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밴드 음악의 멤버 간 화합이 가장 중요한데 이건 인공지능(AI)도 영원히 흉내만 내야 할 부분예요. 데뷔 48년 간 쌓아온 히트곡의 영광을 주저 없이 벗고 늘 새로우려고 노력하는 게 롱런(오랜 인기)의 비결이죠.”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열리는 ‘K-뮤직 나이트’ 콘서트에 간판 출연자로 서려고 미국을 찾은 가수 김창완(71) 씨는 6일(현지 시간) 뉴욕한국문화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우리(음악인)가 AI를 흉내내는 것은 상상도 안 해봤다”며 이 같이 자신했다. 김 씨는 “코로나19가 유행한 3년 동안 ‘음악이 얼마나 무력한가’ ‘내 노래가 이러다가 다 죽어버리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48년 된 왕관과 낡은 옷을 계속 입고 다닌다면 신인 밴드들과도 어울리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김 씨가 이끄는 ‘김창완밴드’와 또 다른 밴드 ‘터치드’ ‘먼데이필링’ 등은 뉴욕 맨해튼 링컨센터 댐로쉬파크에서 열린 K-뮤직 나이트 콘서트에 나란히 서서 K-록의 진수를 알리는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이 콘서트는 뉴욕한국문화원이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링컨센터, 한국콘텐츠진흥원 뉴욕센터와 공동으로 마련한 행사다.
김 씨는 “이번 뉴욕 콘서트에서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노래 외에도 ‘제발 제발’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등 진취적인 K-록을 보여주기 위한 노래들도 공연 곡에 포함시켰다”며 “‘어제의 나’도 과거라는 생각으로 유목민처럼 새로우려고 노력해야 창작욕이 유지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최근 K-팝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비결로는 ‘한국어(한글)가 가진 매력’ 을 첫 손에 꼽았다. 김 씨는 “우리의 앨범이 스페인에서 새로 조명을 받기도 하고 이탈리아에서도 관련 문의가 올 정도”라며 “일본의 많은 팬들은 산울림 음악 때문에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어 “영미권 음악이 세계를 제패하던 때에 많은 영향을 받아 K-팝이 탄생했는데 이제 그 반석 위에서 여러 시도를 해야 K-록도 진화할 것”이라며 “여러 인종이 뒤섞여 있는 뉴욕이야 말로 K-뮤직이 다양성을 향해 열린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곳”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간담회에 함께 참석한 터치드의 보컬 윤민(29) 씨는 “한동안 기계적인 음향이 대중의 사랑을 받았는데 최근 ‘밴드 붐’이 왔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며 “뉴욕에서 기존 음악과는 완전히 다른 매력을 가진, ‘한국에 있는 강렬한 맛’을 보여주려 한다”고 밝혔다. 먼데이필링의 리더 이안(34) 씨는 “우리 팀에는 해외에서 자란 사람이 많아 처음 결성할 때부터 외국에 이름을 알리고 싶었다”며 “미국, 일본 등의 무대에서 우리 곡을 공연하면 관객들이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지난 1977년 동생인 창훈, 고(故) 창익 씨와 결성한 밴드 산울림으로 데뷔해 1집 ‘아니 벌써’부터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개구장이’ ‘어머니와 고등어’ ‘너의 의미’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음악인이다. 고 창익 씨가 세상을 떠난 2008년부터는 자신이 리더를 맡은 김창완밴드를 결성해 지금까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김 씨는 “산울림 시대 때도 유행에 영합하기보다는 인간 본연의 자세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지면서 활동했다”며 “이 같은 철학적 기반을 갖추면 K-팝의 소프트파워 경쟁력도 올라갈 것”이라고 진단했다.
/뉴욕=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