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전투기 KF-21이 본격적으로 활동할 시기가 바짝 다가오고 있다.
지난해 6월 KF-21 20대 첫 양산 계약(1조9600억 원)을 맺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지난달 1243억 원 규모의 성과 기반 군수 지원(PBL) 계약을 체결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비롯한 주요 협력사들도 핵심구성품 공급을 위한 준비를 진행 중이다. 양산에 들어간 KF-21은 내년부터 공군에 배치되어 영공 수호 임무에 나설 예정이다.
10여년 전 KF-21 탐색개발 단계서부터 추진됐던 해외 판매도 필리핀 등에서 수주 가능성이 제기되는 모양새다. 공군 전력증강과 항공우주산업 발전을 함께 도모할 기회를 얻는 셈이다.
하지만 첨단 무기 시장을 장악한 미국·유럽 방위산업계와 일반적인 방식으로 경쟁하기에는 국내 방위산업의 대외적 영향력과 규모 등이 부족한 실정이다.
KF-21 관련 역량을 결집, 세계 시장으로 나아갈 채비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차 양산 준비…블록1 40대 확보
현재 20대 첫 양산이 진행 중인 KF-21은 기본 비행성능과 공대공 능력을 갖춘 블록1 기종이다.
유럽 MBDA 미티어 중거리 공대공미사일과 독일 딜 디펜스 AIM-2000 단거리 공대공미사일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방위사업청과 KAI는 KF-21 2차 양산을 추진하고 있다. 군 소식통은 “이르면 다음 달쯤 2차 양산(20대) 관련 의사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안다”며 “대당 가격은 공급망 문제와 환율 상승 등으로 지난해 첫 양산 계약보다 15% 정도 오를 것”이라고 전했다.
KF-21은 지난 2020년 9월 시제기 최종조립을 시작했다. KAI는 기체 제작에 필요한 동체·주익구조조립과 최종조립 등의 생산 인프라를 구축했다.
2022년 7월 첫 시험비행에 성공한 KF-21은 이후에도 초음속 비행시험 등을 진행해 잠정 전투용 적합 판정을 획득했다. 시험 과정에서 얻은 데이터는 양산형 기체 설계와 제작에 적용됐다.
KF-21은 블록1 40대 제작을 일괄 계약하고,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포함한 공대지 전투능력을 추가한 블록2 80대 상산 계약이 차후에 이뤄질 계획이었다.
하지만 2023년 11월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공대공미사일과 능동전자주사(AESA) 레이더의 연계 검증 시험이 완료되지 않았다면서 초도 양산 물량을 40대에서 20대로 줄일 것을 권했다.
이에 방위사업청은 20대로 첫 생산을 진행하고 20대는 추가 검증 후 계약하는 ‘20+20’ 계획을 마련했다.
이를 두고 방산업계에선 KF-21 대당 생산비가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항공산업은 주문이 들어와야 생산을 시작하는 특성을 지닌다. 따라서 제품이 처음 출시됐을 때는 가능한 많은 초도 주문 물량을 사전에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초기 비용 증가를 억제하면서 대외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KIDA의 권고를 무시하기 어려웠던 정부 당국은 첫 양산 계약 규모를 20대로 설정하되 고강도 원가검증으로 비용 증가를 억제, 대당 가격을 940억원 안팎으로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환율 상승과 공급망 문제로 2차 양산 단계에서의 대당 가격은 상승할 전망이다.
KF-21 엔진은 미국 GE의 F414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생산하는 형태인데 국산화율이 50%에 못미치는 상황이다.
수입 구성품 가격은 환율 등에 많은 영향을 받는데,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7월보다 100원 가까이 상승한 상태다.
