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人] "미혼부 돕는 일 왜 계속 하냐고요? 잘 자란 딸 때문이죠"

2024-12-11

‘아빠의 꿈’ 김지환 대표

<편집자註> 시민사회는 '시대의 창(窓)'일뿐 아니라 가장 강력한 '여론 형성의 장(場)'입니다. 세상의 흐름을 알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읽지 못하고선 미래를 꿈꿀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人)과 쉴새없이 소통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각양각색 사연을 [스토리人] 코너를 통해 소개해 드립니다.

늦가을 어느 밤이었다. 유튜브 앱을 켜니 한 지상파 방송사의 콘텐츠가 느닷없이 추천 영상으로 떡하니 떴다. ‘이게 뭐지?’ 영상 속 흐릿한 젊은 남성은 아기에 젖병을 물리고 있었다. “우리 아이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제 딸은 법적으로는 이 나라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 “나는 법적으로 혼자인 남자” 젊은 아기 아빠의 호소가 이어졌다. 기자의 취향 상 생뚱맞은 알고리즘의 연결이었지만 곧 호기심에 빠져들었다. 영상 속 주인공 ‘사랑이 아빠’ 김지환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듣게 된 배경이다. 해당 영상은 10년 전 사랑이 출생신고로 어려움을 겪던 초보 아빠 김 대표의 근황을 담은 내용이었다.

미혼부인 김 대표는 사랑이의 출생 신고를 하기 위해 2013년부터 유모차를 끌고 거리로 나왔다. 당시만 해도 미혼부는 아이의 출생 신고를 할 기회조차 없었다. 김 대표와 여러 사람의 노력 끝에 2015년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다. 이로 인해 미혼부가 생모의 이름이나 주민등록번호 등을 몰라도 유전자 검사서를 제출해 친부임을 입증하면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고 출생신고가 가능해졌다. 이 법은 김 대표 딸의 이름을 따 이른바 ‘사랑이법’으로 불린다. 이후 그는 자신 같은 처지의 미혼부 가정을 돕기 위해 2019년 <아빠의 꿈>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 사랑이 아빠로 잘 알려져 있으시죠. 사랑이 출생신고를 위해 2013년 유모차를 끌고 나와 미혼부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셨고요. 김 대표님을 비롯해 많은 분들 노력의 결실로 2015년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가족관계등록법)이 개정된 성과도 있었습니다. 그때와 비교해 지금은 어떤가요? 어떤 것들이 좀 달라졌습니까?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저의 경우는 법이 개정되기 전 아이가 출생 신고가 된 후에도 1인 시위를 계속했었습니다. 제 아이는 어찌어찌 겨우 출생신고를 마쳤지만 그 경험을 통해 느낀 게 법보다 세상이 아이를 우선해주길 바랬기 때문이에요. 당시는 일하는 날보다 노는 날이 많아 그 시간에 계속 시위를 했죠. 그러다보니 언론이나 많은 분들이 관심을 차츰 가져주시고 이후 2015년도에 법이 개정됐고 그해 11월부터 시행됐습니다.

하지만 당장 아기 출생신고를 못하는 가정 입장에서는 바뀐 법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어렵기는 마찬가지에요. 이전보다 기간이 단축됐고 절차도 간소화된 것은 맞지만요. 그저 태어난 것뿐인데 이 아기들이 대한민국 국적과 국민으로서 기본권을 인정받기 위해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게 너무 불합리한데, 이것 자체는 아직도 바뀌지 않았거든요."

- 그렇군요.

"네, 여전히 주민등록을 하려면 일단 무조건 재판부터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2023년 3월 말경 헌법재판소에서 판결이 나왔으니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겠죠. 아이가 재판받게 하는 그 법조항이 가족관계등록법 46조 2항인데, 이게 위법하다는 거예요. 취지는 아이가 재판없이 출생신고 할 수 있는 법안을 입법부가 2025년 5월까지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지난 국회에서도 입법되지 않았고 이번 바뀐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만들어지긴 하는 것 같은데 아직 저도 구체적인 내용은 모릅니다."

- 법안을 만드는 국회의원실에서 김 대표님을 찾지는 않던가요?

