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끼임 사망 사고’가 반복해서 일어난 SPC그룹이 사내 특정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려 한 혐의로 1년 넘게 재판을 받고 있다. 법정에서는 SPC가 사측에 우호적인 세력을 키우기 위해 노조 소속 직원들을 부당하게 대우한 정황이 잇따라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재판장 강완수)는 28일 허영인 회장 등 SPC 전·현직 임직원 19명에 대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 혐의 재판을 진행했다. 이들은 2021년 2월부터 약 1년6개월간 민주노총 소속 노조 조합원들에게 노조 탈퇴를 종용하고, 승진 인사 등에서 불이익을 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이날까지 재판은 총 35차례 열렸다.
2021년 SPC 계열사 피비파트너즈에는 2개 노조가 있었다. 3500여명이 가입한 한국노총 소속 ‘피비파트너즈노조(피비노조)’와 750여명이 속한 민주노총 소속 ‘파리바게뜨지회(지회)’다. 검찰에 따르면 피비노조는 회사 측 입장을 대변하는 ‘어용노조’로 활용됐다. 반면 지회는 회사 정책을 비판했다. SPC가 지회의 교섭권을 박탈하고 피비노조 규모를 키우기 위해 지회 조합원들의 탈퇴를 부추겼다는 것이 검찰 주장이다.
파리바게뜨 직원 인력 관리 등을 맡은 피비파트너즈 관계자들의 법정 진술을 종합하면, 사측은 정기적으로 이른바 ‘노조 전환 회의’를 열었다. 지회 조합원들의 노조 탈퇴 현황을 공유하고 피비노조 가입 유도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회의장에서는 지회 소속 제빵기사 명단을 보며 “언제 탈퇴할 수 있을 것 같냐” “민주노총 애들을 한국노총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친한 사람들, 가까운 사람들부터 (전환하라)” 등의 논의가 오갔다고 한다. 피비파트너즈의 한 중간관리자는 지회 조합원 탈퇴 작업을 진행한 이유에 대해 “‘민주노총 소속 기사들은 자기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다루기 힘들어서’라는 설명을 회의에서 들었다”고 진술했다.
노조 탈퇴 종용 작업에 현금이 동원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현장관리자 A씨는 “사업부장이 민주노총 조합원을 탈퇴시키러 온 사람들에게 포상금을 지급한 적 있는 게 맞냐”는 검찰 질문에 “맞다”고 답했다. 그는 “사무실에서 (포상금을) 지갑에서 꺼내어 줬다”며 “탈퇴 인원에 따라 1만원씩 받았다”고 말했다. 검찰 조사에선 “회사가 법인카드 예산을 노조 탈퇴 회유에 쓰도록 지시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탈퇴 종용 시도 때는 ‘청정지역 작업’이란 문구가 사용됐다. 이는 “‘지회가 한 명도 남지 않은 구역’을 의미한다”고 다른 현장관리자는 증언했다.
지회 소속 조합원들이 승진 차별 등 각종 불이익을 받은 정황도 드러났다. 검찰은 2021년 3월 작성된 지회 탈퇴 현황 문건에 제빵기사들이 노조 활동 수위에 따라 A~C등급으로 분류됐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일부 지회 조합원들의 근태, 휴무관리, 지시 불이행, 복장 불량 등을 별도로 정리한 문건도 제시했다. 법정에서는 “강성 민주노총이면 승진 대상자에서 빼자는 이야기가 오갔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날 재판에선 승진 평가 문건에서 지회 조합원들만 정성평가 점수를 공란으로 뒀고, 이것이 승진에서 배제하려는 의도란 의혹이 제기됐다.
SPC 측은 회사가 직접 지회 조합원들의 탈퇴를 부추긴 적이 없고, “탈퇴 종용이 아닌 ‘회유와 설득’”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허 회장 측 변호인은 ‘탈퇴 종용’ 대신 ‘조합원 데려오기 시도’라는 표현을 쓰면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앞서 허 회장 측은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조합원들을) 무조건 탈퇴시키라고 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