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는 기본, 전략 갖춰야 성공”…비즈니스 골프 A to Z

2025-03-25

“에잇, 이게 뭐야! 언니, 나 볼 하나 더 줘.”

만남을 주선한 지인으로부터 대충 언질은 받았지만, K사 A대표의 골프 매너가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다. 파4 홀에서 티샷이 페널티 구역으로 향하자 일행에게 한 마디 양해도 구하지 않고 한 번 더 티샷을 날리는 게 아닌가. 이렇게 ‘셀프 멀리건’을 쓴 게 전반에만 벌써 세 차례나 됐다.

A 대표의 무례한 행동은 티잉 구역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평평한 페어웨이에서 두 번째 샷을 날렸다. 티샷을 매번 페어웨이로 보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볼이 러프에 있더라도 그는 발로 툭툭 찼다. 얼마나 자주 했던지 드리블 실력이 축구 선수 뺨쳤다. 나무 바로 뒤에 있던 볼은 그냥 집어 들더니 페어웨이 안쪽으로 휙 던지는 게 아닌가. 기업을 이끌려면 앞뒤 생각 없는 저런 ‘무대포’ 정신도 때론 필요한 건가라며 이해를 해볼까도 했다.

막가파식 골프를 하면서도 A 대표는 후반 들어 재미 삼아 내기를 하자고 했다. 그런데 판돈이 배로 커진 파5의 14번 홀에서 사달이 났다. 세 번째 샷이 조금 짧아 그린 앞 연못에 볼이 빠졌을 때다. “야, 네가 분명 90야드면 충분하다고 했잖아? 근데 왜 짧은 거야!” A 대표는 자신의 샷이 약간 두껍게 맞은 실수를 인정하지 않은 채 캐디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린에선 힘 조절 실패로 3퍼트를 하더니 퍼트 라인을 반대로 봐줬다면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내뱉기 시작했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그날이 A 대표와 가진 처음이자 마지막 라운드였다. A대표의 K사와 맺으려던 계약도 미련 없이 포기하고 다른 거래처를 알아보기로 했다.

1인칭 시점에서 쓴 위 얘기는 사실 꾸며낸 것이다. 그런데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상황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한 번쯤 마주할 수 있는 꼴불견 골퍼들의 단면을 한두 개 녹인 것이다. ‘셀프 멀리건’은 골프백 제조 전문업체 포시즌을 운영하면서 수많은 비즈니스 골프를 해온 박노준 대표가 들려준 사례이고, 남은 거리를 잘못 알려줬거나 그린 브레이크를 엉뚱하게 파악해 줬다는 억지를 부리면서 캐디에게 화를 낸 경우는 골프 전문 광고대행사인 프로그골프 김성남 대표의 경험담을 각색한 이야기다.

골프는 비즈니스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많은 기업인들이 골프를 즐기기 때문이다. 조금 지난 조사이긴 하지만 2016년 미국 포브스 보도에 따르면 포춘 500대 최고경영자(CEO) 중 90%가 골프를 치고 있으며 경영진의 80%는 골프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답했다.

프로골프 대회도 사실 비즈니스 골프의 한 형태다. 타이틀스폰서 기업은 대회 개막을 앞두고 출전 선수와 초청 인사들이 어울려 라운드하는 프로암 경기를 치른다. 업계 관계자들은 “프로암을 잘 치르면 대회의 절반 이상은 성공”이라고 말한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AT&T 페블비치 프로암이나 DP월드 투어의 알프레드 던힐 링크스 챔피언십은 대회 자체가 프로와 아마추어가 팀을 이뤄 출전하는 프로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인들은 왜 비즈니스 활용 도구로 골프를 선호할까. 우선 골프는 한 조에 많아야 4명이 편성돼 즐기는 게임이다. 소수여서 집중도가 높다. 또한 5시간 이상 함께 한다. 점심 약속이라면 어떨까. 길어야 2시간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골프는 또한 탁 트인 자연에서 함께 걸으며 즐기는 덕분에 보다 내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기에도 적당하다. 라운드 후에는 사우나를 함께하거나 식사 자리 등으로 2차 활동을 이어간다. 후속 라운드 약속 등을 통해 지속적인 관계 형성도 가능하다.

