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있던 2012년 여름,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28세 청년은 학교에서 배운 데이터의 힘이 궁금했다. ‘공개된 데이터를 활용해 창업을 하면 어떨까.’ 그는 골방에서 페이스북 기반의 정치 블라인드 테스트라는 앱을 만들었다. 사용자에게 각 후보의 정치 공약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고르게 해 본인의 정치 성향과 가장 잘 맞는 후보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사용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정치 성향과 데이터가 말하는 나의 정치 성향은 달랐기 때문이다. 앱은 대히트를 쳤고 사용자는 200만 명을 돌파했다.
마이데이터 전문 핀테크(금융·기술) 기업 뱅크샐러드의 김태훈(41·사진) 대표는 3월 28일 서울 마포구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금융과는 다른 대학 시절 정치 앱을 만들었던 이야기부터 꺼냈다. “정치인들이 소속 정당이나 당론에서 보다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정책이나 법안을 입안하는 환경을 바라면서 앱을 만들었죠. 하지만 정치라는 공적 영역에서 수익이라는 사익을 창출하는 회사를 창업한다는 것은 뭔가 맞지 않는 옷 같았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확인했습니다. 데이터의 가능성입니다.”
그리고 2년 뒤인 2014년 김 대표는 신용카드 추천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웹 서비스 뱅크샐러드를 창업했다. 정치 공약을 고르듯 나의 소비 성향을 설문조사 형식으로 선택하면 딱 맞는 신용카드를 추천해주는 서비스였다. 기존에 없던 서비스의 등장에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반복되는 설문을 선택하기 지루해했다. 김 대표는 “소비 패턴을 일일이 고르기 귀찮다. 그냥 시뮬레이션을 자동으로 해서 추천해주면 좋을 텐데. 가계부 앱에 카드 추천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는 댓글을 봤고, ‘그래 이거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뱅크샐러드는 이후 소위 포화상태였던 가계부 앱 시장으로 쳐들어갔다. 당시 최고기술책임자(CTO)와 함께 카드 소비 내역 문자를 가계부에 자동으로 기록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만들었다. 특히 자동 기록이 안 되는 iOS 기반 스마트폰에서는 카드사 홈페이지 정보를 긁어오는 스크래핑 기술을 활용했다. 카드 내역, 입출금 계좌 내역, 예적금과 대출 내역은 물론 현금영수증 내역까지 한번에 불러와 한 곳에서 지출 내역과 자산 현황을 관리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이런 기능이 모두 탑재된 뱅크샐러드 앱을 2017년 정식 출시했다. 입소문을 타고 2019년 누적 다운로드 500만 회, 2021년 1000만 회를 돌파했다. 김 대표는 “유저 입장에서 제일 좋은 솔루션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데이터라는 자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고 밝혔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2022년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 기반 마이데이터 시장이 열리면서다. 뱅크샐러드가 차별화해 운영했던 스크래핑 기술 없이도 개인의 금융 데이터를 사업자들이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러자 막강한 자본력을 내세운 주요 금융지주부터 빅테크 기업 등 너나 할 것 없이 마이데이터 시장에 뛰어들었고, 무한 경쟁에 돌입했다. 하지만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됐다. 김 대표는 “마이데이터가 열리면서 오히려 데이터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게 됐고 차별화된 개인 추천 서비스가 더 힘을 발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뱅크샐러드는 현재 마이데이터 기반의 자산 통합 조회, 송금뿐 아니라 카드·대출·보험 등 금융 상품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금융 중개 시장에서도 데이터 기반의 맞춤형 추천 노하우는 실적으로 돌아왔다. 김 대표는 “타 플랫폼의 카드 중개가 캐시백에만 집중한다면 뱅크샐러드는 소비 데이터 기반의 카드 추천 서비스로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을 돕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객이 캐시백을 받고 카드를 갈아타는 게 아니고 오래 카드를 사용하니 카드사 입장에서도 뱅크샐러드가 중개했을 때 카드 유지율이 가장 높다”고 덧붙였다.
