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있잖아, 그거" 알고보니 이름이 있는 그거, 귤락·뚱딴지·랩칼… [BOOK]

2024-10-04

그거 사전

홍성윤 지음

인플루엔셜

문제. 다음 중에서 샴페인이 등장하는 장면은?

①민철이가 윙크를 하며 뒷주머니에서 꺼낸 건 힙 플라스크였다.

②기민이는 익숙한 듯 뮈즐레를 벗겨내더니 싱긋 웃었다.

③미선이가 냉장고를 열자 각양각색 메이슨 자가 보였다.

정답은 ②번. 답을 쉽게 맞추셨다면 와인 애호가이거나, 『그거 사전』의 독자 또는 저자 홍성윤 본인일 가능성이 크다. ①의 힙 플라스크는 위스키 등 독주를 휴대용으로 갖고 다닐 수 있게 하는 대개 금속 재질의 술병이다. ③의 메이슨 자(jar)는 유리 밀폐용기인데 최근엔 음료수잔으로 많이 쓰인다. 정답의 뮈즐레는 샴페인의 코르크 마개를 고정하는 철사를 가리킨다.

일상에서 무명(無名)의 설움을 겪고 있는 물건들은 꽤 많다. "그거 있잖아, 그거"로 통하는 물건들의 이름을 찾아준 이 신간이 반가운 까닭이다. '그거'라는 억울한 그림자에 갇혀 있다가 유명(有名)의 광명을 찾은 존재는 76개. '사전'이라는 단어를 제목에 쓸만하다.

귤 알맹이 표면의 얇은 흰색 껍질의 이름은 귤락, 배달 음식 포장을 뜯을 때 요긴한 작은 플라스틱 칼은 랩칼, 두루마리 화장지를 다 쓰면 나오는 종이심의 이름은 지관. 뚱딴지처럼 들릴지 몰라도, 전봇대의 전깃줄을 연결해주는 회오리 감자 모양의 사물 이름은 뚱딴지. 발음에 유의해야 하는 십스틱은 빨대 같지만 빨대 아닌, 빨간 스틱. 이런 작은 물건들도 당당히 이름을 갖고 있다니, 몰랐던 게 미안해질 정도다.

이름을 찾아준다는 건 사실, 지난한 작업이다. 저자도 언급한 일본 영화 '행복한 사전(원제: 배를 엮다)'의 주인공의 이름은 '마지메.' 일본어로 '성실함'을 의미한다. 이름을 붙인다는 건 그 사물의 용도와 의미를 헤아리는 일이기에, 성실함이 기본이니까.

저자는 76가지 사물의 쓸모를 헤아리는 씨줄과 날줄을 성실히, 그러나 즐겁게 엮어간다. 역사적 의미도 보너스. 책을 덮고 나면 힙 플라스크에 담긴 스콧 피츠제럴드의 어두운 러브 스토리에 뮈즐레를 따고 싶어질지 모른다. 성실하고 따스한 책이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