골프의 이런 속성은 매너와 에티켓의 중요성으로 이어진다. 실력이 뒤처지는 사람과는 골프를 같이 쳐도, 매너가 없는 사람과는 절대 골프를 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오랜 시간 함께하기 때문에 골프를 치다 보면 결국 그 사람의 본성이 어느 순간 드러나게 마련이다. GE 회장이었던 잭 웰치는 그래서 임원을 뽑을 때 함께 라운드를 했다고 한다.

김태훈 캘러웨이 마케팅 담당 상무는 ‘성공을 부르는 비즈니스 골프 수업’ 책을 낸 적이 있다. 기업에 골프 관련 강의도 자주 나갔던 김 상무는 “새로 임원이 된 분들을 위한 교육에 골프를 넣는 곳들도 있었고, 은행에서는 우수 고객을 대상으로 강연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며 “골프를 주요 접대 수단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영업사원들에 대한 교육 요구가 많다”고 전했다. 이어 “비즈니스 골프는 회사를 대표해서 플레이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다 보니 타수보다는 매너와 에티켓을 갖추고 동반자를 존중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라운드 전: 비즈니스는 이미 시작

비즈니스 골프는 라운드 전부터 시작된다. 동반자에게 티오프 시간을 알릴 때는 골프장이나 시간을 혼동하는 일이 없도록 예약 문자 전체를 보내도록 한다. 약속 하루 이틀 전에는 라운드 당일 날씨 정보 등도 공유한다. 예를 들어 “내일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습니다. 비옷과 우산 등을 챙겨 오시는 거 잊지 마세요”와 같은 문자를 남긴다.

“일단 출발해야 하니까 명함은 카트에서 주고받는 걸로 하고 빨리 치시죠.” 비즈니스 골프에서는 당일 만나 라운드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시간에 쫓겨 부랴부랴 티오프를 하다 보면 서로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할 때도 있다. 동반자의 나이, 성향, 실력 등에 관한 내용을 미리 전달하는 것도 서로에 대한 배려다.

비즈니스 골프의 첫 번째는 정확한 시간 약속이다. 골프 규칙에서도 출발시간 준수를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출발시간에서 5분 이내 늦으면 2벌타를 받고, 그보다 더 늦으면 실격이다. 내비게이션 앱에 출발시간을 입력하면 골프장까지 예상 소요 시간을 미리 알려주는 기능이 있지만, 교통 상황이 급변할 수 있는 만큼 이를 100% 믿었다간 간혹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항상 티오프 1시간 전에는 골프장에 도착할 수 있도록 여유 있게 출발해야 한다. 차가 막히는 시간대이거나 교통체증이 예상되는 지역을 통과해야 한다면 동반자에게도 예상 소요 시간이나 우회로 등에 관한 정보를 알려준다.

자신을 어필할 작은 선물을 준비하면 금상첨화다. 볼이나 특색 있는 볼 마커, 모자 등을 미리 준비해 라운드에 앞서 건네주도록 한다. 홍삼 등 간단한 건강음료를 준비해 티샷 전 함께 마신다면 보다 빠르게 친숙해질 수 있다. 클럽하우스 식당 테이블에서 기다릴 경우에는 상대방이 오는 걸 볼 수 있도록 입구 쪽을 바라보고 앉는다.

#라운드 중: 배려하되 당당한 모습

라운드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존중과 배려다. 동반자가 방해를 받지 않고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골프를 즐길 수 있도록 한다. 김 상무는 “동반자가 골프 규칙과 스코어 등에 대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어떤 골퍼는 규칙과 스코어에 진심이다. 이런 진지한 골퍼에게 원치 않는 멀리건과 컨시드(속칭 OK)를 강요하는 건 불편한 일일 수 있다. 반대로 가벼운 마음으로 골프를 즐기려고 하거나 골프 기량이 뛰어나지 않은 이에게 엄격한 규칙 적용을 고집한다면 배려가 부족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룰에 관해서는 ‘상대에게는 봄 바람처럼 부드럽게,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차갑게’라는 원칙을 기억하면 큰 무리가 없다.

