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선수처럼 스케이트 타고파” 8살 유나 일상 찾아준 ‘이건희 기부금’

2025-11-03

지난달 13일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유나(8)는 꿈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스케이트를 배워본 적도 없지만, 아이는 병을 완전히 이겨낸 내일을 꿈꾸고 있다.

3년 전 여름, 건강하던 유나에게 이전에 없던 증상이 나타났다. 부딪히거나 넘어지지도 않았는데 몸 여기저기에 멍이 생겼다. 이상하게 여긴 엄마 김지혜(40) 씨는 유나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빨리 큰 병원에 데려가라”는 말을 듣고 서울대병원에 갔다. 검사 결과 유나는 급성림프모구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모든 유전체를 분석하는 전장유전체검사에서 치료가 어려운 ‘필라델피아 유전자 양성’으로 분류됐다. 유나는 2년에 걸쳐 항암 치료를 수차례 받았다. 전북 전주에 사는 유나 가족은 매주 서울행 KTX에 몸을 실었다. 유나는 온라인 수업으로 초등학교 1학년을 보냈다. 병원과 집만 오가는 일상이 이어졌다. 치료는 쉽지 않았다. 표적항암제를 썼지만 부작용이 생겨 더 쓰기 어려워졌다. 조혈모세포(골수) 이식이란 선택지만 남은 상태였다. 강형진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유나의 경우 이식을 하더라도 재발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됐다”라고 설명했다. 전장유전체 검사 덕분에 결과를 미리 가늠할 수 있었다. 재발하면 생존율이 30% 아래로 떨어지고 다른 치료법도 없게 된다.

강 교수는 ‘CAR-T(카티ㆍ키메릭 항원 수용체 T세포) 치료’가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카티는 환자 혈액에서 얻은 면역세포(T세포)가 암을 잘 인식할 수 있도록 유전자 조작을 거친 뒤, 배양해 다시 환자의 몸속에 집어넣는 맞춤형 치료법이다. 한번 주사로 치료가 완료되고, 면역세포가 암세포만 골라 공격해 체내 정상세포 손상을 최소화하는 게 특징이다. 국내서 승인받은 카티 치료제는 3가지인데, 이 중 소아급성백혈병에 쓸 수 있는 건 노바티스의 킴리아가 유일하다. 1회 치료비가 3억6000만원에 달하는데, 재발성ㆍ불응성 환자에게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598만원으로 낮아졌다. 하지만 유나는 킴리아 건보 적용 대상에 들지 않았다.

대신 유나는 지난해 12월 서울대병원이 자체 생산한 카티로 치료받았다. 강 교수와 서울대병원 연구팀이 20년 가까이 연구한 끝에 만들어낸 토종 카티다. 2021년 국내 최초 고위험 첨단재생의료 임상연구로 승인을 받았고, 이듬해 국가 연구비 지원을 받았다.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에서 끝날 뻔했던 토종 카티는 단비를 만나 꽃을 피웠다. 바로 고(故)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유족이 지난 2021년 5월 소아암ㆍ희귀병 극복에 써 달라며 서울대병원에 기부한 3000억원이다. 지금까지 유나를 포함해 총 16명의 환자가 토종 카티를 맞았다. 강 교수는 “국가 연구로 시작하고 이건희 기부금으로 이어가게 됐다”라며 “기부금이 아니었다면 5명에게만 써보고 끝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나는 카티 치료 1년 째 미세잔존암검사에서 암세포가 나오지 않고 있다. 몸 상태도 좋아져 지난 3월부터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 유나의 카티 치료비와 전장유전체ㆍ미세잔존암 검사비도 이건희 기부금에서 지원됐다. 유나 엄마 김씨는 “어릴 때 이식을 하면 부작용이 크다고해 가능하면 이식 없이 치료하길 바랐는데,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소아암은 환자 수가 많지 않아 연구비 지원이 잘 안된다”라며 “기부금이 정말 소중하게 쓰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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