이 잇따른다. 40대 김모씨는 “애가 한밤에 배탈이 나서 편의점에 지사제를 사러 갔는데, 안 팔더라”며 “가정용 상비약 수준의 일반의약품은 편의점에서도 구입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편의점 의약품 매출의 74.3%는 약국이 문 닫는 시간대(오후 5시~익일 오전 8시)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약사단체는 “무분별한 의약품 구매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반대한다. 노수진 대한약사회 홍보이사는 “해열진통제가 편의점 상비약으로 풀리자 판매량이 급증했는데, 관련 환자가 늘었다기보다 오남용 사례가 증가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했다. 이어 “의약품 접근성을 높이려면 공공심야약국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라고 했다.
일각에선 편의점들이 상비약 품목을 확대하려는 게 수익 확보 전략으로 보기도 한다. 이에 대해 편의점 협회 측은 “상비약 매출은 전체의 0.3%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유통업계에선 편의점들이 상비약 구매로 편의점 방문객이 늘면 다른 물건 동반 구매도 늘어나는 효과를 노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소비자 요구가 있다는 점에 대해 알고 있고, 확대해야 한다는 큰 방향성에 동의하고 있다”라며 “의정 갈등이 조금 더 정리되면 신중하게 검토해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