동반자의 플레이에 과도한 몸짓이나 찬사를 보내는 태도는 오히려 비즈니스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존중과 아부는 구분해야 한다. 박노준 대표는 “접대하는 입장이라고 해서 상대의 스윙이나 샷이 뛰어나지 않은데도 ‘대단하십니다’ ‘최고입니다’ 등의 아첨성 발언을 남발하면 자칫 역효과로 이어진다”며 “파트너를 배려하되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사업 파트너로서 신뢰감을 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습관적으로 외치는 ‘굿 샷’도 삼가야 한다. 동반자 볼이 떨어지는 걸 확인하고 칭찬을 해도 늦지 않다. 굿 샷이라고 했는데 볼이 OB 구역이나 페널티 구역으로 가면 결과적으로는 동반자를 비꼰 민망한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플레이는 신속하게 해야 하지만 안전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샷을 하는 플레이어 앞쪽으로는 절대 나가면 안 된다. 간혹 섕크가 난 볼에 맞아 큰 부상을 입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자기 플레이에만 집중하는 골퍼도 환영받지 못한다. 상대 볼이 숲이나 러프로 향했다면 함께 찾아주고 샷을 할 때까지 기다린 다음 같이 걸어 나가도록 한다.

필드에서 사업 얘기는 가급적이면 피해야 한다. 김성남 대표는 이렇게 조언했다. “함께 라운드를 나간 것만으로도 비즈니스의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유머나 가벼운 대화로 분위기를 활기차고 유쾌하게 이끌어 가야 한다.” 너무 큰 소리나 쉴 새 없이 떠드는 골퍼는 비호감이다. 동반자가 어드레스 자세를 취하려고 하면 대화를 멈추고 동작도 멈춰야 한다. 특히 장갑의 ‘찍찍이’(벨크로 테이프)에 주의해야 한다. 정적 속에서 들리는 바스락 소리가 더욱 신경에 거슬리는 법이다.

또 하나 침묵해야 할 건 레슨이다. 오전에 연습장에 등록한 골퍼가 오후에 등록한 골퍼에게 훈수한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이제 겨우 100타쯤 치는 골퍼가 동반자 스윙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원치 않는 과도한 스윙 참견은 대표적인 꼴불견 골퍼 유형이다. 코스에서는 칭찬을 비롯한 모든 행동과 언어가 사실은 ‘구찌’(견제)라는 말도 생각해볼 일이다.

그린에 올라가서는 볼을 마크하고 집어 올린 뒤 볼이 떨어지면서 움푹 파인 피치 마크를 수리해야 한다. 이때 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급적 그린 보수기를 사용하도록 한다. 퍼트 라인은 가능한 한 스스로 파악하고 동반자가 브레이크를 헷갈려 하는 때에는 반대 방향에서 봐준다. 자신감이 넘치고 믿을 수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요령이다. 홀아웃을 한 다음 먼저 카트에 올라타거나 다음 홀로 이동하는 것도 매너가 아니다. 동반자가 마무리 퍼팅을 하는 걸 지켜본 뒤 함께 이동해야 한다.

그밖에, 동반자보다는 캐디에게 관심이 더 많다거나 캐디에게 예사로 반말을 하는 골퍼, 습관적으로 남 탓하는 모습도 보기 좋지 않다. 줄담배를 피우거나 꽁초를 아무 곳에나 버리는 골퍼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업무상 전화를 받을 수 있지만 너무 오래 통화를 하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

#라운드 후: 마지막까지 감동을

18홀을 마친 후에는 모자를 벗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게 예의다. 자신의 클럽을 확인하고 사인을 할 때 건성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클럽이 뒤바뀌거나 분실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므로 클럽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

이후 단계에도 요령이 있다. 식사 장소(클럽하우스 또는 외부 식당)를 미리 정해두고 고지해주는 게 좋다. 상대의 취향을 고려해 후보 음식점을 두어 곳 더 알아둔다면 낭패가 없다. 여성 동반자가 있다면 라커룸 이용 시간에 좀 더 여유를 주도록 한다.

헤어지고 난 뒤 동반자의 안전 귀가 여부, 감사 인사를 담은 문자나 전화 한 통은 비즈니스 골프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마지막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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