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평중 한국화학산업협회 총괄본부장...위기 속 석화산업, 부진 원인과 해결방안은?

2025-01-26

(조세금융신문=김필주 기자) 중국의 빠른 국산화와 이에 따른 저가 공급과잉, 러-우 전쟁 장기화에 다른 기존 공급망 질서 붕괴, 고금리‧고물가 기조 등으로 인해 국내 석유화학(석화)기업들의 실적이 점점 침체기로 접어 들고 있다.

특히 일부 기업의 경우 수익 급감하면서 ‘유동성 위기설’까지 등장해 재무구조 개선 및 비핵심사업 매각 등 구조조정에 착수하기도 했다. 여기에 최근 신용평가기관들마저 국내 석화기업들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하향 조정하는 추세다.

이처럼 국내 석화기업 사이에 위기감이 고조되자 지난해 3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석유화학 투자지원 전담반(TF)’을 출범한 데 이어 같은해 4월 ‘석화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협의체’를 출범했다. 또 작년 6월에는 간담회를 통해 LG화학‧롯데케미칼‧GS칼텍스‧한화솔루션‧DL케미칼‧금호석화‧여천NCC 등 석화업계로부터 다양한 의견‧건의사항 등을 청취한 정부는 올해 6월경 후속방안 마련에 나설 예정이다.

국내 석화기업들과 정부가 위기 극복을 위해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조세금융신문은 국내 석화기업 다수를 회원사로 두고 있는 한국화학산업협회를 찾아 현 상황의 문제점, 향후 과제, 정부에 바라는 지원정책 등에 대한 목소리를 들었다. [편집자주]

조세금융신문은 지난 1월 중순경 국내 석화업계 내에서 30년 이상 업무 수행 이력을 갖춘 김평중 한국화학산업협회 총괄본부장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국내 석화업계가 처한 환경, 정부에 바라는 지원정책 등에 다양한 이슈에 대한 의견을 얻을 수 있었다.

Q. 국내 석화기업들이 현재 처한 부진의 주된 원인은 무엇인지?

결국은 글로벌 수요‧공급 변화 등 구조적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다. 그간 국내 석화기업들은 한 때 전체 수출 비중 가운데 60% 이상을 중국이 차지했다. 최근에서야 40% 수준으로 줄었고 이마저도 점점 축소되는 추세다. 중국 입장에서는 자국 경제를 성장시키려면 소재 산업(철강, 석화산업 등)을 부흥시켜야 하는데 주요 과실을 우리 석화 기업들이 모두 가져간 것이다. 이에 중국 정부는 경제개발 계획 수립‧이행 과정에서 자국 내 석화 산업을 대상으로 엄청난 투자를 진행했다.

특히 지난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중국 정부는 석화 산업의 국산화, 설비 대형화 등에 어마한 투자를 단행했다. 이로 인해 2021~2022년 세계 2위 수준이었던 중국 석화산업은 이후 세계 1위에 올라섰다. 예를 들어 기초 원료인 에틸렌의 경우 2020년 이전 중국 생산량은 대략 2000만톤 수준이었는데 2020년 이후에는 2600만톤까지 확대됐고 현재는 5200만톤 정도 생산하는 미국을 제치고 중국이 압도적인 세계 1위로 올라선 상황이다.

문제는 이처럼 많은 생산량이 중국 내에서 소화가 어렵자 중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저가 공급에 나섰다는 것이다. 여기에 러-우 전쟁 장기화 등으로 글로벌 경제가 침체를 겪으면서 수요는 줄어든 상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중국에만 치우쳤던 수출 비중을 대체할 시장을 찾아야 하는데 중‧남미 지역은 미국계 기업들이 아프리카 지역은 유럽계 기업들의 시장점유율이 상당하다.

결국 우리 기업들이 노릴 만한 지역은 동남아 지역인데 이 곳은 중국계 기업들과 경쟁을 해야하는 지역이다. 결국 중국의 석화산업 국산화와 이에 따른 수출 시장 상실이 국내 석화기업 부진의 주된 원인이다.

Q. 이밖에 국내 석화기업들이 마주한 주요 과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고유가도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국내 석화기업 대부분은 원재료를 중동 등에서 수입해오는데 유가가 60달러 정도면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데 최근 유가는 80달러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요는 줄었는데 중국의 저가 공세로 공급은 늘어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유가로 원가마저 높아져 국내 석화기업의 경쟁력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추후 러-우 전쟁이 종식된다 하더라고 한 번 오른 유가는 빠르게 하락하지 않는다.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 친환경 규제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탄소배출권이 1만원 이하 수준인 국내와 달리 EU(유럽연합)의 경우 탄소배출권이 아직도 11만원이 넘는 상황이다. 또 트럼프 2기 행정부도 해외 수입 제품을 대상으로 탄소세를 톤당 55달러에서 60달러로 인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친환경 규제에 대응하려면 각종 친환경 전환 관련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데 이 기술들은 막대한 투자비용이 들어가고 시간까지 오래 걸리는 어려움이 있다.

또 친환경 기술 개발은 경제성도 낮아 지금처럼 수익 부진을 겪는 국내 석화기업들이 쉽게 다가가기 어렵다. 반면 중국은 오는 206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친환경 전환에도 많은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국내 석화기업에 대한 신용평가 등급까지 하락하면서 회사채 발행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이에 따른 유동성 부족 현상도 주요 애로사항 중 하나다.

