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아현 소설가 – 에이미 탄 '뒷마당 탐조클럽'

2025-10-15

지난 겨울, 모두가 그랬겠지만 마찬가지로 고달픈 연말을 보내느라 진이 빠졌다. 목표로 한 일은 죄 실패했고, 일거리도 없었고, 좋은 뉴스도 들리지 않았다. 무기력에 몸이 처졌고, 지하로 굴을 팔 것 같았다. 이런 때를 종종 겪으면 나름의 예방책을 찾게 된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움직일 것. 겨우 신발을 고쳐 신고 무작정 도서관에 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에너지는 자주 바닥을 쳤다. 움직이기까지는 힘을 낼 수 있지만,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운 정도로.

그때쯤 새로운 즐거움을 얻었다. 옷을 아주 두껍게 껴입고서 도서관을 가다 말고 천변 벤치에 앉아서 온갖 새들이 오가는 걸 지켜봤다. 운이 좋은 날은 잠시 들른 수달을 볼 수도 있었다. 발끝이 얼고, 코가 차가워지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다시 도서관을 향해 걸었다. 가상에 살얼음이 낀 물 위를 오가면서 정신없이 먹이를 찾는 오리를 보고 있자면 나도 덩달아 마음이 바빠진 탓이었다. 그 뒤로는 생물 도감과 검색을 통해 새들의 이름을 익혔다. 그저 새라고만 불리던 조류들은 차츰 이름을 되찾았다. 백로, 청둥오리, 물까치, 까치, 왜가리, 멧비둘기. 오늘 보이는 오리 가족이 어제 있던 오리 가족인지 추측하며 들여다보는 재미로 무기력한 시간을 잘 견뎠다. 그 겨울에는 알게 모르게 나를 돌본 주변 사람들이 있었고, 관심을 끌어준 새가 있었다.

날이 풀리고, 좋은 뉴스가 들리고, 일이 바빠지면서 겨울의 탐조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 들른 도서관의 신간 코너에서 그냥 지나치기 힘든 책을 만났다. 이름하여 '뒷마당 탐조클럽'. 정말이지 반가운 제목이 아닐 수 없었다. 책을 열고 서문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아주 흥미로운 탐조 클럽에 가입하게 됐다. 막연한 즐거움이 새로운 취미로 발돋움하는 순간이었다.

“이 클럽을 통해 새들이 먹이를 찾고, 터전을 지키며, 짝을 찾고, 새끼를 기르는 모습을 조금 더 깊고 오래 바라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혹시 마음이 움직이신다면, 그림을 그리는 일에 도전해 보거나, 매일 한 마리의 특별한 새를 찾아보는 즐거움에 빠져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중략) 결국 이 클럽이 지향하는 바는, 야생 새들과 이어진 작은 인연 속에서 인간으로서 의미를 되새기며, 삶을 더욱 깊고 충만하게 살아가는 데에 있습니다.” (7쪽)

책을 덮으며 지난 겨울을 다시 떠올렸다. 철저히 도서관을 향하는 산책과 그 길을 둘러싼 생명을 중심으로. 새들을 관찰하고 그 곁에 식물과 다른 생물들을 관찰하면서 안부를 묻던 일이 퍽 즐거웠던 것이 떠올랐다.

다 함께 아름다운 스케치가 곁들여진 이 탐조의 기록을 보자. 그리고 노트와 펜을 들고 나가자. 집 근처에, 마당에, 천변에 자주 등장하는 새를 찾아보자. 그러다가 생각나는 이가 있으면 안부를 묻자. 분주하게 자신의 생을 이어가는 새들을 보며 따라 해보자. 그러다 우리가 자연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감각해보자.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은 힘을 낼 수 있게 한다. 지난했던 지난겨울을 다 함께 견딘 것처럼.

최아현 소설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아침대화>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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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새 #식물 #자연 #환경

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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