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황제의 보양식 우유죽, 뿌리는 고대 페르시아 쌀죽

2024-10-02

우리한테 죽은 전통적으로 아플 때 먹는 음식, 앓고 난 후의 회복식이었다. 중국은 조금 다르다. 속을 편하게 해주는 음식, 간편하게 먹는 식사로 어쨌든 일상식이다.

죽이 발달한 중국이지만 그중에서도 우유죽(奶粥)은 특별하다. 종류도 많다. 우유로 끓인 쌀죽인 우유죽이 있고 여덟 가지 보물 같은 곡식을 넣은 우유 팔보죽도 있다. 역사적으로는 설탕우유쌀죽인 내자당갱미죽(奶子塘粳米粥)이라는 것도 있고 우유로 끓인 미음이라는 유미(乳糜)도 있다. 사실 우유, 양젖, 낙타 젖 등 끓이는 젖의 종류와 들어가는 곡식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기에 우유죽은 그 종류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러니 얼핏 특별할 것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알고 보면 다른 죽과는 품격이 다르다. 일단은 보양식인데 평범한 보양식이 아니라 청나라 때 건륭황제부터 말기의 서태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황제가 즐겼던 황실의 필수 양생(養生) 음식이었다. 황제가 건강을 지키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먹었다.

우유죽이 특별 보양식이었다는 사실은 청나라뿐만 아니라 조선 왕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시대 임금님이 드셨다는 타락죽(駝酪粥)이 그것이다. 우유에다 찹쌀을 넣고 끓인 죽이다.

타락(駝酪)은 낙타 타(駝)에 끓인 우유 락(酪) 자를 쓰니 대부분 우유 끓인 죽으로 풀이하지만 정확하게는 돌궐을 뜻하는 토락(Torak)에서 온 말이다. 그러니 풀이하면 서역에서 전해진 우유죽이라는 뜻이다.

조선 후기 『동국세시기』에는 임금이 병이 났을 때 내의원 약국에서 타락죽을 진상하며 원로대신이 병이 들었을 때도 임금의 특별 명령으로 약으로 타락죽을 하사한다고 했다. 또 해마다 10월 그믐부터 정월까지는 내의원에서 타락죽을 만들어 원로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하니까 요즘으로 말하자면 임금이 하사하는 현물 특별 보너스였다.

일단 옛날에는 고단백 식품인 우유가 흔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 우유를 마시지 않던 사람이 우유에 멥쌀 내지 찹쌀을 넣고 온갖 약재를 더해 끓인 죽을 먹었으니 금방 기력을 회복할 수 있어 보양식 소리가 절로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또 다른 특별한 배경이 있었는데 조금 후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고 중국에서는 언제부터 우유죽을 보양식으로 먹었을까?

정확한 시기를 알 수는 없지만 일단 당나라 때 우유로 끓인 미음이 보인다. 9세기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만기(晩起)』라는 시에 눈 녹인 물로 새싹 전을 지지고 우유 끓여 미음(乳糜)을 만든다고 노래했다. 얼핏 봐도 보양식이다. 그런 만큼 우유죽은 당나라 전후로 중국에서 줄곧 보양식으로 쓰였는데 청나라 때 고전소설 『홍루몽』에도 나온다. 내자당갱미죽(奶子塘粳米粥)이 그것인데 우유와 설탕으로 끓인 쌀죽이라는 뜻으로 기운이 없을 때 기력을 회복하는 음식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우유죽이 왜 최고의 보양식인지는 중국에 전해지는 이야기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옛날 인도에서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기 전 수년간 고행으로 기력을 잃고 수척해졌다. 이를 본 목동 여인이 우유로 죽을 끓여 공양했더니 곧 기력을 되찾았다. 이후 이 우유죽이 중국에 전해져 당나라 황제와 후궁들이 사는 미궁(迷宮)의 필수 양생 음식이 됐다는 것이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지만 그래도 시사하는 부분은 있다. 동양의 보양식인 우유죽, 타락죽이 서역에서 전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우유죽, 타락죽의 원조가 되는 서역의 음식은 무엇일까?

적지 않은 음식 사학자들이 현재 아랍에서 먹는 우유에 쌀을 넣고 끓인 피르니(Firni)라는 음식을 꼽는다. 우유에다 설탕을 탄 후 쌀을 넣고 끓인 달콤한 우유죽 내지 쌀죽으로 장미수나 소두구(cardamom)라는 향신료로 맛을 낸다. 그리고 그 위에다 아몬드나 피스타치오 가루를 뿌려 먹는다.

이 피르니라는 음식, 고대 페르시아 왕실에서 먹었던 보양 디저트였다고 하는데 서쪽으로는 아랍을 거쳐 유럽으로, 동쪽으로는 인도 무굴제국을 거쳐 중국으로, 또 조선으로 퍼졌다.

스홀라(Shola)라는 쌀 푸딩 내지 우유죽도 중국의 우유죽, 조선의 타락죽의 원조 중 하나로 짐작된다. 이 음식 역시 우유에 설탕을 넣고 끓인 쌀죽으로 장미수를 첨가해 부드럽고 달콤하며 향기가 있는데 13세기 몽골제국을 통해 서쪽과 동쪽으로 퍼진 것으로 보고 있다.

우유 쌀죽은 동서양에서 모두 보양식으로 여겼는데 다만 유럽 라이스 푸딩(RICE PUDDING)은 서양에서 흔치 않았던 쌀죽에 방점을 찍어 특별 디저트가 됐고, 동양에서는 상대적으로 귀했던 우유에 낙점을 찍어 보양식인 우유죽, 타락죽이 됐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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