엔진 구성품 외에 정확한 종류가 공개되지 않는 수입 관급장비 10여 종까지 감안하면, 환율이 미치는 영향은 상당한 수준일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속되고 있는 글로벌 공급망 문제와 물가 상승도 KF-21 대당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이에 따라 KF-21 2차 양산 계약이 이뤄지면, 대당 가격은 1000억 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같은 비용 상승을 억제하려면 생산물량을 최대한 늘려서 규모의 경제를 확보, 비용 절감을 꾀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공군이 구매할 KF-21 수량은 제한되어 있다. 수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KF-21 ‘원팀’ 구성해야
문제는 KF-21 해외 판매를 일반적인 방산수출처럼 정부 주도로 진행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K-9 자주포나 FA-50 경공격기처럼 한국군 사용 이력과 수출 실적이 충분한 국산 무기와 달리 KF-21은 이제 막 글로벌 시장에 진입하려 시도하는 상태다. 가격도 FA-50보다 고가다.
이를 해결하려면 정부 수뇌부 주도로 보증 문제 등을 풀고, 관련 부처간 협업과 조율을 촉진하는 방식으로 활로를 여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전투기 구매는 국제정치적 차원의 전략적 외교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정부간 신뢰를 높이는 작업도 필요하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와 국회의 탄핵소추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고, 정부와 군 주요 직위가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되면서 이같은 기능이 제대로 가동되기는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하더라도 대외 신인도를 계엄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KF-21 제작사 KAI는 수출입은행이 최대 주주인 회사다. 정부에 속해있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KF-21 투자 비중도 정부가 60%를 차지했는데, 인도네시아가 분담금 1조6000억 원 중에서 6000억 원만 납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정부 투자 비중이 더욱 확대됐다.
F-16이 납품 지연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빈틈을 KF-21이 서둘러 차지하려면 수출 켐페인을 서둘러야 한다. 그런데 정치적 리스크가 장기화하면 KF-21을 포함한 방산수출에 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다.
일각에선 KF-21 양산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업체들이 수출을 위해 ‘팀 (Team) KF-21’을 구성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K방산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역량을 최대한 모아서 활용하자는 것이다.
서방에서 생산하는 4세대 이상 전투기들은 다수의 기업이 참여해서 만든다.
프랑스 라팔은 닷소(40%), 탈레스(30%), 사프란(30%)이 체계통합과 전자장비·엔진 제작을 분담한다. 유럽 에어버스가 만드는 타이푼도 다수의 유럽 기업이 참여한다.
생산에 참여하는 기업들은 해외 판매를 위한 마케팅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체계통합 업체에만 맡기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세계 시장에 나설 KF-21은 미국 F-16(록히드마틴), 스웨덴 그리펜(사브) 등과 경쟁을 벌어야 한다. 글로벌 방위산업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과 풍부한 이력을 지닌 세계적인 기업들이다.
KF-21 제작사인 KAI는 국내에선 최상위 방위산업체지만 록히드마틴, 사브, 에어버스 등과 세계 시장에서 독자적으로 경쟁해 우위를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다. KF-21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KF-21은 KAI가 제작하지만 실제 비중은 절반에 못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엔진), 한화시스템(레이더와 항공전자장비), LIG넥스원(전자전장비, 정밀유도폭탄 등)을 비롯한 다수의 기업이 생산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KF-21 프로그램 참여 업체들이 수출을 위해 ‘원팀’을 구성한다면, 해외의 잠재 고객에게 신뢰감을 조금이나마 더 줄 수 있다. 해외 마케팅 역량도 한층 강해진다.
가격 인하, 구성품 현지 생산, 기술이전, 창정비 등 구매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제기되는 이슈에 대한 업체간 조율도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다.
수출이 성사되어 생산량이 증가하면 구성품을 납품하는 업체들도 생산라인을 더 가동할 수 있어서 이익을 얻게 된다.
‘원팀’을 만들면 방위사업청은 수출 과정에서 KF-21에 탑재되는 수입 구성품을 제3국에 인도하는 것에 대한 법적 문제나 보증 등을 지원하는 역할에 집중할 수 있다.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은 국내 항공우주·방위산업 역량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손익분기점을 달성하고 차세대 항공무기체계 개발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선 한국 공군 전력화와 더불어 수출이 필수다.
서방 무기를 쓰지만 F-35를 도입할 수 없는 국가를 대상으로 KF-21을 수출하려면 국내의 모든 역량을 모으는 게 필수다. 공군 전력화와 수출 시도를 앞둔 지금, 진정한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인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