"국회에서 연락 온 일은 없습니다. 다만 사랑이법을 만드셨던 서영교 의원님이 이전에 한 번씩 전화로 의견을 물어봐주셨고, 계속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 헌재판결이 나왔으니 시간이 좀 걸려도 앞으로는 개선이 되겠네요. 그것과 별개로 여전히 미혼부와 아이들을 돕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참... 저도 이기적으로 살고 싶습니다만, 아무래도 도움이 필요한 그분들을 외면하지 못하겠더라고요. 물론 제 능력이 닿는 한 돕는 수준입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아기들 돕는 일로는 돈벌이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제 생계활동을 하면서 저와 딸아이 생활비를 쓰고 남는 돈과 시간으로 활동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다른 단체들처럼 크고 넓게는 못하고 조촐하게 해왔지만, 이제 아기들 출생신고 소송이라도 접수되고 유전자 검사가 끝나면 기본적인 복지혜택은 받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활동하면서 여전히 도움의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 진짜 사각지대에 있어 도움이 미치지 못하는 아이들과 아빠들을 여럿 알게 되었고, 또 폭도 늘어서 제도권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미혼모, 한 부모 가정도 알게 되어 그분들을 돕고 있어요."

- 제도권의 온기가 미치지 못해 도움이 필요한 분들도 여러 경우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이런 경우죠. 서류상으로는 완벽한 두 부모 가정인데 현실에선 한 부모 가정인 경우가 있어요. 그러니까 이혼도 경제여건이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사는 자체가 힘들고, 막말로 상대 배우자가 아예 연락을 끊거나 악의적으로 연락을 거부해버리면 여건이 안 되는 분들, 다시 말해 먹고 사는 자체가 더 급한 분들은 이혼이 계속 미뤄지는 거예요. 이혼도 안 된 상태라 한 부모 증명서라는 게 절대 나올 수 없는 경우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민간단체조차 제대로 도울 수 없어요.

이 경우 저는 어떤 아기의 가정이 현실적으로 한 부모나 다름없다고 판단이 될 때, 아니 한 부모 가정보다 더 사정이 딱하다 싶을 때는 제 여력이 된다면 돕고, 그렇지 못할 경우 안타깝지만 돕지 못하는 걸 반복 중입니다. 말하자면 이런 거죠. 한 가정을 지속적으로 오랫동안 도와나간다기보다 당장 급한 불을 끄는 응급조치를 합니다. 그럼에도 지금 대여섯 가정을 꽤 오랫동안 돕고 있어요. 어떤 가정은 4~5년 정도 됐고, 또 어떤 가정은 8년, 10년 된 경우도 있고요. 매달은 아니어도 때 되면 뭐라도 보내드리면서 잘 지내고 있는지 계속 확인하는 과정인 거죠."

- 참, 사랑이는 많이 컸겠습니다.

"지금 초등학교 4학년이에요. 많이 컸죠. 하하. 안 그래도 주말에 사랑이랑 심각한 주제로 논의를 했더랬습니다."

- 논의요?

"주제가 월요병이에요. 제가 아니라 사랑이가 하는 말이, 자기가 월요병에 걸린 것 같다는 거예요. 그래서 학교가기 싫다고요. 저더러 월요병 증상이 뭐냐고 묻는 거예요. 하하. ‘너는 월요병에 걸릴 나이가 아닌데 증상은 월요병 같아, 어쩌면 좋냐’ 이렇게 얘기해줬죠. 세월이 참 빠른 것 같아요."

- 동변상련의 심정으로 어려운 분들 도와주고 있지만, 그 세월도 꽤 오래됐잖아요. <아빠의 꿈>이란 단체를 만들기 이전의 시간까지 10년 정도 됐을 텐데, 인간적으로 ‘나도 힘드는데 왜 이 일을 내가 계속해야하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이 일을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초반에 그 생각 많이 했어요.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해나가는 복합적인 이유들이 있어요. 첫째는 저 나름의 계산이죠. 제가 그렇게 순수하게 착한 사람만은 아니에요. 아기 출생신고 문제에 매달렸던 당시 생활도 어려워서 내가 얼마나 벌어야 딸아이와 생활비를 감당하고 훗날 재산을 얼마나 물려줄 수 있을까란 현실적인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전문 자격증 없어도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나 택배 일인데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제 나이 60대 초반까지 모아봤자 2~3억여 원 안팎 정도 계산이 나오더라고요. 물론 그 돈도 큰돈이지만 그 돈을 물려주는 것과 그보다 적은 돈이지만 사랑이한테 다른 사람들한테 고맙다는 말을 듣는 아빠가 더 추가된다면, 그 모습을 아이가 곁에서 보고 자란다면 돈 2~3억보다 훨씬 값진 것을 물려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또 종교적인 이유랄까요. 제가 종교에 해박하지 않지만 대부분 종교에서 사람이 선한 일을 많이 하고 덕을 쌓으면 그것이 다 자기 자손에게 간다는 말을 하잖아요. 저는 그 말을 찰떡같이 믿고 싶은 거죠. 나에게 있는 복도, 내가 받아야 할 복이 있다면 모두 딸에게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이 활동을 더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둘째로, 정말로 많은 아기들이 대여섯 살이 됐는데도 주민번호 없이 세상에 없는 존재처럼 살아오다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거잖아요. 아이 아빠가 그 과정을 대신하지만 실은 재판도 아이가 받는 것이고 도움도 그 아이가 받는 것이거든요. 거리를 가다가도 아이가 도와달라는데 거절할 어른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거절 못하죠. 그걸 못해 지금까지 해온 측면이 있는 겁니다. 그렇게 살아오다 시간이 이만큼 흐른 거죠. 어쩔 수 없이 시작했지만 하다 보니 점점 책임감도 생기고요.

