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씨부인전’ 연우, 진짜 배우로의 첫 문턱 넘어서기

2025-01-26

한 명의 배우가 완성되기까지는, 여러 번의 전환점이 따라온다. 처음엔 당연히 배우가 원래 가지고 있는 이미지의 탈피다. 어떤 특정한 이미지가 강하다면, 초반에는 그런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배역들이 따라온다. 이 과정을 잘 거치느냐가 결국 배우의 ‘롱런’을 보장한다.

배우 연우의 경우, 첫 번째 관문은 누구나 예상했던 부분이었다. 걸그룹 모모랜드의 센터 출신. 큰 키와 늘씬한 외모 그리고 빠른 노래를 주로 부르는 걸그룹으로서의 이미지는 연우의 초반 배우 배역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그는 대부분 부잣집 딸이나 권력자의 딸들을 연기했다.

그런 그가 첫 번째 전환점을 맞았다. 바로 JTBC 드라마 ‘옥씨부인전’에서의 차미령 역할이다. 차미령은 그저 선역이라고, 그저 악역이라고 단순히 치부할 수 없는 인물이다. 본성은 선하지만, 가스라이팅으로 인해 복수의 도구로 길러지는 두 부분을 다 뿌리칠 수 없어 혼란스러워하는 복합적인 인물이다.

“연기를 시작하고 첫 사극인데요. 사극이라서 택한 거 아니었어요. 물론 한 번도 안 해봐서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개소리’와 ‘우리, 집’ 촬영이 있어 준비 기간이 쉽지 않았거든요. 미팅을 하고 작가님과 감독님의 설명을 듣고 확신이 들었어요. 이렇게 진심으로 만들어주신 캐릭터라며 ‘안 하면 손해겠다’ 생각했죠.”

초반 차미령은 주인공인 옥태영이 된 구덕(임지연)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한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가 다 임지연에게 복수하려 하는 송씨 부인(전익령)의 계략으로 움직인다는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차미령의 서사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오빠를 잃었고, 가족인 어머니가 그를 끊임없이 복수의 도구로 닦달한다. 사랑을 받고 싶어 도구가 되고, 도구가 되기에 사랑받는 아픔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정말 사극을 하니까 자세가 바뀌더라고요. 양반이면 자세도 좋고, 말투 역시 사극 말투를 해야 하잖아요. 정말 섬세한 연기를 해야 하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섬세하게 하지 못해 놓친 부분이 많아 아쉬웠어요.”

촬영 현장에서 끊임없이 피어나는 아쉬움을 잡아준 건, 마치 ‘개소리’의 촬영 때 이순재나 김용건 등 관록의 배우들이 그랬듯, 연우에게는 선배들이었다. 특히 옥태영과 구덕을 연기한 임지연을 동경했는데, 누구나 그렇듯 ‘더 글로리’의 팬이었다. 카리스마 있을 것 같지만, 다정했던 임지연의 덕을 크게 봤다.

“옥태영 캐릭터는 너무 멋있잖아요. 뭐랄까. 다재다능한 캐릭터죠. 노비지만 못 하는 게 없고 똑똑하고요. 미령이도 그랬지만, 저도 닮고 싶은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고민이 있어도 부딪치는 부분이 멋있으니까 미령이도 흔들리지 않았나 생각해요.”

가스라이팅으로 딸을 망치는 극 중 엄마 송씨 부인과의 연기도 많은 생각을 남겨줬다. 요즘 세상에는 어찌 보면 흔한 일이지만 부모가 자녀를 학대하고 도구화한다는 건 그로서도 경험이 쉽지 않은 부분이었다. 언니가 있어 그의 말대로라면 ‘귀여운 차별’이 있어 그 부분을 대입하려고 노력했다. 예능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도 주의 깊게 봤다.

“엄마(전익령)와는 사이가 안 좋고, 그런 서사가 있었는데 ‘OK’가 나면 너무 다정하게 대해주셨어요. 언제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커서 많은 횟수를 촬영할 때가 있었는데, 무례할 수도 있었지만 다 받아주셨어요. 또 앞에서 상대 연기로 함께 울어주셔서 너무 감사했죠. 엄마와의 장면은 배우로서 인상에 남는 장면이 많았어요.”

모모랜드의 멤버, 2018년부터 시작한 연기 생활. 그가 연기한 ‘달리와 감자탕’의 안착희, ‘금수저’의 오여진, ‘넘버스’의 진연아 등은 이러한 이지적인 그의 이미지를 살린 배역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우리, 집’의 내연녀 이세나 역부터 그는 비밀을 감추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인물로서의 경쟁력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제가 캐릭터가 있어 보이는 것이 좋은데요. ‘싸가지가 없을 것 같다’는 오해를 받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그런 사람은 아니고요. 싫은 소리도 잘 못 해요. 못 되게 말하기도 쉽지 않고요. 이번을 계기로 ‘못 된 역만 하다가 다양하게 하네’라고 말씀해주시기도 하는데, 이런 것도 저런 것도 다 잘 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실제 연우는 걸그룹 활동부터 오히려 엉뚱한 ‘4차원’과에 가까웠다. 제일 나가고 싶은 방송으로 ‘게임방송’을 꼽고, 쉬는 날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진짜 누워만 있는다고 했다. 새해의 계획 역시 ‘계획이 없는 게 계획’이라고 한다.

“그저 행복하기만 바랍니다. 연기자로서 목표를 세우면, 오히려 저를 옭아맬 것 같고요. 건강하고 행복하기가 제일 어려우니까, 잘하고 싶은 욕심으로 저를 돌아보지 못하는 일이 없게 저와 주변을 잘 돌보고 싶어요.”

앞으로 우리는 좀 더 편하고 자연스러운 연우를 기대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후배 그룹 아이브의 이야기에 눈을 크게 뜨며 숨이 막힌다는 포즈를 적극적으로 지어 보이는 그. 이지적 외모 사이로 새어나는 의외의 매력이 올해는 꼭 캐릭터를 통해 배어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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