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강가의 나무

2024-12-30

보이지 않는 출구를 언 강가에서 찾는다

젖은 날개 속에 고개를 파묻고

긴 여행의 마침표를 찍은 외기러기에게

강가의 나무는 그늘을 거두어드린다

모로 누운 지친 날들의 허방에도

잎사귀로 마른침 삼키는 소리도 내지 않는다

구르지 못하는 유배된 삶이

한겨울 침묵 속에 옮기는 그림자는 가볍다

마른 풀등에 쓰러지는 노을처럼

소멸하지 못하는 마지막 잎맥에서

방황하는 내 젊은 날의 버석거리는 갈망을 본다

차가운 물방울에 곤히 물들여지는 갈색 깃털

떠난 이의 흔들리는 뒷모습은

겨울 강 덜컹거리는 기차로 누웠다

반짝이는 것을 마냥 흙으로 껴안았던 나무

살아갈 것들이 털어내는 살가루에 뿌리를 묻고

하늘을 향해 수직 출구를 연다

꼿꼿하고 당당하게

-『꿈의 온도』(2024)수록작

◇정의현= 2016년 《문장》시 부문 신인상 등단. 문장작가회, 문장인문학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 회원, 경남문인협회 회원. 시집 『꿈의 온도』 (2024)가 있음.

<해설> 근래 받는 시집 『꿈의 온도』(2024)에서 만난 이 시는 긍정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시절이 하 수상하고 모든 현실이 혼란스러운 요즘 긍정적이고 이름다운 시는, 막막한 세상에 어떤 희망의 단초가 되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시인의 시를 한 폭 그림으로 그려보면 시인이 지나온 과거는 거의 수평이다. 강물 같은 또는 기차선로 같은 그런 수평의 풍경이 어느 순간 불쑥, 수직의 구도로 서 있는 강가의 나무를 시인은 세워 놓는다. 그런 나무는 “젖은 날개 속에 고개를 파묻고/긴 여행의 마침표를 찍은 외기러기”에게 그늘을 거두어들인다. 시인은 그런 나무를 두고 “꼿꼿하고 당당하게” 하늘을 향한 출구를 연다고 쓰고 있다. “마른 풀등에 쓰러지는 노을처럼/소멸하지 못하는 마지막 잎맥에서/방황하는 내 젊은 날의 버석거리는 갈망을 본다”는 여운이 오래 남을 듯하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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