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경향] “1990년대 이전에는 지금과 아주 달라서 서울 청량리, 남대문에서도 노숙인을 많이 볼 수 있었어요. 지하도에도 노숙인이 가득했고, 동냥하는 아이까지 온 가족이 길에서 지내는 경우도 많았죠. 그들을 보면서 왜 저렇게 지내야 할까, 왜 병이 있는데도 치료받지 못할까, 저 사람들의 병명은 뭘까, 이런 질문을 계속 품어왔던 것 같아요. 그런 질문을 붙들며 어쩌다 보니 25년이 됐네요.”
지난 12월 9일 서울 은평구 소재 시립병원인 서북병원 연구실에서 만난 최영아씨는 노숙인, 가난한 사람들을 주로 진료해온 지난 25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과 전문의 최영아씨의 의사 경력은 항상 낮은 곳을 향했다. 2001년 내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뒤 서울 청량리 인근에 노숙인들 대상의 무료 병원인 ‘다일천사병원’을 2002년 설립해 상주 의사로 근무한 그는 이후 ‘쪽방촌의 슈바이처’라 불린 고 선우경식 원장이 이끈 영등포 쪽방촌 ‘요셉의원’, 서울역 ‘다시서기의원’, 은평구 ‘도티기념병원’ 등에서 일했다. 서울시립 서북병원도 인근에 있는 노숙인 거주 요양시설 ‘은평의 마을’ 등과 연계해 취약계층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는 말한다. “다일천사병원, 요셉의원 때부터 봤던 분들을 10년 넘게 여기서 보기도 해요. 그들의 문제가 한 번에 쉽게 해결되지 못하니까요. 병을 포함해서요.”
최씨는 “노숙인과 다른 사람들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크지 않다”며 “노숙인들은 그들의 취약한 삶의 환경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모르고 넘어갈 수 있는 병을 더 크게 앓거나 남들이 70~80대에 겪을 병을 40~50대에 겪는다는 정도의 차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일반적으로 70~80대에 오는 치매, 뇌경색, 쇠약함에 따른 합병증, 육체노동 및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과정에서 오는 관절질환 등이 몇십 년 일찍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오늘날엔 직장을 잃거나 사기를 당하거나, 아주 작은 계기로도 관계가 단절되고 최악의 상태에 내몰리는 경우도 많다”며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늙고, 노숙인들이 겪는 질병과 문제가 나와는 동떨어진 특이한 집단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연세대 인문사회의학 과정 석사 논문 내용을 바탕으로 2015년 <질병과 가난한 삶>을 쓰기도 했다. 그는 책에서 노숙인이 앓는 병과 그것을 만든 사회적·제도적 배경을 분석한다. 최씨는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의 사례를 봐도 나라만 다를 뿐 노숙인들이 겪는 병과 그들의 삶의 형태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며 “장기간의 스트레스와 불안정함에 따른 만성적인 정신과적 질병, 알코올 중독 등이 함께 나타나는데, 결국 삶이 바뀌어야만 병이 조절된다”고 말한다.
노숙인들이 여전히 일반 인구집단에 비해 심하게 앓는 병이 결핵이다. 예방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식사와 생활습관이 필수다. 최씨는 “결핵을 ‘가난병’이라고도 한다. 잘 먹고 건강한 삶을 사는 사람들도 결핵에 걸릴 수는 있지만 대부분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노숙인들의 경우 결핵으로 인해 내부 장기가 치명적으로 문드러지고 손상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에서 2010년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노숙인 중 임상 증상이 나타나는 활동성 폐결핵 환자의 비율은 5.8%로 일반인구집단(0.25%)의 약 23배에 달한다. 그는 “수많은 노숙인 결핵 환자를 임상에서 보면서 결국 핵심은 잘 먹는 것이라는 걸 체감했다”며 병실 안에서의 진단·치료를 넘어 이들의 삶의 조건으로 이어지는 관리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최씨는 자연스레 이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지원시설과 제도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지난 25년간 가장 인상적이었던 변화를 묻는 질문에 최씨는 2011년에 제정돼 이듬해 6월부터 시행된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 지원에 관한 법률’을 꼽았다. 법 제정에 관여했던 그는 “과거엔 노숙인이 ‘국민 밖의 국민’이었다면 이 법의 제정으로 인해 노숙인도 국민으로 인정받고 ‘행복추구권’을 말할 수 있게 됐다”며 제도적 기반의 중요성을 말했다.
