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전 원내대표가 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하 경칭 생략)은 ‘이재명 민주당’의 막강 병기였다. 2024년 4·10 총선을 앞두고 공직선거후보자 검증위원장·공천관리위원회 간사 등 3대 요직을 장악해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제척대상인 자신의 지역구 동작갑에서도 ‘검증위원장’ 권한으로 원내대표·정무수석을 지낸 중진 전병헌을 쳐내고 본인의 단수공천을 확정해 ‘셀프 공천’을 실현했다. 친명 후보들이 전해철·박광온·윤영찬 등 친문 핵심 후보들을 경선에서 줄줄이 눌러 ‘비명횡사, 친명횡재’ 공천이 완성된 데도 김병기의 역할이 컸다는 게 중론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숱한 구설에 휘말렸다. 부인이 구의회 부의장의 법인카드(업무추진비)를 받아 쓴 것을 알고도 무마하려 한 의혹, 보좌진을 사노비처럼 부린 의혹 등 최근 터져 나온 의혹들은 이미 이때 다 제기된 것들이다.
김병기, ‘1억 헌금’ 의혹에 낙마
구의원 공천 의혹도…특검 가야
정청래, ‘친청’도 단호히 다룰 때
그러나 김병기는 끄떡없었다. 의혹을 제기한 같은 당 이수진 전 의원과 국민의힘 장진영 동작갑 당협위원장, 의혹을 보도한 언론 매체들을 줄줄이 고발하며 맞불을 놨다. 이수진 전 의원은 정계에서 사라져버렸고, 의혹을 보도하던 언론들도 꼬리를 내렸다. 법카 의혹마저 동작경찰서가 “근거 없다”며 내사 종결해 면죄부를 받았다. 윤석열 정권 시절이었음에도 이상하게 김병기 앞에선 경찰도, 언론도, 여당도 무력했다.
총선에서 3선 고지에 올라선 김병기는 원내대표 경선에 직행, 친명계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손쉽게 당선된다. 이어진 8·2 전당대회에서 비명 정청래 후보가 친명 박찬대 후보를 꺾고 당 대표가 되면서 김병기의 존재감은 더욱 커졌다. 검찰·사법부 개혁에서 과속을 일삼는 정청래 대표를 견제하고 대통령실 의중을 관철할 사람은 김병기밖에 없었다. 지난해 9월 김병기는 검찰청 폐지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를 위해 국민의힘에 ‘3 특검’ 연장 최소화를 약속하면서 극적 합의를 끌어냈다. 김병기 파워의 절정이었다. 개딸의 반발을 의식한 정 대표가 다음날 이 합의를 뒤집자, 김병기는 기자들 앞에서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 그래!”라고 외쳤다. 정 대표는 군말 없이 “부덕의 소치”라며 사과했다. 실세 원내대표의 위세가 그만큼 막강했다.
하지만 이후 정 대표가 친명계가 많은 대의원 힘을 빼는 ‘1인 1표제’ 추진 등 친명 체제 흔들기를 노골화하면서 김병기 권력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특히 대통령실이 통일교 특검을 전격 수용한 직후 진보 매체들이 김병기의 비리 의혹을 잇달아 폭로하자 정 대표는 지난해 12월 26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송구스럽다. 며칠 후 원내대표가 입장을 낸다니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물러나라는 얘기였다. 친명계는 격분했다. 한 친명 의원은 “장경태·최민희 등 친청계의 큰 ‘범죄’는 죄다 감싸던 대표가 친명 김병기만 쳐내려한다”며 “대표직 연임을 노려 친명 숙청에 나선 것”이라고 했다. 친명계는 김병기에게 “버텨라”고 주문했지만, 서울시당 공관위 간사 시절이던 2022년 4월 강선우 의원 보좌관이 김경 시의원에게 1억원을 받아 보관중이라는 보고를 강 의원에게 받고도 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보도가 터지자 김병기는 취임 200일만인 지난해 12월 30일 원내대표직을 사퇴하고 말았다.
정치인에게 치명적인 ‘공천 헌금’ 의혹이 사임의 직접 원인이 된 점은 김병기는 물론 친명과 이재명 대통령에게까지도 악재가 될 수 있다. 이미 김병기는 “동작 지역 구의원 출마 희망자 2명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가 6개월 뒤 돌려줬다”는 의혹이 이수진 전 의원의 폭로로 불거진 바 있다. 이 전 의원은 “돈을 줬다는 2명의 진술서를 이재명 당 대표실로 보냈는데 그 문건이 김병기 본인에게 넘어가면서 의혹은 유야무야됐고 나는 컷오프 당했다”고 했다. 사실이라면 김병기가 연루된 공천 헌금 의혹이 한 건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란 의심, 이재명 대표실의 누군가가 김병기와 내통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김병기의 휴대전화를 즉각 압수 수색하고 특검을 실시해야 한다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등 야당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정청래 대표도 느긋해 할 상황이 아니다. 김병기 사태엔 당사자보다 앞서서 사과하고 거취까지 압박했지만, 성추행 의혹과 딸 결혼식 축의금 수수 논란에 각각 휘말린 장경태·최민희 의원에겐 감찰을 한차례 지시했을 뿐 면죄부를 준 형국이다. 김병기 사퇴를 계기로 장경태·최민희 두 의원에게도 국민이 납득할 처분을 내리지 않는다면 ‘청로명불(친청이 하면 로맨스, 친명이 하면 불륜)’이란 비난이 힘을 얻으면서 당내 리더십이 뿌리째 흔들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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