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리 경제부장

매일 밤 잠들기 전 휴대전화로 유튜브 콘텐츠를 시청한다. 다음 날 기상 시간에 맞춰 취침 시간을 정해놓긴 하지만, 영상을 보다 보면 2~3시간이 마치 2~3분처럼 훌쩍 흘러간다.
짧은 영상이 계속해서 연결돼 재생되는 터라 궁금해서 쉽사리 손을 스마트폰에서 떼지 못한다.
어느 순간 ‘도파민 중독’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도파민은 뇌의 중추신경계에 존재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그 기능은 생존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할 때 분비돼 쾌락과 보상감, 성취감, 재미를 준다. 한 마디로 행복 호르몬인 셈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나 쇼핑을 할 때 혹은 어려운 목표를 달성했을 때에도 도파민이 많이 나온다. 사람들은 따라서 더 많은 쾌락을 위해 도파민이 분비되는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디지털 시대 우리 주변에는 시청각을 쉼 없이 자극하는 콘텐츠들이 범람하고 있다.
특히 30초~1분 이내의 숏폼 콘텐츠(숏츠)는 중독성이 더욱 강하다. 자신의 성향에 맞는 짧은 영상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시간을 다 보내기 일쑤다.
요즘 필자는 60분 드라마를 30분 만에 요약해서 보기도 한다.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의 10초 건너뛰기 기능 덕분이다. 그마저도 지루하게 느껴지면 1.25배나 1.5배 속도로 시청한다.
10부작이 넘는 드라마를 정주행하기엔 여가 시간이 많지 않고, 찜해 놓은 콘텐츠는 넘치기 때문이다.
짧고 강한 자극일수록 뇌에서 도파민 분비가 증가하는데, 이런 즉각적인 보상은 더욱 쉽게 반복 행동을 일으킨다.
도파민은 적당히 분비되면 사람에게 활력을 주는 유기 화합물이지만, 과다 노출되다가 농도가 낮아지면 무기력증과 우울증이 따라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거듭된 도파밍 현상이 ‘팝콘 브레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팝콘 브레인은 데이비드 레비(David Levy) 미국 워싱턴대학교 교수가 만든 용어로, 열을 머금은 옥수수가 터져 팝콘이 되듯이 아주 강렬하고 즉각적인 자극에만 반응하는 뇌 구조의 변형을 일컫는다.
모든 것이 빠른 정보화시대에 ‘느리면 뒤쳐진다’는 인식은 하루의 시곗바늘을 재촉한다. 고속 성장 시대를 거치면서 ‘빨리빨리’ 문화에 길들여진 한국인에게 ‘느림보’는 시쳇말로 복장 터지는 사람으로 보여지기 일쑤다.
이런 와중에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 대신 걷자는 캠페인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10여 년 전 지리산과 북한산에도 제주올레를 벤치마킹한 ‘둘레길’이 생겨났듯 많은 사람들은 느리게 걷기의 매력을 알고 있다.
제주올레 못지않게 최근에는 원도심 골목길이 주목받고 있다. 꼬불꼬불 골목길, 이끼 낀 담장, 추억이 깃든 장소가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제주도가 오는 26일 제주시 원도심 일대(탑동~서문로터리~관덕정~탐라문화광장)에서 차 없는 거리 걷기 행사를 연다.
지난해 연북로 행사에 이어 2번째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길 위에서 만나는 제주, 거리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변화’를 슬로건으로 잊고 지냈던 공간의 가치를 되새기고, 걷기를 통해 건강한 변화의 가능성을 체감하는 계기로 마련됐다.
느림은 게으른 삶의 이정표가 아닌, 가끔은 이 시대를 대변하는 넉넉한 삶의 지표다.
주변에 존재하는 건강한 즐거움을 만끽하고, 작고 소소한 일상을 사랑하다 보면 자극과 쾌락만이 ‘행복’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추억이 깃든 원도심을 한가로이 거닐며 ‘느림의 미학’을 다시 생각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