보험 중개 시 높은 청약률 역시 경쟁력을 확인시켜준다. 김 대표는 “뱅크샐러드가 법인보험대리점(GA)과 협업해 보험을 중개할 때의 청약률은 20%에 달한다”며 “뱅크샐러드의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건강과 맞춤형 보장을 분석해 고객의 보험료를 낮추거나 맞춤형 보장을 설계해주는 덕분”이라고 부연했다. 2023년 말에는 업계 최초로 건강 및 금융 데이터로 보험 혜택을 극대화하는 보험 진단 서비스를 선보였다. 건강검진 데이터와 나이·성별·가족력 등을 AI로 분석해 개개인의 상황에 맞게 혜택을 가장 극대화할 수 있는 보험 진단 및 리모델링 서비스를 제공한다.
뱅크샐러드는 건강 마이데이터까지 진출해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건강 역시 금융 영역처럼 맞춤형 처방이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김 대표는 “개인의 소비 패턴에 따라 맞춤형 카드가 다르듯이 건강도 맞춤형 처방이 중요하다”며 “이용자들이 현재 건강 정보를 기반으로 미래를 잘 설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뱅크샐러드는 유전자 검사, 미생물 검사 등 비대면 건강 검사 서비스도 진행 중이다. 발병률과 건강검진 기록 등 개인의 주요 건강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맞춤형 건강관리도 지원하고 있다. 출시 1년 안에 이용자가 50만 명을 돌파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김 대표는 “뱅크샐러드의 유전자 검사 결과가 고객에게 특정 질병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이를 기반으로 보험 추천을 받아간 고객이 실제 미래에 적절한 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뱅크샐러드의 순항은 숫자로도 나타난다. 설립 10여 년 만에는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랐다. 지난해 11월 마이데이터 도입 이후 첫 월간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다. 매출도 꾸준히 개선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약 196억 원으로 전년(67억 원) 대비 3배가량 증가했다. 김 대표는 “지난해 대출·카드 부문 매출은 각각 154%, 105% 증가했다”며 “보험 서비스의 경우 지난해 1월 대비 12월에는 600% 고속 성장했다”고 강조했다. 손실 폭도 감소하고 있다. 2022년 491억 원이던 당기순손실은 2023년 235억 원, 지난해 136억 원을 기록했다.
시중은행과의 협업 이야기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김 대표는 “협업 제안은 계속 받고 있다”며 “주요 정보기술(IT) 기업을 제외한 유일한 종합 금융 플랫폼인 것이 이유”라며 “활성화 사용자 지표 역시 뚜렷하게 개선되고 있는 점도 이유”라고 설명했다.
뱅크샐러드는 내년 하반기를 목표로 기업공개(IPO)도 추진 중이다. 올 1월 미래에셋증권을 IPO 주관사로 선정하고 코스닥 상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김 대표는 “마이데이터를 통한 혁신의 선두 주자로서 성장 노하우와 기업 문화를 기반으로 지속적으로 디지털금융 플랫폼의 확장성을 증명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뱅크샐러드는 2017년 시리즈A 투자 유치를 시작으로 2022년 기업가치 4400억 원에 시리즈D 투자 유치에 성공한 바 있다. 김 대표는 “최근 IPO와 관련해 1차 보고를 받으며 주관사와도 원활하게 소통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제는 뱅크샐러드가 마이데이터업을 국내 시장에 알려야 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미국의 핀테크 기업 인튜이트 등을 피어 그룹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He is··· △1985년 부산 △서강대 경영학과 △한국핀테크산업협회 부회장 △4차산업혁명위원회 데이터특별위원회 마이데이터 분과위원장 △국가데이터정책위원회 금융데이터전문분야 위원 △2014년~ 뱅크샐러드 창업자 겸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