Q. 중국 석화산업과 우리 석화산업 간 격차가 많이 좁혀졌는지?

과거와 달리 현재는 공급 능력, 규모, 기술력, 원가 등 이미 대부분에서 중국 석화산업이 우리를 추월했다고 보면 된다. 뿐만 아니라 석화 제품뿐만 아니라 석화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일회용 컵, 페트병, 옷 등의 가공제품들도 알리, 테무 등 중국계 온라인쇼핑 플랫폼을 통해 국내로 쏟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한국산 석화 제품이 중국에서 반덤핑 수입되는 사례가 상당했는데 지금은 반대로 중국산 석화 제품이 한국 시장에서 반덤핑 수입 규제를 받고 있다.

Q. 트럼프 2기 행정부 집권 이후 우려되는 부분은 있는지?

어쨌든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자국 우선주의’를 절대 가치로 내세운 만큼 국내 석화업계에서도 당연히 좋을 건 없다. 그나마 국내 석화업계 입장에서 미국 시장 비중이 비교적 작다는 점이다.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의 수출 비중이 대략 80% 정도를 차지하고 미국과 EU 지역은 각각 10%씩 차지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편 관세는 석화업계 입장에 그닥 큰 우려사항은 아니다. 국내 석화업계만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고 미국이 수입하는 모든 제품에 10% 이상 관세가 부과되고 중국산 제품은 30% 이상 고율의 관세가 부과될 것이기에 별로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다만 중국 석화업계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고율 관세로 인해 향후 대미 수출이 제한될 가능성이 큰데 이때 중국 석화업계의 수출 물량이 아시아 시장에 더욱 집중될 양상이 크다. 이로 인해 우리 석화기업들과 중국 석화기업들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여 걱정이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아프리카 시장과 중‧남미 시장은 각각 EU 및 북미 석화기업들의 우위를 점하고 있어 우리 석화기업들이 진출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Q. 지난해 말 ‘석화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한 정부가 올 상반기 중 후속조치를 발표할 예정이다. 국내 석화업계가 정부에 바라는 지원방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공정거래법 등 관련 규제 개선과 금융‧세제 지원 두 가지를 우선 정부에 바라고 있다. 석화산업 자체가 대규모 설비와 기술이 필요하기에 국내 석화산업 다수는 대기업들이 영위하고 있다. 중국의 공급 과잉이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 석화기업들이 생산량 감축 등에 나서려면 거래처인 계열사나 석화기업을 보유한 다른 대기업과 가격‧물량 등을 협의해야 한다.

하지만 현행 공정거래법은 대기업간 거래 물량‧가격‧시장 상황 등을 논의하거나 암묵적 의사를 표시하는 것 자체를 담합 행위로 보고 규제한다. 따라서 국내 석화기업들 간 사업 재편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보 교환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금융‧세제 지원도 국내 석화기업들이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이다. 일단 기업 간 M&A 과정에서 부과되는 양도세가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통상 M&A 과정에서 전체 주식의 25% 이상 규모의 세금이 부과된다. 이에 정부가 한 차례 세제지원 정책을 내놓았지만 이는 세금 납부 시기만 좀 늦춰지는 효과만 있을 뿐 실질적인 감면은 없다시피 하다.

또 정부가 최근 반도체, 배터리 등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해 대대적인 지원을 천명했는데 석화산업 역시 국가전략산업에 포함시켜 주길 바라고 있다. 석화산업은 전기, 전자, 건설, 자동차 등 많은 산업 분야의 기초 소재를 생산하기에 이른바 ‘산업의 쌀’로 불릴 정도로 중요한 산업이다.

Q. 협회를 비롯한 국내 석화업계가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항간에서 국내 석화기업들이 고부가가치 제품 위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과거 우리 석화기업들이 치고 나오면서 이웃국가 일본이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했는데 이는 그간 기술 개발에 성공해 보유한 원천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고부가가치 시장은 미국 등 원천기술을 보유한 국가들이 선점했기에 진입 장벽이 매우 높은 편이다.

단 석화산업에서 고부가가치 제품으로의 전환을 이루려면 바이오 부문의 기술력이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바이오 기술력을 갖춘 기업을 꽤 보유하고 있어 향후 시간을 들여 투자에 집중한다면 석화산업의 고부가가치 제품 전환도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된다.

친환경 기술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도 이어가야 한다.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이 친환경 기술에 막대하게 투자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절대적인 강자는 등장하지 않은 상태다. 탄소 중립 기술 등 친환경 기술 다수는 신성장 원천기술로 분류되고 있다. 탄소 중립 달성이 국가 미래에 중요한 목표치인 만큼 이를 위해 친환경 기술에 대한 꾸준한 투자를 진행해야 한다.

※ 한국화학산업협회는 1974년 사단법인 한국석유화학공업협회 설립을 시작으로 한국석화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단체로, 현재 금호석유화학‧DL케미칼‧롯데케미칼‧에쓰오일‧SK케미칼‧LG화학‧GS칼텍스‧한화솔루션‧효성케미칼 등 국내 석화기업 33곳을 회원사로 두고 있다. 제1대 이정림(대한유화 사장) 회장을 시작으로 지난 2023년 제22대 신학철(LG화학 CEO 부회장) 회장까지 국내 석화기업 수장들이 회장직을 맡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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