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극복 추경, 성장 회복 재정

2025-05-27

2024년 12월3일 계엄령 선포부터 2025년 4월4일 헌법재판소 파면 결정까지 불과 넉 달 사이에 대한민국은 헌정질서의 극적인 전환을 겪었다. 역설적이게도 이 위기는 혼란인 동시에 새 질서를 복원하기 위한 민주주의의 자기 치유 과정이기도 했다. 6월3일 대통령 선거는 국가 운영 방향과 국민경제 회복 경로를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전환점이 돼야 한다.

한국은행이 지난 4월24일 발표한 2025년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속보치에 따르면, 이른바 내수 4총사라 불리는 민간소비, 정부소비, 설비투자, 건설투자 전 부문이 모두 역성장을 기록했다. 수출도 반도체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둔화세가 뚜렷하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매출 급감 속에 버티다 못해 폐업이 속출했고 가계·기업·정부 등 경제 주체 전반이 자신감을 잃은 상태다. 이런 경제지표를 반영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5월14일 발표한 2025년 상반기 경제전망에서 연간 성장률을 기존 1.6%에서 0.8%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수치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전방위적인 수요 위축과 투자 부진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런 와중에 5월1일 총 13조8000억원 규모로 확정된 추가경정예산은, 편성 과정에서부터 한계를 드러낸 데다 최종 규모 역시 시장의 기대를 충족하기에는 부족했다. 추경 항목은 재해재난 예방, 통상 및 인공지능(AI) 산업 지원, 민생 안정 등으로 다양한 부문에 걸쳐 재정을 보강했지만 지금 한국 경제가 직면한 총수요 붕괴, 소비심리 침체, 민간투자 위축을 극복할 만한 ‘펀치’는 없었다. 시기는 늦었고, 규모는 작았으며, 효과는 분산됐다. 이 정도로는 정부가 신뢰를 주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집행이 아니라 정책 기조의 전환을 알리는 명확한 메시지다. 따라서 6·3 대선 이후 출범할 새 정부는 곧바로 2차 추경, 이른바 ‘내란 극복 추경’을 단행해야 한다. 이 추경은 새 정부가 단기 경기부양을 넘어, 여러 불확실성 속에서도 국민 삶의 기반을 지키고 경제 질서 회복에 어떤 철학과 의지를 가졌는지를 드러내는 첫 번째 실천이어야 한다. 현재로서는 빠르고 정밀한 정부 개입만이 침체된 경제 심리를 되살릴 수 있는 유일한 단기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다음이 더 중요하다. ‘내란 극복 추경’이 위기 돌파를 위한 응급 처방이라면, 새 정부가 내놓아야 할 근본적 재정 전략은 ‘성장 회복 재정’이다. 이는 단순히 지출을 늘리는 확장 재정이 아니다. 잠재성장률의 지속적 하락을 반전시키고, AI·반도체·그린에너지·우주항공 등 첨단 전략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며, 교육·복지에 대한 체계적 투자와 지역 격차·세대 갈등·불평등 등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적 투자 설계를 포함해야 한다. 재정은 위기 시 정부가 국민과 시장에 보낼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신호다. 이제 재정정책은 경기 회복을 위한 정책 처방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성장경로와 공정한 사회 구조를 설계하는 마중물도 돼야 한다.

대외 환경의 불확실성 또한 빠르게 증폭되고 있다. 트럼프 2기 정부는 자국 중심의 통상정책을 다시 본격화하며, 중국 등 주요 교역국과의 관세 갈등을 재점화하고 있다. 당초 미국과 중국은 각각 145%, 125%에 이르는 고율 관세를 예고했지만 최종적으로 30%와 10% 수준으로 조정하며 충돌은 일시 진정된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이는 전면적 통상전쟁을 유예한 것일 뿐, 세계 교역질서의 탈규범화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현재진행형이다.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 한국의 주력 산업은 글로벌 충격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국내외 연구기관들은 한국의 연간 수출이 최대 500억달러 이상 감소하고, GDP는 최대 1.5%포인트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문제는 단기 수출 감소가 아니라, 구조적 위기로의 전이 가능성이다.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은 우리에게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은 곧 실물경제의 기반을 위협하는 구조적 리스크다. 한국 경제는 고금리·고물가 속에 내수가 위축되고, 투자 심리는 얼어붙었다. 여기에 지역 간 성장 격차, 산업 기반의 수도권 집중, 청년층의 일자리 이탈과 미래 불안이 겹치며 경제의 기초체력과 구조적 균형이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내부 취약성과 대외 통상 압박이 맞물리면, 단기 둔화를 넘어 장기 침체의 문턱에 이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정책의 신뢰성과 국가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뒷받침할 질서와 방향성이다. 그것이 국민의 삶을 다시 움직이고, 시장의 신뢰를 되찾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6월3일 대선은 바로 그 방향 전환의 분기점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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