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파이어 시대] 입춘이 지났지만 봄은 오지 않았다

2025-02-04

선물처럼 주어진 9일간의 황금휴가를 보내고 일상에 복귀했다. 그 긴 시간 내내 한 일은 주변 사람들과 서로 안부를 전한 것 뿐이다.

우리에겐 저마다 삶의 무게가 있다. 혼자 사는 사람은 먹고살기 위해 쉴새 없이 일해야 한다. 가정이 있다면 가족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노후와 만약을 대비한 적당한 자산도 모아야 한다. ‘오늘의 즐거움을 내일로 미뤄선 안 된다’는 욜로(YOLO) 정신은 언감생심 눈꼽만큼도 허용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설 연휴의 첫 날, 몇 년 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났다. 그 중 한 친구는 노안이 왔다며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면서 쓰고 있던 안경을 이마 위에 걸쳐올렸다. 다른 친구는 염색을 미루다 얼마 전 마트에서 ‘할머니’ 소리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건강이 최고다, 최대한 회사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놓지 말아야 한다, 월급만 따박따박 나와도 행복하다, 경력단절이 길어져 애가 더 크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마다 한 마디씩 하소연을 하다 부디 아프지만 말자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카카오톡 메시지로 새해 인사를 나눈 지인들도 저마다 사연을 하나씩 풀어놨다. 50대 초반 여성 A는 작년까지 다니던 계약직에서 기간만료로 퇴사했고 현재 실업급여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상반기까지는 실업급여를 받지만 이후엔 어떻게서든 일자리를 다시 구해야 한다며 막막해했다.

또 다른 50대 초반 여성 B는 올해 중반쯤 직장과의 계약이 끝난다. 운좋게 대기업 계약직에 채용됐으나 2년이라는 기간은 눈 깜빡할 새 지나간다고 했다. 다음엔 어디서 일해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다.

50대 초반 남성 C는 지난달까지 회사를 다니고 설 명절과 함께 권고사직했다. 그 역시 약간의 위로금과 실업급여로 한 동안 생활이 가능하지만,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장으로서 마냥 쉴 수만은 없다고 했다.

40대 중반 D는 30대에 다니던 소규모 업체가 폐업하면서 현재는 배달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이번 설 명절이 길어지면서 평소보다 높아진 배달 수수료를 버느라 더 바쁜 나날을 보냈다며 뿌듯해했다. 그러나 연휴가 끝난 후에는 수수료가 다시 낮아져 일할 맛이 안난다고 했다.

나는 9일이라는 황금 연휴를 보내면서 주변에 있는 대한민국 중년들의 자화상을 하나씩 관찰할 수 있었다. 그에 대한 소감을 씁쓸하다거나 슬프다는 식으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이것은 우리의 하루하루이며, 새로 시작한 올해에도 변함없이 이어질 모습이기 때문이다.

지난 3일은 절기상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이었다. 하지만 그 의미가 무색하리 만큼 매서운 한파가 불어닥친 날이었다. 어쩌면 우리네 삶도 이와 같진 않나 생각해본다. 따스한 희망이 존재하지만 막상 눈앞엔 차디찬 벽만 가득해보이는 모습과 닮아 있어서다. 그렇다면 우린 이것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틀림없이 봄이 온다는 사실을 아는 것처럼 대범하게 마주해야 하지 않을까.

올해는 경제적으로 더 힘든 한해가 될 거라고 한다. 그로 인해 정신은 피폐해지고 우울감은 더해질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 희망을 가져야 한다. 꽃이 만발하는 따뜻한 날을 기다려야 한다. 결국 봄은 오고야 말테니까. 우리 삶의 엔딩은 봄날일 거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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