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2026년 예산안을 발표했다. 총 규모는 전년보다 8% 늘어난 728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다. 특히 연구개발(R&D) 예산은 19% 증가한 35조원에 달해 기록적인 수준이다. 이번 예산의 핵심 목표는 '초혁신경제'로, 우리 경제가 구조적으로 성장 동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됐다. 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인공지능(AI)과 R&D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AI 예산이다. 불과 3조3000억원이던 AI 관련 투자가 무려 3배 이상 늘어 10조1000억원에 이른다. 정부의 AI 전략이 어디에 방점을 찍고 있는지는 예산의 용처만 살펴봐도 선명히 드러난다.
기획재정부가 배포한 인포그래픽을 보면 AI 3강을 위한 대전환의 첫 번째는 '피지컬 AI'다. 이는 AI를 로봇이나 자동차 등에 적용하여 물리적 세계, 다시 말해 시시각각 변하는 복잡한 현실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올해 초 'AI의 다음 단계는 에이전틱 AI를 넘어 피지컬 AI'라고 선언했듯, 정부도 인공지능 패권의 '키(KEY)'가 이 분야에 있음을 공감한 셈이다.
피지컬 AI는 생각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40년대 말 신경과학자 월터는 전자거북이 '엘머'를 통해 간단한 센서-모터 회로만으로도 유기체와 유사한 반응 행동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1960년대에는 카메라와 센서로 환경을 인지(perceive)하고, 프로그램으로 추론(reason)하며, 스스로 행동(act)하고 물체를 조작한 최초의 AI 로봇 '셰이키(Shakey)'가 등장했다. 그러나 이후 AI 연구의 주류는 체스와 논리 문제 해결 같은 추상적 영역, 즉 기호주의(symbolic) AI로 흘러갔다.
이에 1980년대 로드니 브룩스 교수는 “코끼리는 체스를 두지 않는다”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현실과의 상호작용 없는 추상적 AI 연구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지능이란 물리적 세계와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에서 비롯된다고 역설하며, 피지컬 AI의 중요한 분야인 '구현 AI(Embodied AI)'의 철학적 기초를 마련했다.
이 문제의식은 오늘날에도 이어진다. 멀티모달 거대언어모델(LLM)이 범용 인공지능(AGI)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가 있지만, 반대로 “언어 모델만으로는 결코 AGI에 도달할 수 없다”는 비판도 거세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서 구현 AI의 발전이 AGI로 가는 근본적 경로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천 개의 뇌'로 잘 알려진 제프 호킨스 역시 지능을 “세상의 모델을 학습하는 능력”으로 정의하며, 뇌의 작동 원리를 본떠 세계 모형을 만들지 않는 한, 현재의 딥러닝은 AGI에 도달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피지컬 AI는 반도체, 센서, 통신, 제어와 같은 기반 기술을 핵심으로 삼는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이들 분야에서 상당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정부가 AI 3강 전략 중 하나로 피지컬 AI를 선택한 것도 이런 경쟁 우위를 염두에 둔 결정일 것이다. 나아가 AGI의 열쇠가 될 수 있는 피지컬 AI에 과감히 투자함으로써, 한국은 단순한 추격자가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도하는 주체가 될 가능성이 있다.
생성형 AI 이후 The Next Big Thing의 초입에서, 정부와 민간이 위기의식을 공유하며 집중력을 발휘한다면 'AI 3강'의 꿈은 예상보다 빨리 현실이 될 수 있다.
정상원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 초거대AI추진협의회 부회장·이스트소프트 대표 bizway@estsof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