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여자하고 지 아버지를” 어머니는 그 소설이 속상했다

2024-06-30

이문열, 시대를 쓰다

14. 자전소설 『변경』 때문에 생긴 일들

이것은 내 소설이 지나치게 자전적이라는 비판에 맞서 내가 만들어냈던 경구(警句)다. 삶의 경험은 소설에 섞여들 수밖에 없다. 소설의 생생한 재미를 상상력으로만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소설을 작가의 일기장으로 봐도 곤란하지만, 가령 과거의 희미한 흔적이나 공포스러운 기억의 형태로 작가의 체험은 소설에 잔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내 소설이 신산했던 젊은 날이나 가족사를 우려먹는다는 식으로 몰아치면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성공하고 있으니 멱살 잡히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1980년대 말쯤이면 이미 나는 칭찬보다는 비판을 더 많이 듣는 작가가 돼 있었다. 사람들은 문학성과 대중성이 결합된 드문 경우라고 나를 치켜세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영웅시대』나 『변경』 같은 내 소설을 두고 ‘무이념의 이념’이라고 비판했다. “진보주의자의 아들이 대표적인 보수주의자가 됐다”는 비아냥도 들었다. 사회주의 이념을 좇아 월북한 아버지를 누군가가 진보적이라고 본 것이었다.

『황제를 위하여』 비판한 김윤식 선생에 대들어

내 아버지의 월북 이후를 그린 84년 소설 『영웅시대』에 대한 오해는 안타까웠다. 내 절실한 체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일 뿐 특별히 이데올로기적인 목적의식을 갖고 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공 이동영이 공산체제 현실에 염증을 느낀 끝에 실존주의자로 전신(轉身)하는 소설의 큰 흐름이 80년대 운동권들에게는 달가웠을 리 없다. 당시 대학가 운동권 금서목록의 하나로 낙인 찍혔다.

나는 납득할 수 없는 비판에는 거칠게 반응했다. 문학평론가 김윤식(2018년 작고) 선생에게 대들었던 일은 지금 돌아보면 불측(不測)했다고밖에 할 수 없다. 한 문예지 좌담회에서 선생이 내 소설 『황제를 위하여』를 비판한 게 계기였다(91년 문예중앙 겨울호).

시민사회의 형성과 출발을 같이하는 근대 서사시로서의 ‘소설’에 미치지 못하는 ‘이야기’에 불과한 작품이라고 재단한 다음, 그나마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통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가진 자유와 평등이라는 개념, 그리고 ‘애비는 남로당’이었다는 개념 때문이었다고 선생은 지적했다. 그런데 황당무계한 이야기는 다른 데도 다 있는 것이고, ‘애비는 남로당’도 당시 남북 관계로 볼 때 설 자리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이문열의 것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고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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