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세법상 ‘신의성실 원칙’과 과세관청의 책임

2025-07-31

(설미현 변호사) 조세는 국가 재정의 근간이자 국민의 의무이다. 그러나 그 징수 절차가 공정성과 신뢰를 잃는다면, 조세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쉽게 무너질 수 있다. 특히 과세관청이 납세자의 신뢰를 저버리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세법상 ‘신의성실의 원칙’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세법에서 신의성실 원칙은 단순한 도덕적 요청이 아니다. 국세기본법 제15조는 명시적으로 “납세자와 과세관청은 서로 신의에 따라 성실하게 행동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는 과세관청 또한 납세자의 신뢰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일방적으로 해석을 변경하거나 소급하여 과세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법적 원칙이다.

현실에서는 이 원칙이 자주 흔들리게 된다. 납세자가 과거 과세관청의 해석이나 안내를 신뢰하여 경제활동을 했음에도, 사후에 과세관청이 해석을 변경하고 이를 소급하여 과세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특히 기업 인수 합병(M&A) 과정이나 연구개발비 세액공제 등 복잡한 조세특례 적용에서 이러한 사례가 잦다. 납세자는 과세관청의 공식 견해를 믿고 행동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 ‘잘못된 해석’을 이유로 과세처분을 받는 것이다.

법원 역시 납세자의 신뢰를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대법원은 과세관청이 일정한 견해를 표명하고 납세자가 이를 믿고 행동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신뢰를 보호해야 한다고 판시해왔다. 과세관청의 신뢰보호 원칙은 조세법률주의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세관청의 내부 해석 변경은 납세자에게 불이익을 안기는 방향으로 빈번히 이루어진다. 특히 최근 디지털 전환과 복잡한 거래 구조 속에서 세법 해석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과세관청이 이를 사후적으로 바로잡으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단기적 세수 확보에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조세제도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과세관청은 조세 징수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 스스로의 과거 입장에 대해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 해석 변경이 불가피한 경우에도, 이를 일방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되며, 최소한 사전 공지와 경과 규정을 두어 납세자의 신뢰를 존중해야 한다. 나아가 조세불복 절차에서 ‘관청의 신의성실 위반’을 명시적 취소 사유로 인정하는 제도적 보완도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조세는 법률에 따라야 한다는 원칙(조세법률주의)은 단지 법 조문을 준수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납세자가 합리적 예측 가능성을 가지고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핵심이 있다. 과세관청의 신의성실 준수는 조세 정의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설미현 변호사 / 법무법인 린

서울대학교 경제학부를 졸업 후 변호사시험(2회)을 통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2009년 국세청에 입직 후 10 여 년 간 국세청 개인납세국, 서울지방국세청 국제거래조사국 및 송무국, 일선 세무서 재산세과, 조사과, 개인납세과 등에서 근무하면서 조세행정의 이론과 실무를 두루 섭렵하였다. 서울지방국세청 국제거래조사국에 3년 근무하면서 국제조세에 관한 논문(‘국제조세에서 “수익적 소유자” 개념과 “실질귀속자” 개념 간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2022)으로 조세법 분야 전문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25년 3월 법무법인 린의 파트너 변호사로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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