이제는 그만두고 싶다고 독하게 마음먹고 행동으로 옮길라치면 또 마음을 약하게 하는 사건이 터져요. 내 딸아이와 내가 잘 사는 것에만 집중하자고 마음을 다잡으면 한 달 안에 또 어딘가에서 도움이 필요한 아기가 나타나는 거죠. 기가 막힌 타이밍이죠. 하하.

고정수입이 늘면 이참에 일을 더 해 수입을 늘리자고 마음먹으면 직장이 사라지든지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게 되고, 일이 끊기면서 누군가가 도와달라고 나타납니다. 그러면 그동안 벌어 놓은 여윳돈으로 돕게 되고,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다보니 ‘희한하네, 그냥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더라고요. 이렇게 서너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저를 지금까지 끌고 온 것 같아요."

- 후원은 많이 들어옵니까.

"제 사연이 언론 방송을 통해 조금씩 알려지면서 어떻게든 먼저 저를 찾아내 홈페이지 등을 통해 연락을 주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후원해주시겠다고 하면 거절 못하고 감사히 받습니다. 하하. 하지만 저희 단체가 사단법인은 아니고 등록된 임의단체라 기부금 영수증은 발급해줄 수 없다고 먼저 안내를 드립니다. 그래도 괜찮다면 고맙게 받겠다 말씀 드려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제 활동이 그렇게 큰돈이 들어간다거나 많이 들어가는 건 아니라서 형편대로 돕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의 월세방 보증금을 보태거나 이사비를 지원하거나, 못 할 때는 단돈 10만 원 정도의 공과금을 지원하거나 아이들 기저귀 지원밖에 못할 때도 있어요. 또 어떤 경우에는 다른 단체에서 얻어다가 도와주기도 하고요. 그때그때 맞춰 하는데도 어쨌든 계속 누군가는 도울 수 있더군요."

- 아빠들과 아이들을 돕다 보면 딱한 사연도 많이 접할 것 같습니다.

"그럼요. 과거의 저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분들이 있는데 보통 아빠나 아기가 아픈 경우에요. 지병이 있거나 장애가 있거나 난치병이 있다거나 하는 경우는 정말 그 누구보다도 힘듭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초반 출생신고를 위해 가정법원에 접수시켜 놓고 유전자 검사도 받아놓고 또 지자체에도 이 분들의 존재를 알려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드리는 거죠. 그 이상은 제 능력 밖의 영역이라 그 뒤에는 이 분들을 전문적으로 도울 수 있는 민간단체나 기관에 연결시켜드립니다."

- 세상이 달라졌지만,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혼자 키우는 아빠는 아직도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습니다. 편견을 가진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엄마와 좋은 아빠가 같이 화목하게 아이를 기르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 둘 중 한 사람이 없고 그래서 화목이라는 전제조건이 빠져있다고 둘 중 누가 낫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도 없으며 장담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혼자 키우는 아빠가 ‘오죽하면 저렇게 혼자 살겠어’라는 말 들어도 돼요. 다만 그 아빠와, 그 엄마와 함께 잘 자라고 있는 아이들은 평범하게 바라봐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어디 조그마한 강연에 초청이라도 돼 이야기할 기회를 얻으면 혼자 아이 키우는 지극히 평범한 아빠라고 소개합니다. 마찬가지로 제 딸도 학교가기 싫어하고 공부보다 놀기 좋아하고 스마트폰을 끼고 사는 평범한 아이에요.

그러니까, 사회와 어른들이 아빠는 몰라도 아이는 불쌍한 시선이 아니라 ‘저 아이가 자라는데 이런저런 도움이 필요하겠구나’ 하고 느낀다면 그 정도만 도와주면 되는 것이지 굳이 가정사에 불필요한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것은 한 부모 가정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질 않는 것 같아요.

그냥 편하게 이런 거 있잖아요. “도울 게 있으면 제가 도울까요?” 도움이 필요없다면 ‘그냥 잘 살고 있구나’ 그렇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런 인식부터 바뀌어야지 다양성 존중이니 평등이니 법과 제도, 캠페인이 우선은 아닌 것 같아요. 기본적인 인식부터 한번 고민하고 살펴봐주셨으면 좋겠어요."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NGO저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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