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민간 소비를 끌어올리기 위해 연말 지출 증가분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을 늘리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연말까지 날짜가 얼마 남지 않은 데다, 내수 소비가 가라앉아 대책의 약발이 듣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3일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거론되는 소비 진작 대책과 관련해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고 소비 진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소비 진작책으로는 연말연시 일정 기간 신용카드 사용액 가운데 지난해보다 증가한 금액에 대해서는 한시적으로 소득공제율을 올려주는 방식이 검토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 ‘민생토론회’를 열고 “미국에서는 연말에 하는 소비나 카드 사용 대금을 소득세 과세표준에서 많이 감면해준다고 한다”고 직접 말하기도 했다. 중소기업 직장인 휴가비 지원, 온누리상품권 구매한도 및 사용처 확대, 국내 여행 대상 숙박 쿠폰 지원 등 간접적인 내수 지원 정책도 언급되고 있다. 이밖에 정부는 불법 채권 추심을 근절하고 대출 상환 부담을 완화하는 등 추가 민생 대책도 검토하고 있다.
문제는 심각하게 움츠러든 소비다. 오랜 기간 이어진 고물가로 실질 소득이 감소하고, 경기 침체에 따른 불안감이 커지면서 경제주체가 선뜻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 펼친 소비 진작책도 좀처럼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기재부는 지난 추석 내놓은 ‘민생안정대책’을 통해 올해 하반기 지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 이상 증가하면 증가분에 대한 소득공제율을 기존 10%에서 20%로 높이기로 했다. 또 전통시장에서 쓴 금액에 대한 소득공제율은 80%까지 올린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간 소비를 나타내는 소매판매 지표는 지난 10월 기준 8개월째 내리 감소(전년 동기 대비)했다. 의복 등 준내구재 판매가 3.9% 줄었고, 화장품 등 비내구재 판매도 0.3% 감소했다. 소비자물가는 1%대 상승률을 이어가며 차츰 안정화하고 있지만, 불어난 가계 부채가 소비 여력을 제한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3분기까지 가계신용(금융사 대출·신용거래 금액 등)은 1913조8000억원으로 2분기 말 대비 18조원 증가하며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물가 상승률이 안정세에 접어들었지만, 전체적인 수준 자체는 여전히 높아 꼭 해야 하는 지출까지 절제하는 사람이 많다”며 “이런 상황에 소비 진작책의 효과는 크지 않을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이어 “단편적으로 소득공제율을 올리는 방안과 함께 자영업자 등이 소득을 실효적으로 창출하게 하는 경제 순환 종합 대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부 내에서도 고민이 크다. 재정 누수가 계속되는 와중에 효과가 미비한 정책을 계속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소득공제율을 높이는 등의 세제 혜택은 당장 재정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걷어야 할 세금을 걷지 않는다는 점에서 조세지출에 해당한다. 정부는 이미 내년 예산안에 78조178억원의 역대 최대 규모 조세지출을 써냈다. 대기업에 대한 세액공제가 늘면서 올해보다 9.2% 증가할 전망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30조원에 가까운 세수 부족이 발생하는 상황에 조세지출을 더 늘리는 것은 재정에 부담이다.
가계는 쓸 돈이 없는데 돈을 더 쓰라는 정책이 나오고, 그 정책을 뒷받침할 재정에는 구멍이 난 형국이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비를 늘리는 대책을 쓰더라도 세수는 충분히 확보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유가 등 에너지 가격과 물가 관리에는 빈틈이 없어야만 소비 진작책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업 투자·생산을 활성화하는 근본적인 장기 처방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