“노숙인들은 취약한 삶의 환경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모르고 넘어갈 수 있는 병을 더 크게 앓습니다. 장기간의 스트레스와 불안정함에 따른 만성적인 질병은 결국 삶이 바뀌어야만 조절될 수 있습니다.”
특히 여성 노숙인들이 거리 생활을 하면서 더 높은 스트레스와 건강 문제에 시달린다는 점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여성 노숙인 쉼터인 마더하우스를 설립했다. 취약계층에게 의료, 생활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영리법인 회복나눔네트워크도 운영 중이다. 그는 “노숙인 재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거, 일터 등 삶의 안정성”이라고 강조했다.
적정거리의 환대, 그리고 자기 단련으로서의 봉사
노숙인들의 문제는 ‘관계’의 문제와도 밀접하다. 최씨가 노숙인을 ‘집 없음’ 이전에 ‘관계없음’의 상태로 정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노숙인들의 공통점은 단순히 집이 없다는 것뿐 아니라 가족, 친구 등과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돼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일부 노숙인들이 병원에 와서 의료인, 복지사 등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눈에 띄게 나아지는 경우도 많이 봤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들을 진료하며 메모한 단상을 바탕으로 최근 <나는 언제라도 너의 편이다>를 출간했는데, 이 책에서도 취약계층 환자들의 일화가 등장한다. 노숙인 중에는 자신도 먹을 것이 없으면서 진료실엔 꼭 작은 선물이나 먹을 것을 들고 오는 사람이 많다. 이날 인터뷰 중에도 한 환자는 코다리조림을 해서 진료실을 방문하기도 했다.
일부 노숙인들은 의료인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치료 이후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같은 병으로 수십 번 병원 문턱을 넘는 경우도 있다. 인간이기 때문에 이들이 때론 미울 수밖에 없다. 과거 한 환자가 행패를 부리고 12번을 같은 병으로 내원했을 때, 그는 요셉의원 고 선우경식 원장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당시 선우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한 환자를 60번 입원시켜 봤는데, 결국 그 환자가 술을 끊더군요.”
최씨는 “그 사람이 어떤 과거를 갖고 있든 병을 갖고 있으면 환자일 뿐이고, 환자는 치료받아야 한다”며 “편견이나 감정 없이 의사로서 적정거리에서 그를 진단하고 돕는 것을 통해 관계를 만들어왔다”고 말했다. 이처럼 “나는 의사이고, 당신의 병이 궁금하다”며 접근하는 최씨에게 오히려 많은 노숙인 환자는 금세 마음을 열었다.
이러한 과정을 그는 일방적인 봉사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일방적으로 베푸는 관계라기보다는 다양한 환자와의 관계에서 의료진 역시 학습하고 단련될 수 있다”며 “나 역시 그간 수많은 환자를 보고 병을 진단하면서 단련됐고 성장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말한다. “누군가는 제 삶을 보고 힘들지 않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제 삶에 만족하지 않은 적은 없습니다. 의사는 철저히 환자를 통해 훈련됩니다. 20여 년간 별의별 사람과 별의별 증상, 별의별 삶과 죽음을 만나왔고, 그 안에서 저 역시 의사로서 단련돼왔죠. 의사로서 가장 병이 많은 자리를 지키고 싶었고, 앞으로도 제자리에서 이들의 병을 총체적으로 탐구하고 접근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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