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석좌교수가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를 그만둔다. 크루그먼은 2000년부터 25년간 뉴욕타임스에 미국 경제를 진단하는 칼럼을 써왔다.
크루그먼은 10일(현지시간) ‘분노의 시대에 희망 찾기’라는 제목의 뉴욕타임스 고별 칼럼에서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등장하고 있는 ‘카키스토크라시(최악에 의한 통치)’에 맞선다면 우리는 더 나은 세상으로 향할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그는 자신이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쓰기 시작한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국인들은 평화와 번영을 당연하게 여겼고, 유럽에서도 정치적·경제적 통합이 진행되는 등 ‘상황이 잘 돌아갔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지금은 낙관주의가 분노와 원한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며 그 이유에 대해 “엘리트에 대한 신뢰가 붕괴됐다”고 설명했다.
크루그먼은 “대중들은 이제 더 이상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없고, 그들이 정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부시 행정부의 무리한 이라크 침공, 2008년 금융위기와 2012년 유로화 위기 등이 엘리트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정치뿐 아니라 금융권과 ‘기술 억만장자’들도 더 이상 존중받지 못한다고 크루그먼은 지적했다.
크루그먼은 엘리트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는 노동계급뿐 아니라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여기는 억만장자들’도 분노하고 있다며 이들이 트럼프 행정부에 큰 영향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기술 억만장자들의 극우화를 ‘정치적으로 올바른 자유주의자’의 잘못 때문이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며 “(억만장자들이 극우화된 것은) 대중적 지지를 즐기던 부자들이 세상의 모든 돈으로도 대중의 사랑을 살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원한은 나쁜 사람을 권좌에 앉힐 수는 있지만, 오랫동안 그 자리에 둘 수는 없다”며 “어느 순간 대중은 엘리트를 비난하는 정치인들이 실제로는 모든 면에서 엘리트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리고 그 때가 되면 대중은 최선을 다해 진실을 말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말을 기꺼이 들어줄 것”이라고도 했다.
크루그먼은 칼럼 말미에서 “우리는 지도자에 대한 신뢰를 다시는 되찾지 못할 수도 있고 그래서도 안 된다”며 “하지만 우리가 ‘최악에 의한 통치’에 맞서 싸운다면 결국 더 나은 세상으로 돌아갈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